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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보다 아름다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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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140회 작성일 11-10-2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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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보다 아름다우랴!

l33:1~3

2011. 10/23 11:00(산상예배, 보성들풀미술관)

건강한 공동체를 지향함

오면서 지난주일 박 집사님의 기도를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했다. ‘황금들판처럼 우리의 신앙도 저렇게 아름답고 튼실하게 영글어 주님의 추수를 기다리면 좋겠고, 저 높고 푸른 가을 하늘처럼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과 사랑이 맑고 깨끗하고 더욱 높아만 갔으면 좋겠고, 단풍으로 물이 들고 있는 숲처럼 사랑으로 감사로 은혜로 기쁨으로 가득 물이 들고 나아가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배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지체 간의 교제를 나누게 되어 참으로 기쁘다. 여러분의 참여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모쪼록 주님 안에서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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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인 삶’을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다. 일례로 우리의 얼굴이 그 증거다. 얼굴에는 입과 두 개의 귀가 있다. 입은 나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두 귀는 나의 귀에 들려올 말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나 아닌 다른 존재가 전제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우리의 얼굴에 이미 인간의 관계성과 사회성, 대화성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하여 좋지 않게 생각하신 것이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와를 창조하여 아담과 함께 살도록 하셨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공동체 ‘가정’이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로 가정이 파괴되는 위기를 맞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을 구하시려고 또 하나의 가정을 창조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다. 그러므로 교회는 ‘대안’ 가정인 셈이다. 백옥인 집사님이 우리 교회에 대한 첫 소감을 ‘대가족 같다’고 하였다. 그 표현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누구든지 우리 교회에 와서 이런 가정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우리 교회가 이런 건강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가정과 같은 행복한 신앙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오늘 이 산상예배를 통하여 이와 같은 거룩한 가족의 의미를 더욱 깊이 경험하고 새겨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연합의 복

본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이 붙은 15편의 시들(120~134) 중 하나다. 절기(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축제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민족 공동체의 거룩한 연합을 노래하고 있다. 즉 신앙 공동체의 거룩한 연합의 아름다움과 그 축복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민족 공동체의 거룩한 연합에 대하여 ‘어찌 이보다 아름다우랴!’(1) 하고 감탄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감동적인 그 광경을 값진 기름에 흠뻑 젖어 향유냄새를 사방으로 퍼뜨리는 영광스러운 대제사장의 위임식(2)과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신 영롱한 아침 이슬(3)에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연합의 아름다움과 함께 연합의 ‘복’이다.

 

1. 보배로운 ‘기름’(2)

2절은 대제사장의 위임식에서 볼 수 있는 영광스러운 광경이다. 위임식의 절정은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이다. 머리에 부어진 기름이 얼굴에서 수염으로, 그리고 옷깃을 따라 흘러 온 몸을 적시고 있는 모습이다. 이 기름은 거룩한 기름으로 향기가 짙은 것이다. 그 향기는 사방으로 퍼지고 백성들은 그 향기를 맡으며 기뻐하게 된다. 형제의 연합이 보배로운 기름의 향기로 주변을 행복에 젖게 하는 대제사장의 거룩한 위임식과 같다는 것이다. 형제가 연합하는 것이 이렇게 영광스러운 것이란 뜻이다.

 

그런데 위임식에서 사용하는 이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제사장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어야 감당할 수가 있다. 오늘날 임직식에서는 기름대신 안수를 한다. 이 역시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을 비는 것이고, 또한 상징한 것이다. 형제의 연합을 위임식의 기름 부음에 비유한 것은 형제의 연합 가운데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이 곧 연합의 복이다. 신자의 연합과 교제를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가운데 성령의 임재가 있고, 기름 부으심이 있기 때문이다. 신자의 모임을 ‘거룩한’ 모임, 교제를 ‘거룩한’ 교제, 공동체를 ‘거룩한’ 공동체라고 한다. 이는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다. 거룩하신 성령이 그곳에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2, 헐몬의 ‘이슬’(3)

우리나라처럼 물이 풍부한 곳에서는 이슬의 가치를 모른다. 오히려 옷을 적시고, 차에 얼룩을 남긴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처럼 국토 90%가 사막인 곳에서 이슬은 말 그대로 생명의 보고다. 이슬은 모든 생물의 생존에 필수조건이다. 헐몬산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여름에도 만년설이 있을 정도로 아주 높은 산이다. 이 만년설이 바람에 날려서 이스라엘 땅에 이슬이 되어 떨어진다. 이스라엘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다. 우기 때에는 계속 비가 오나 건기 때는 비가 전혀 오지 않는다. 건기 때 동물은 물론 초목과 채소에 생기, 활력, 신선함을 공급해 주는 것이 이슬이다. 형제의 연합이 모든 생물에게 생기와 활력과 신선함을 제공하는 이슬과 같다는 것이다. 형제가 연합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슬의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서 성경에서 이슬은 ‘은혜’의 상징이 되고 있다. 건기에 이슬이 없이는 모든 생명들이 살 수 없듯이 주님의 은혜 없이는 인간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로 생명이 풍성하고 충만한 것처럼 주님의 은혜로 풍성한 삶, 충만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형제의 거룩한 연합이 있는 곳에 주님의 은혜가 임하고, 주님의 은혜가 있는 곳에 생명의 풍성함과 충만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또 하나의 연합의 복이다.

 

연합의 비결, 사랑

이는 우리 신자들의 모임이 이렇게 아름답고, 주님께서 이렇게 감격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보시고 축복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이런 거룩한 모임을 사모하고 만들어 가야할 사명이 있다.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성경은 신자를 하나로 묶는 ‘띠’가 사랑이라고 말씀한다(골3:14).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위해선 사랑 안에서 몇 가지 요구되는 것들이 있다(※Love의 알파벳 첫 글자에 따라).

 

1. 경청(Listen)

소통을 성공을 부르는 공감능력이라고 한다.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곧 경청이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귀를 항상 열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또한 민감하게 반응한다. 주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까지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시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음성도 아신다. 이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강조한 말씀이도 하다. 경청은 사랑의 표현이다. 부모는 자녀의 소리에 민감하다. 사랑하는 부부도 마찬가지다. 이는 건강한 관계, 건강한 공동체의 특징이다. 서로 간에 사랑을 키우고,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2. 헌신(Offer)

맛있는 빵, 혹은 맛있는 죽은 반죽이 잘돼야 한다. 반죽이 잘되려면 밀이 곱게 잘 빻아져야 한다. 통밀로는 반죽할 수가 없다. 여기에는 통밀이 밀가루로 철저히 으깨지는 희생과 헌신이 요구된다. 그래야 반죽이 잘되는 밀가루를 얻을 수가 있다. 사랑은 통밀이 밀가루가 되는 과정처럼 헌신을 요구한다. 헌신의 나무에 열린 열매가 곧 사랑이다. 이 사랑을 가루에 붓고 반죽을 하면 아주 차진 밀가루 덩어리가 되고, 여기서 맛있는 빵, 맛있는 죽, 맛있는 국수가 탄생되는 것이다. 헌신과 희생은 건강한 관계, 건강한 공동체를 위한 또 하나의 소중한 덕목이다. 사랑을 생명의 원천이라고 한다. 이 말 속에는 희생과 헌신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희생과 헌신이 없는 사랑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사랑을 표현할 때 ‘희생적인’, 혹은 ‘헌신적인’이라는 수식을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이 사랑이 우리와 우리 공동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명력이 넘치게 만든다.

 

3. 가치(Value)

사랑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가 상대방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상대방의 가치에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제가 요즘 조영남의 「지금」이란 노래를 애청하고 있다. 조영남 씨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도 그렇지만 특히 가사가 너무 마음에 쏙 든다. 그래서 부르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듣고 있다. 무엇이든 가치를 알면 사랑하게 된다. 또한 사랑하면 가치를 깨닫게 된다. 찬양의 가치, 기도의 가치, 예배의 가치, 교제의 가치를 알면 이것들을 사모하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또한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예배, 기도, 찬양, 교제와 같은 것들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관계,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선 서로 귀하게 여기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4. 포옹(Embrace)

사람마다 장점과 단점이 섞여 있다. 좋은 관계,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서 이것들을 지혜롭게 잘 다루어야 한다. 이것들은 연합에 촉매가 될 수도 있지만, 또한 걸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상대방을 알아주고 귀하게 여기고 존중해 주는 가치가 장점에 대한 태도라면 여기서 말한 감싸주는 것(포옹)은 단점에 대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눈이 먼 것’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을 가장 많이 닮은 부모의 사랑을 ‘눈 먼’ 사랑이라고 한다. 어찌 단점이 보이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사이, 가까이 지내는 사이가 되다보니 단점이 더 잘 보이겠지! 단지 그것을 모두 품어 버리는 것이다. 불순물 덩어리 광석을 녹여 순금을 뽑아내는 용광로처럼 사랑은 어떤 약점도 품어서 정화시킨다. 죄인인 우리를 의인이 되게 하신 주님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위대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 좋은 관계, 건강한 공동체를 위해선 상대방의 약점에 대하여 눈을 질끈 감고 꼭 끌어안아 버리는 것이다. 모든 불편한 것들을 해소하고 치유하는 최선의 방법이 끌어안음이다.

 

이 네 가지가 요소가 더해 질 때 사랑 안에서 아름다운 관계,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 아름답고 거룩한 연합을 경험할 수 있다. 주님은 신자의 이와 같은 아름답고 거룩한 연합에 복을 주신다. 모쪼록 오늘 산상예배배로 드리는 아름다운 장소 신자의 거룩한 연합과 교제를 뜨겁게 경험하고, 이를 계기로 교회생활에서 보다 좋은 관계, 건강하고 행복한 신앙 공동체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주님이 내려주시는 ‘기름’같은 성령의 임재, ‘이슬’같은 은혜의 복을 듬뿍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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