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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으로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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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8,552회 작성일 11-11-2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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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으로 들어가라.

마6:5~8

2011. 11/27   08:00, 11:00

마음을 성형하라.

지난번에 ‘루키즘’(Lookism)으로 인한 성형열풍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했는데, 성형과 관련된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다. 사는 것이 힘들고 지루해서 삶을 끝내고 싶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 저 좀 데려가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이 ‘그런 말 하지마라. 넌 앞으로 50년은 더 살 것이다.’고 하셨다. 이 음성을 들은 여인은 열심히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우선 자신감을 얻기 위해 성형을 결심했다. 그래서 여기저기를 고쳤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녀가 수술실에서 나오자마자 죽고 말았다. 죽어서 하늘나라로 간 그녀는 하나님께 따졌다. ‘하나님, 지난번에 50년은 더 산다고 해서 마음먹고 여기저기 고쳤는데, 왜 저를 벌써 불렀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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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난 넌 줄 몰랐다!’

 

과연 현재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 역시 저의 모습에 불만이다. 정말 바꾸고 싶은 부분이 많다. 하지만 우리 신자에겐 더 절실하게 성형이 필요한 곳이 있다. 그것은 외모가 아닌 우리의 ‘마음과 인생’이다. 우리의 생각을 성형하고, 관점과 가치관을 성형하고, 행위를 성형하는 것이다. 즉 주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볼 수 있는 눈, 주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 주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기회가 있는 대로 누구에게나 복음을 증거하는 입술, 나누고 베풀고 섬기는데 빠른 손과 발, 주님의 심장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성형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 초점을 두고 주님만 사랑하고 사모하며 사는 인생으로 성형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성령의’ 수술, ‘말씀의’ 수술(히4:10)을 받아야 한다. 이와 같은 성령과 말씀의 수술을 위한 중요한 도구가 바로 ‘기도’다. 기도는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인생을 성형하게 하는 소중한 도구다.

 

잘못된 기도생활

그런데 본문을 보면, 유대교와 유대인들은 이 중요한 기도를 왜곡하고 말았다. 그들의 종교와 신앙이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처럼 생명력을 잃어버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유대교만큼 기도에 대해 높은 기준과 우선성을 두는 종교는 없다. 그들은 신8:10절,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식사 때마다 기도했고, 매일 세 번씩(9시, 12시, 오후 3시) 성전에 모여 함께 기도했다. 물론 형편이 여의치 못한 사람들은 있는 곳에서 성전을 향하여 기도했다(단6:10). 성전을 ‘기도하는 집’(마21:13)이라고 한 것만 보아도 그들이 기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던가를 알 수가 있다. 이런 그들이 기도 시간에 성전이 아니라 회당이나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으로 가서 거기에 서서 기도를 했다(5).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인 것처럼, 영성이 깊은 경건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구제와 마찬가지로 기도 역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showing)으로 전락시켰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기도의 ‘쇼’를 한 것이다. 본문은 잘못된 기도생활에 대한 경계이고 올바른 기도생활에 대한 교훈이다. 주님은 여기서 올바른 기도생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라.”(6).

 

이렇게 기도하라.

기도는 신앙생활의 전부라 할 만큼 소중한 것이다. 기도는 주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셨고, 제자들에게 강조하셨던 일이다. 제자들 역시 기도생활의 모범을 보이면서 강조했다. 주님은 구제와 마찬가지로 기도 역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광장기도’가 아니라 은밀하게 드리는 ‘골방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하신다. 골방기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이는 곧 올바른 기도의 자세와도 관련이 있다.

 

1. 떠남과 단절이다.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여기서 “네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라는 말씀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회당과 큰 길 어귀”(5)와 같이 번잡한 곳을 ‘떠나’(withdraw) 한적한 곳으로 가라는 뜻이다. “골방”은 헬라어로 ‘타메이온’(ταμειον)인데. 창문도 없고 문만 닫으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는 곳을 말한다. 즉 ‘저장소’, ‘내실’, ‘밀실’, ‘눈에 띄지 않는 곳’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골방은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던 장소였다(왕하4:32~27). 그러므로 골방은 세속을 떠나 모든 것과의 관계를 끊고 오직 하나님과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주님 당시 유대인들의 기도 장소인 회당이나 큰 거리 어귀와는 뚜렷이 대조되는 장소이다.

 

여기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라는 말씀에서 ‘들어감’과 문을 ‘닫음’은 골방기도의 전제다. 이것은 ‘떠남’과 ‘단절’을 의미한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은 자주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기도의 골방을 찾으신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기도하시기 위해서 집을 ‘떠나고’(막1:35), 기적의 현장을 ‘떠나고’(막6:46), 모여드는 사람들과 제자들을 ‘떠나서’(막6:32, 눅5:16)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이는 한적한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떠남’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을 닫음’은 다른 사람이 보거나 들을 수 없도록 외부와의 철저한 ‘단절’(solitude)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은 세상에 대하여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집착에 대하여 문을 닫는 것이다. 떠남과 단절은 골방이란 단어의 어원에 이미 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타메이온’은 ‘자르다.’는 뜻을 가진 ‘템노’(τεμνω)에서 파생했다.

 

여기서 ‘떠남’을 물리적인 장소의 이동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떠남은 장소의 이동보다는 ‘비움’이다. 내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런 세속적인 모든 염려나 걱정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로부터 ‘단절’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 골방기도를 ‘비움의 기도’(emptying prayer)라고 했다. 그러므로 기도의 중요한 자세는 우선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음’(비움)이다. 비고 빈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는 것이다. 이렇게 빈 마음에 주님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기도다. 여기서부터 올바른 기도가 시작된다. 골방기도는 모든 것을 비우고, 모든 것을 끊고 은밀하게 계시는 주님을 대면하여 서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기도의 자세이고, 올바른 기도의 시작이다. 또한 주님께서 골방기도를 강조하신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가 ‘쇼’(5)가 되고, ‘자랑’(눅18:11,12)이 된다.

 

2. 집중이다.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이는 하나님의 존재적 특징과 기도의 본질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존재적 특징은 ‘은밀함’이다. 이미 구제에 있어서 ‘은밀함’이 강조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했다.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주님께서 골방기도를 강조하심도 하나님의 ‘은밀한’ 존재적 특징 때문이다.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계시고, 은밀한 중에 보시고, 또한 갚으시는 분이시다(6). 특히 현대인의 성경은 “은밀한 중에 계신”을 “보이지 않는 데 계시는”으로 번역하여 골방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는 자칫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곳에만 계시는 분으로 한정시키는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눈이 띄지 않는 곳으로서 골방의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데’(골방)에 계시기에 ‘골방’(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기도를 드려야한다는 것이다(얼마나 멋진 언어유흰가!). 특히 기도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 즉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자신의 기도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기도의 본질이면서 동시에 기도의 중요한 자세다. 기도는 은밀한 중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 향하는 것이다.

 

기도는 주님께 고정시킨 사랑스런 영혼의 시선이다. 기도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오직 주님만을 생각하고,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고,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는 것이다. 나의 관심을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주님께로 돌리고 마음의 눈으로 주님만을 응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중’은 떠남과 단절에 이어 기도의 중요한 자세인데, 이것은 골방기도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이다. 골방은 주님과 ‘대면’(face to face)하는 자리다. 그래서 골방기도를 주님과 ‘대면기도’(face to face prayer)라고 부른다. 이는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께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이유다.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빈 손 빈 마음이 되는 이유이고, 세속적인 모든 것들과 단절하는 이유다. 주님과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서, 주님과의 만남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빈손의 기도〉라는 찬양이 있다.

 

두 손을 모으기 위하여 가진 것 모두 다 버렸네.

세상에 눈 감고 유혹에 귀 막고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네.

아 주님은 내 모든 사랑의 주인

아 주님은 내 모든 소망의 주인

못 채울 가슴을 당신께 여옵니다. 어서 오소서 주님이여

 

우리의 기도는 떠남(비움)과 단절에서 시작되고, 최고(상)의 기도는 주님만 바라보는 것,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골방은 ‘특별한’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위 찬양처럼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속에 대한 집착을 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볼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그곳이 골방이 될 수가 있다. 그러면 최상의 영적 컨디션을 유지할 수가 있다. 전투에서 ‘전략적 요충지’를 우선적으로 확보하거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전투의 승패가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영적 전투다. 그러므로 신자에게 은밀한 기도의 장소(골방기도)야말로 영적 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획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 것은 사단에게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를 포기한 것과 같다. 모쪼록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속에 대한 집착을 끊고, 오직 주님만 바라봄으로 여러분의 골방을 확보하기를 바란다. 떠나지 못하고, 끊지 못할 때, 주님만 바라봄에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기도를 이기적인 야망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만다. 고(故) 함석헌 선생의 멋진 시를 소개하면 말씀을 맺고자 한다.

 

그대 골방을 가졌는가?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대는 님 맞으려 어디 갔던가?

네거리에던가?

님은 티끌을 싫어해

네거리로는 아니 오시네.

 

그대는 님 어디다 영접하려나?

화려한 응접실엔가?

님은 손 노릇을 좋아 않아

응접실에는 아니 오시네.

 

님은 부끄럼이 많으신 님,

남이 보는 줄 아시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여

말씀을 아니 하신다네.

 

님은 시앗이 강하신 님,

다른 친구 또 있는 줄 아시면

애를 태우고 눈물 흘려

노여워 도망을 하신다네.

 

님은 은밀한 곳에만 오시는 지극한 님,

사람 안 보는 그윽한 곳에서

귀에다 입을 대고 있는 말을 다 하시며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자 하신다네.

 

그대는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어디다 차리려나?

깊은 산엔가 거친 들엔가?

껌껌한 지붕 밑엔가?

또 그렇지 않으면 지하실엔가?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지붕 밑도 지하실도 아니요,

오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그대 맘의 네 문 밀밀히 닫고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버린 후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으면

극진하신 님의 꿀 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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