회개하라 그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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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049회 작성일 19-09-20 12:18본문
회개하라 그리하면
행2:37~42
2019. 9/15. 11:00
通卽不痛 不通卽痛
몇 년 전 여름,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갑자기 3층 천장 곳곳에서 물이 쏟아져 바닥이 한 강이 되었다. 급기야 천정 한 곳이 훅 내려앉기까지 했다. 급히 천정으로 올라가보니 빗물이 밖에서 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물이 들어오는 것을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어 그저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며 천정에 고여 있는 물을 퍼내고 천정 몇 곳에 구멍을 뚫어 빗물을 받아냈다. 여러 번 업자를 불러서 해결책을 간구했지만 지붕을 모두 걷어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비가 오는 어느 날, 또 발을 동동구루며 지붕으로 갔다 천정으로 갔다 하다가 지붕 물받이에서 물이 내려가지 않고 고인 것을 발견하고 긴 작대기로 조심스럽게 물받이를 휘저었다. 그랬더니 고인 물이 순식간에 쑥 내려갔다. 그리고 그 뒤로는 많은 비가 와도 천정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았다. 십자가 탑에 둥지를 틀고 살던 까치들이 집을 짓기 위해 나뭇가지를 물고 와서 지붕에다 버린 것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 물받이에 쌓이게 되었고 바람에 날려 온 낙엽이 그곳에 얹어지면서 물길이 막혔던 것이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면 빗물이 물받이에 고였고, 그것이 천정으로 흘러들어와 이런 사단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때 막힌 것을 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무엇이든 막히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고, 주변을 당혹스럽고 힘들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통(疏通)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우리나라 유명한 의학서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나온 말이다.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 막히지 않으면 아프지 않고, 막히면 아프다는 뜻이다. 한의학에서 병이 들었다는 것은 기(氣)나 혈(血)이 막혀 통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기나 혈이 원활하게 흐르도록 뚫어주는 것이 치료다. 이것은 병뿐만 아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소통이 잘되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소통이 안되고 막히면 관계에 병이 든다. 그래서 함께 있지만 불편하고 힘들어 되도록 만나지 않으려하고 만나도 피하게 된다. 성경에 나온 바벨탑 사건도 알고 보면 불통(不通)사건이다. 불통으로 인간의 대(大)역사가 멈추게 되었고, 함께 있지 못하고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니 막힌 것을 뚫는 것, 곧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가 있다.
신앙생활도 소통이다. 그런데 소통의 적이 있다.
신앙생활에도 소통이 중요하다. 신앙의 건강과 성숙은 주님과의 관계문제다. 신앙이 건강하고 성숙하다는 것은 주님과의 관계가 튼튼하고 견고하고 건강하고 친밀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튼튼하고 견고한 관계,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를 결정짓는 것이 소통이다. 주님과 얼마나 소통이 잘 되느냐가 주님과의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를 보장한다. 그러니 신앙생활에서도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소통에 적(敵)이 있다. 그것은 곧 죄다. 죄는 주님과의 관계를 막아버리고(防), 닫아버리고(閉), 끊어버린(斷) 주범이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과 소통(교제)하면서 영생할 수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하지만 하나님께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하였다. 하나님과의 교제(소통)단절은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회개는 영적 디톡스(detox)다.
그런데 좋으신 하나님은 죄로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길을 열어주셨다. 그것이 ‘회개’(悔改)다. 회개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막힌 것을 뚫어주고(通), 닫힌 것을 열어주고(開), 묶인 것을 풀어주고(釋), 끊긴 것을 연결해주는(聯) 역할을 한다. 우리가 기도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귀를 막아버리시고, 찬양을 드려도 외면을 하시고, 예배를 드려도 도리어 번거롭게 여기신 이유가 막혀있기 때문이다. 단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개하면 다시 열리고 뚫리고 연결이 된다. 회복이 된다. 그러니까 기도와 찬양과 예배에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부어주셔서 형통하게 하신다. 영적 부흥을 경험하게 해주신다. 그래서 나는 회개를 ‘영적 디톡스’라고 부른다. 주님과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우리의 삶 속에 있는 모든 독소나 노폐물을 깨끗이 청소해주는 것이 회개다.
회개하라. 그리하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개를 하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신다는 사실이다. 본문이 이를 강조하고 있다. 본문은 유대인을 향한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다. 여기서 베드로는 얼마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신 나사렛 예수가 율법과 선지자(구약성경)가 말한 오리라고 하신 메시아라는 것과 그 메시아를 너희가 죽였다고 선포하였다. 이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우리가 어찌하면 좋겠냐고 탄식하며 물었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베드로 설교의 결론인 본문이다. 이에 대한 베드로의 답은 딱 한 가지였다. ‘회개하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39). 회개하면 성령의 선물로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회개하면 왜 성령의 선물을 받을까? 이는 성령님의 사역을 생각하면 곧 이해할 수가 있다.
전에 성령님의 사역을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다. ➀to know, 성령님은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분이다. 주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고, 왜 평생 비참하게 사셨고, 왜 죄도 없으시면서 극형으로 죽임을 당하셨는지를 알게 하시는 분이다. 또한 구원이 무엇이고, 영생이 무엇이고, 천국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는 분이다. ➁to believe, 성령님은 우리로 믿게 하시는 분이다. 앞에서 알게 한 사실들이 모두 믿어지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다. 그리고 ➂to do, 성령님은 우리로 행하게 하시는 분이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을 따라 살도록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로 알게 하고(to know), 믿게 하고(to believe), 행하게(to do)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게 하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고, 확장시키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여기에 회개를 통한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회개를 통한 변화가 있어야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확장시킬 수 있다. 그러니 회개하면 성령님의 선물로 받는다. 무엇보다도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임하시는 선물을 받게 된다. 그래서 회개한 사람으로 하여금 성령의 열매를 맺은 거룩한 주님의 신부가 되고, 성령의 은사로 주님의 몸을 세우고 확장하는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회개는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아울러 성령님은 정결한 영이시니 깨끗한 심령에 충만하게 임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평양부흥운동
이와 같이 회개하는 곳에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면 영적 부흥이 일어난다. 성경을 보면, 야곱가정의 영적부흥을 비롯하여 미스바 영적부흥(사무엘 시대), 예루살렘 수문앞 광장에서의 영적부흥(에스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부흥사건이 나오고 있는데, 모든 부흥사건이 회개를 통한 성령충만으로 일어났다. 지금으로부터 110여 년 전인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되었던 우리나라 부흥운동도 회개를 통한 성령충만으로 일어났다.
일제의 침략이 고조되면서 일제는 우리의 것을 약탈해가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희망이 없을 때, 하늘이 열렸다. 하나님은 한반도에 부흥의 불길을 예비하셨다. 1907년 1월 14일의 역사는 4년 전인 1903년부터 예비 되었다. 1903년 원산에서 두 명의 여 선교사가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제목은 선교사의 영적각성과 한국을 위한 부흥이었다. 기도회가 조금씩 커지자 하디 선교사를 강사로 모셨다. 하디는 말씀을 준비하다가 은혜를 받았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학력에 대한 교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교만,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인종차별, 한국인에 대한 편견 등 그 동안 잘못 생각한 것을 회개했다. 그가 회개하자 다른 선교사도 회개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와 같은 기도회가 각처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철저한 회개와 기도는 1907년 1월로 이어졌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사경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냉랭했다. 지도부인 선교사들과 한국 지도자들이 매일 낮 정오에 모여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14일 저녁에 역사가 나타났다. 많은 성도가 집회에 참석했는데, 집회 후에도 600여명이 남아 밤새 기도하는 중에 성령이 임하셨다. 그때 주님이 사용하신 사람이 길선주 장로다. 길선주 장로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그의 회개는 다른 성도에게로 이어졌고, 회개를 동반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모두에게 임했다. 성령의 역사는 계속해서 15일까지 이어져 15일 정오에는 선교사들이 성령충만을 받았다. 이후 전국적으로 교회마다, 기도회마다 성령의 불이 임했다. 1907년 1월 14일의 성령충만은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대적인 영적 각성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교회를 넘어 사회개혁운동으로 전개 되었다. 그래서 여성지위가 향상되고, 신분타파 운동이 일어났다. 교육열, 의식개혁과 함께 생활개혁, 미신타파와 선교사들의 한국에 대한 시각변화가 일어났다. 한국교회는 놀랍게 부흥하고 성장했다. 해외에 선교사까지 파송하는 선교운동으로 이어졌다. 성경 안팎에서 일어난 수많은 영적 부흥운동은 회개와 성령충만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준다.
성숙한 인격이 깊은 자기성찰에서 비롯된 것처럼 신앙성숙도 자기성찰에서 비롯된 회개에 있다. 성경에 나온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눈물의 사람이다. 다윗, 히스기야, 이사야, 예레미야, 느헤미야, 에스라 등. 자신과 민족의 죄를 위하여 한없이 회개의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이다. 회개의 눈물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선물을 주셨고, 특히 성령님의 충만한 능력을 선물로 주셔서 성숙하고 탁월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 회개는 성령충만의 방법이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심각하게 회개하는 심령과 회개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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