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장사꾼이 영적 조모(祖母)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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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273회 작성일 16-05-29 14:14본문
평범한 장사꾼이 영적 조모(祖母)가 되다.
행16:11~15
2016. 5/29. 11:00
해야 할 일이 사명이다.
요즈음 식당에서 여러 분이 식사준비를 돕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러다 부엌바닥이 내려앉으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이 앞선다. 아무튼 해야 할 일이라 여기며 즐겁게 열심히 섬기는 모습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이것이 ‘성숙함’이다. 성숙함은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인데, 책임감이란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다(responsibility=response+ability). 응답하기 위해 열려있고 준비하는 자세가 곧 책임감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응답하는 능력이 책임감이고, 무거운 책임을 즐겁게 감당하는 것이 성숙함이다. 이런 모습을 부엌을 들여다 볼 때마다 느낄 수가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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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일상의 모든 일들을 사명으로 알고 살라는 뜻이다. 우리 교회의 표어이자 사역의 태도가 ‘스스로’, ‘열심히’, ‘참되게’이다. 이는 해야 할 일들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으로 알고, 기왕 할 일 즐겁게 열심히 올바르게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일에 대한 성숙한 성도의 자세이고, 그래야 하는 내게 유익이 되고 복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일을 맡기신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본문은 해야 할 일을 사명으로 알고 즐겁게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유럽선교의 첫 열매
사도행전에 중요한 세 교회가 나온다.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 빌립보교회가 그것이다. 예루살렘교회는 모든 교회의 모체이면서 유대인 선교의 중심이었고, 안디옥교회는 이방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자 아시아 선교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빌립보교회는 유럽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유럽선교의 교두보였다, 본문은 빌립보교회가 세워진 배경이다. 이 교회는 한 여성의 회심과 헌신에서 시작되었다. 그 여성은 두아디라 출신 옷감장사 ‘루디아’이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서 유럽선교의 첫 열매가 루디아와 그녀의 가정이었다, 그래서 루디아와 그녀의 가정이 유럽 복음화에 소중하게 쓰임을 받게 되었다. 한 마디로 한 대륙의 운명을 바꾸는데 소중한 도구가 된 것이다. 역사가 토인비는 11절 사건을 유럽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라고 했다. 즉 바울일행을 실은 배를 유럽의 운명을 실은 배라고 했다. 이 사건이 유럽 복음화의 출발점이었고, 유럽문화는 곧 기독교 문화이니 이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구도 이를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루디아와 그녀의 가정이 이 엄청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그래서 루디아는 평범한 장사꾼에서 유럽 복음화의 조모(祖母)가 되고, 그녀의 집은 교회가 되고, 선교의 기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녀와 그녀의 가정이 이렇게 위대한 일에 쓰임을 받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기도
루디아는 그 출신이 말해주듯이 이방 여인이었는데, 유대교로 개종하였다. “하나님을 섬기는”(14)이란 표현이 이를 증거한다. 이 표현은 당시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에게 붙여진 수식어였다. 그런데 그녀는 여느 유대인 못지않게 유대교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던 것 같다. 특히 기도생활에 열심이었던 같다. 그녀의 기도는 선교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본문 앞부분에 바울 일행이 선교지역을 갑작스럽게 ‘마케도니아’(유럽) 지역으로 바꾼 이유가 나온다. 그들이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흑해남부 ‘비두니아’ 지역이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곳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7). 바울이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한 마케도니아 사람이 서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다(9). 그래서 이것이 주님의 뜻으로 알고 마케도니아로 가기로 결정했다(10). 바울의 환상 중에 나온 이 마케도니아 사람이 바로 ‘루디아’였다. 그녀의 기도가 응답된 것이 이렇게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 그녀의 기도는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빌립보 지역엔 유대교 회당이 없었다. 회당은 유대인 남자 열 명 이상이 있어야 세울 수 있었는데, 회당을 세울 수 있는 남자의 수가 부족했다. 그래서 회당을 세울 수 있도록 남자를 보내달라고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전도자를 보내주셨고, 회당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도록 하셨다. 우린 이 사건을 통하여 유럽선교는 루디아의 무릎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우리는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마땅히 빌 바도 모르고 엉뚱한 것을 놓고 기도하지만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이 루디아의 기도가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예배
우리 장로교 헌법에 따르면 예배를 중요한 은혜의 방편(도구)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예배를 통해 주신다는 것이다. 예배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며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고전15:10). 그 은혜를 받으려면 예배생활에 헌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루디아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빌립보 지역에는 유대교 회당이 없었다고 했다. 유대인은 회당이 없으면 주로 조용하고 한적한 강가나 빈들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오랜 전통이었다. 그래서 빌립보 지역 유대인 역시 안식일이면 강가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했다. 루디아는 이 모임에 열심히 참여했고, 그곳에서 회당을 세울 수 있도록 남성을 보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곳곳에 화려한 이방 신전이 있고, 그 신전생활에 익숙한 그녀가 유대교로 개종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신전은 고사하고 회당도 없어 강가에 모여앉아 예배드리는 초라한 모임에 열심히 참여한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가볍게 넘어갈 대목이 아니다. 그녀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증거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섬기는 시간, 장소, 일(모임)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예배생활 때문에 그녀가 바울일행을 만나게 되었다(13). 바울을 통하여 생명의 복음을 듣게 되었는데, 하나님께 그녀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복음을 받아들이는 복을 받았다(14b). 그래서 빌립보 지역의 첫 성도, 나아가서 유럽대륙의 첫 성도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 모두가 믿고 세례를 받았다(15a). 이 모두가 그녀의 신실한 예배생활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배는 만남이다. 예배는 주님과의 만남이고, 주님의 은혜와의 만남이다. 예배는 주님이 보내신 천사와의 만남이고, 주님이 보내신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예배를 통하여 이런 복을 누리기 바란다.
헌신
우리의 신앙은 ‘아는 것’(to know)과 ‘믿는 것’(to believe)과 ‘행하는 것’(to do)의 순환관계다. 건강한 신앙은 이것이 원뿔모양으로 순환하면서 점점 확장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신앙이 병들면 이 관계의 고리가 끊기고, 순환이 멈춘다. 성장을 멈추고 있는 신자들을 보면 ‘아는 것과 믿는 것, 행하는 것’의 이 순환의 고리가 끊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믿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서의 고리가 끊겨있다. 아는 것에서 믿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는데 행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루디아는 믿는 것을 즉시 실천에 옮겼다. 행동이 빠른 실천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교회사에 길이 남는 복을 받았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15).
여기에 그녀의 두 가지 헌신이 나온다. 하나는 ‘그와 그 집이 다’ 믿고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 집’이란 단순히 가족만 의미하지 않고, 집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자신만 믿지 않고 모든 가솔(家率)을 다 믿게 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울 일행을 강권하여 자기 집에서 머물도록 한 것이다. 이는 자신의 집을 빌립보 선교를 위해 제공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빌립보교회가 그녀의 집에서 시작이 된 것이다(40). 대부분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시작이 되었다. 예루살렘교회는 마가의 집에서 시작되었고, 고린도교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 라오디게아교회는 눔바의 집, 골로새교회는 빌레몬의 집, 데살로니가교회는 야손의 집에서 시작이 되었다. 이렇게 그녀의 집에서 시작된 빌립보교회는 유럽지역에 세워진 첫 번째 교회가 되었고, 유럽선교의 교두보가 되었다. 이후 바울의 선교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빌4:15,16). 바울이 로마감옥에 갇혔을 때 그곳까지 사람(에바브로디도)을 보내 옥바라지를 하고, 후원금을 보내 그를 도왔다(빌2:25~30). 이 모두가 루디아의 헌신에서 비롯되었다. 그녀의 헌신을 통해 온가족이 구원을 받고, 교회가 세워지고, 선교가 확장 되었다. 한 사람의 거듭난 성도가 주변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가 있다.
한 사람의 중요성
‘어머님 오래 사네(세)요!’
‘고마워 자기야 사망(랑)해!’
‘어디쯤 기(가)고 있어?’
사랑의 마음을 담아 표현한 원래의 의미가 오타 하나로 어이없는 뜻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좋은 뜻으로 한 말도 표현 하나에 큰 오해를 낳기도 한다. 말뿐만 아니다. 우리 인생사가 그렇고, 신앙생활도 그렇다. 모든 오해가 사소함에서 시작되듯 위대함도 사소함에서 시작된다. 사소한 일, 사소한 사건, 평범한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헌신과 결단에서 비롯된다. 본문에서 루디아를 통하여 이를 확인하였다. 한 사람 루디아의 간절한 기도가 바울선교의 방향을 바꿔놓았고, 성실한 예배생활이 구원에 이르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뜨거운 헌신이 가족의 구원, 빌립보교회의 탄생, 유럽선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주님은 여러분과 내가 루디아와 같은 그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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