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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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708회 작성일 19-12-12 09:16본문
말씀이 소망이다.
행27:18~25
2019. 12/1. 11:00
소망이 중요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온 최초의 여자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리고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여자를 만든 이유를 아는가? 최초의 여성은 판도라이고, 제우스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프로메테우스를 벌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신중한 프로메테우스를 속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 제우스는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생각하는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판도라를 선물로 보냈다. 그런데 제우스는 판도라를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내기 전에 모든 신들로부터 선물을 가져오게 하여 그것을 상자에 담아 판도라에게 주면서 절대로 열어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호기심이란 못하게 하면 더욱 하고 싶도록 만들기 때문에 열어보지 말라는 제우스의 말이 판도라로 하여금 더욱 열어보고 싶게 만들었다. 사실 제우스가 이것을 노린 것이다. 궁금해서 견디다 못한 판도라가 선물상자의 뚜껑을 열고 말았다. 그러자 상자 속에서 온갖 악한 영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쟁의 영, 가뭄의 영, 기근의 영, 태풍의 열, 질병의 영, 유혹의 영, 미움의 영, 시기의 영, 갈등의 영, 절망의 영......이를 보고 깜짝 놀란 판도라가 상자를 닫았는데, 그 때 상자를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영이 하나있었다. 그것은 ‘희망’이라고 하는 영이다. 이것이 그리스 신화「판도라의 상자」이야기다. 세상이 이처럼 힘들고 어려운 것, 전쟁과 질병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고통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이 가득한 이유는 희망의 영이 상자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신화는 우리에게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죽을 일만 쌓여도 희망이 있으면 살만하다.’
신화 이야기처럼 우리가 살아가는데 참으로 중요한 것이 ‘희(소)망’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희망(소망)을 산소와 같다고 했다. 사람이 산소 없이 1분을 버티지 못한 것처럼 소망(희망)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이 쥐를 통해 실험을 했다. 캄캄한 상자 속에 쥐를 넣었더니 3분 만에 죽었다. 같은 상자에 작은 구멍을 뚫고 한줄기 작은 빛이 비치게 한 다음 쥐를 넣었더니 36시간(무려 720배) 동안 살아있었다. 이로써 소망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험을 통해 확인하게 된 것이다. 단테의 「신곡」지옥편을 보면,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의 현판에 ‘이곳으로 들어가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고 적혀있다.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지옥은 희망(소망)이 없는 곳이란 뜻이다. 마음속에 소망이 없다면 그 심령은 지옥인 것이다. 가정 안에 소망이 없으면 그 가정은 지옥인 셈이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전쟁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병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내일에 대한 보장’이라고 한다. 내가 내일까지 살아 있을 것인지, 내일도 여전히 해를 볼 수 있고, 숨을 쉴 수가 있고, 움직일 수가 있을 지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 그들을 가장 괴롭게 한다고 한다. 이 또한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
참 소망의 근거
본문 역시 소망의 중요성과 함께 소망의 근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가이샤라 감옥에 2년 여 동안 갇혀 있던 바울이 로마 황제의 제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호송 중에 있었다. 사실 로마를 가는 것이 바울의 중요한 바램이었다. 그것은 당시 국제도시 로마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로마교회의 후원을 받아 땅 끝으로 여겼던 서바나(스페인과 포르투칼) 지역까지 선교를 가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 꿈이 실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 그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로마병사의 호위를 받으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로마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는 놀랍고 특별하다. 그런데 그 배가 월동을 하기 위해 그레데 섬의 동쪽에 있는 미항을 떠나 서쪽에 있는 뵈닉스에 도착하기 직전에 유라굴로라는 태풍을 만나 여러 날을 지중해에서 표류하게 되었다. 미항에서 겨울을 보내자는 바울의 권면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항해를 하다가 이런 변을 당한 것이다. 물론 배 안에는 항해 전문가도 있고(선장), 이익의 당사자도 있고(선주), 다들 좀 더 편한 곳에서 겨울나기를 원하니(모든 선원과 승객 등), 누가 일개 죄수(바울)의 말을 귀담아 듣겠는가? 하지만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형통의 비결이라는 것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태풍으로 배가 며칠 동안이나 계속 표류하게 되자 배 안에 있는 기구들과 물건들도 모두 버렸고, 사람들은 기진맥진하여 살 희망조차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단 한 사람, 죄수 바울은 달랐다. 그 와중에 기진맥진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위로와 격려를 하고, 먹을 것을 만들어 먹이고 있었다.
다들 죽어가고 있는데, 바울만 홀로 이렇게 원기왕성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에게는 움직일 수 없는 소망, 유라굴로 태풍도 꺾을 수 없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똑 같이 처한 위기상황에서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 이유이다. 바울을 통해 소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바울이 위기 속에서도 낙담하지 않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이와 같은 소망이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를 통해 전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24). 바울은 천사를 통해 이 말씀을 전해 듣고 태풍 가운데 소망을 가지고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격려하고 위로하며 섬긴 것이다. 그래서 본문을 통해, 본문의 주인공 바울을 통해 ‘소망의 중요성’과 함께 ‘소망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이란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인간은 유라굴로와 같은 거대한 태풍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고, 이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면 낙담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소망이 있으면 다르다. 소망이 있으면 위기도 기회로 만들고, 절망도 희망으로 변화시킨다. 장애물을 디딤돌로 삼아 더 높이 오를 수 있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도와 구원하는 구원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소망에 대한 상징들
일상에서 망(희망)에 대한 상징이 여럿 있다. 소망의 상징 중 하나가 ‘닻’이다. 닻은 배를 정박시키는 도구다. 바람이 심해서 파도가 높아도 든든한 닻이 바다 속 깊이 박혀있으면 배는 풍파에 밀려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때때로 여러 가지 풍랑을 만난다. 하지만 아무리 풍파가 심해도 소망이 있으면 그 풍파에 우리의 작은 배가 밀려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망의 다른 한 가지 상징은 ‘별’이다. 별은 문학작품 등에 자주 등장하는 소망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상징이다. 나침반이 없을 때 별을 보고 방향을 살폈다. 특히 밤에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이나 사막 같은 곳을 가는 사람에게 별은 중요한 길잡이다. 우리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온 동방박사들도 별의 인도를 받았다. 우리의 인생행로에도 어두운 밤이 있다. 환난의 밤, 질병의 밤, 절망의 밤, 슬픔의 밤, 고독의 밤을 지날 때가 있다. 그 때 소망이 있으면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도 인생의 방향을 바로 잡고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다.
또 한 가지 상징은 ‘날개’이다. 어떤 새가 나무 가지에 앉았다. 그런데 그 나무 가지가 썩어서 부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새는 썩은 가지와 함께 땅으로 추락하지 않는다.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새는 날개를 펴서 공중으로 날아 더 튼튼한 가지위로 가서 앉는다. 살다보면 내가 의지하고 믿었던 그 나무 가지가 꺾일 때가 있다. 의지했던 건강이 무너지거나 사업의 실패로 돈이 없어질 때, 권력의 가지가 꺾여 무참히 무너질 때, 의지하던 부모형제, 혹은 친구가 떠날 때가 있다. 사실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세상의 것은 썩은 나무 가지와 같다. 이런 때라도 소망이 있으면 추락하지 않고 오히려 날개를 펴서 더욱 비상할 수가 있다.
히브리어로 소망을 티크바(תקוה)라고 한다. 이는 ‘끈으로 함께 묶다.’는 뜻을 가진 ‘카바’(קוה)라는 동사에서 왔다. 그러니 티크바의 본뜻은 ‘끈’(줄)인 것이다. 즉 소망이 끈과 같고, 줄과 같다는 뜻이다. 안전벨트와 같고, 구명줄과 같고,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에게 로프와 같은 것이 소망이라는 것이다. 또한 소망을 뜻하는 ‘케셀’(כסל)이란 단어도 있다. 이 단어의 본뜻은 ‘기름지다.’, ‘힘이 세다.’는 의미다. 여기서 기름지다는 것은 풍성하다는 뜻이고, 힘이 세다는 것은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다는 뜻이다. 소망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유력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소망이다.
그러므로 우리생활에서 소망은 절실하다. 소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쓰러지지 않는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 소망은 우리 인생의 닻이고, 우리 인생의 방향과 길을 비추는 별이고, 다시 비상(飛上)하게 하는 날개이기 때문이다. 또한 단단하고 안전하게 묶어주는 끈이고 위기상황을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러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풍성하고 영향력 있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소중한 소망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신’(incarnation) 예수님이 소망의 근거다. 예수님이 거센 풍랑에도 요동하지 않게 하는 소망의 닻이고, 예수님이 방황하는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시는 소망의 별이고, 예수님이 어떤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고 다시 박차고 비상하게 하는 소망의 날개이고, 예수님이 단단히 붙잡아야 할 소망이 끈(줄)이다. 본문의 바울이 자신은 물론 함께 승선한 278명의 생명을 난파선에서 안전하게 구원받은 것은 말씀이신 예수님께 근거한 이 소망 때문이었다.
오늘부터 겨울의 사순절로 불리는 대강절이 시작된다. 대강절은 성탄절 전 4주간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다. 그리고 매 주마다 의미가 따로 있는데, 첫 주일은 ‘소망의 빛으로 오신 주님’을 뜻한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소망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면서 다시 오실 그 주님을 기다리는 날이 오늘이다. 인생이란 바다에는 수많은 유라굴로라는 태풍이 불고 있다. 주님을 소망의 닻으로, 소망의 별로, 소망의 날개로, 소망의 끈(줄)으로 삼고 살자! 이것이 절망 중에도 낙담하지 않는 비결이고, 어려움 중에도 형통의 비결이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든든히 서는 비결이다. 인생이란 난파선에서 조난당한 수많은 영혼을 안전지대로 이끄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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