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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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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391회 작성일 15-08-2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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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자!

시101:6~7

2015. 8/23. 08:00, 11:00

빈사(瀕死)의 사자상

 지난 종교개혁지 탐방 중에 스위스를 방문했다. 그곳은 칼빈과 쯔빙글리를 비롯하여 많은 개혁자들이 머물렀고,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취리히에 도착하여 스위스의 대표적인 종교개혁자 쯔빙글리의 유적지를 돌아보고 알프스의 융프라우 봉우리를 등정하기 위해 인터라켄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가던 중 뤼체른이란 아름다운 도시를 경유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빈사의 사자상’이라는 인상 깊은 유적지를 방문했다. 커다란 암벽에다 말 그대로 죽어가는 사자의 모습을 조각해 놓은 곳이다. 이것이 스위스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스위스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 중 하나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그들은 유럽 각 지역에 용병(傭兵)으로 몸을 팔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럽 각국에서 스위스 용병이 가장 환영을 받았다. 그들이 가장 충성스럽고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로마교황청의 근위병을 스위스 사람들이 맡고 있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이렇게 인정을 받게 된 계기가 있다. 그것은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경호를 맡고 있던 병사들이 상황이 어렵게 되자 모두 왕을 버리고 떠났는데, 오직 스위스 용병만 남게 되었다. 왕은 그들에게 자기 곁에 있다가 아까운 목숨 버리지 말고 속히 자기를 떠나라고 권했다. 그런데 그 때 스위스 용병 대장이 잠시 병사들과 의논을 한 다음 그들은 끝까지 왕과 함께 하기로 결정을 하고, 왕을 위해 시민군과 맞서 싸우다 768명 모두 전사했다. 훗날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자기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이렇게 적혀있었다. ‘우리가 신뢰를 잃으면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기에 죽을 때까지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충성스러운 사람이 환영을 받는다.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용병들의 이 정신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스위스의 정신이다. ‘빈사의 사자상’은 이 정신을 실천한 그들의 충성심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돈이 스위스로 몰리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이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돈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 때문이다. 이렇게 무언가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충성스러운 사람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환영을 받고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는다. 유럽 각 지역에서 스위스 용병이 환영받는 이유, 지금도 로마교황청의 근위병을 스위스 사람들이 맡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요즈음 취업준비생들 입장에선 직장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구직란(求職難)을 호소한다. 하지만 고용자 입장에서는 좋은 스펙을 가진 인재는 많지만 자기 직장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구인란(求人難)을 호소하고 있다. ‘사람은 많은데 (쓸 만한)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직장이 찾는 사람은 스펙 좋은 인재가 아니라 충성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충성스러운 사람을 찾고 있는데, 그런 사람이 드물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일꾼의 조건도 ‘충성’이다. 본문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6).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누구에게 집중되어 있느냐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재물이 많은 부자도, 권세 있는 권력자도, 뛰어난 학자나 기술자도, 탁월한 종교지도자도 아니다. 오직 충성스러운 사람이다.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사람을 찾으신다. 그런 사람을 곁에 있게 하신다. 그러므로 충성은 요즈음 제가 계속해서 말씀드리고 있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비결, 늘 하나님 곁에 거할 수 있는 비결이다. 반면에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7). 말과 행동이 신실하지 못한 사람, 곧 충성스럽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조차 싫어하신다는 뜻이다.

 

충성스러운 사람은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충성스러운 사람을 환영하고, 좋아할까? 왜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사람을 찾으시고, 또한 가까이에 두고 싶어 하실까? 그 답이 잠25:13에 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충성스러운 사람은 추수하는 날(가장 바쁘고 분주하고 힘든 날)에 얼음냉수처럼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러분이라면 어떠하겠는가? 보기만하면 불쾌하고 짜증나고 열불이 솟게 하는 사람을 찾고 싶고, 늘 곁에 두고 싶겠는가? 아니면 유쾌하고 즐겁고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위로가 되는 사람,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을 찾아서 곁에 두고 싶겠는가? 하나님도 마찬가지시다. 그래서 충성스러운 사람을 찾으시고, 또한 곁에 두고 싶어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을)시원하게 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파드’(רפד)이다. ①‘소생하게 하다.’(to revive), ②‘생기를 불어넣어 주다. 활력을 주다.’(to refresh), ③‘즐겁게 하다. 유쾌하게 하다’(to rejoice), ④‘걱정을 덜어주다. 위로하다.’(to comfort)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충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충성스러운 사람은 하나님께 기쁨과 감동을 드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시고, 또한 곁에 두고 싶어 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주님께서 찾으시고, 그래서 곁에 두고 싶어 하시는 충성스러운 신자가 되자!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사람을 귀하게 여기신다.

왜 하나님은 충성스러운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들에게서 감동을 하실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충성이 너무 귀하고, 하나님께서 충성스러운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귀한 것을 드리고, 귀한 사람을 보면 기쁘고 감동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금은 황금이고, 가장 귀한 금은 소금이다.’ 우리 속담에도 ‘평양감사보다 소금장수’라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광물인 이 ‘소금’은 예로부터 귀한 물질이었다. 유대인은 믿을 만하고, 신실하게 의리를 지키는 사람을 ‘소금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썩지 않는 약속을 ‘소금언약’이라고 했다. 이 ‘소금언약’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뜻한다(민18:1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언약이니라.”). 소금은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변하는 것을 방지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소금이 빠지지 않고 들어갔던 것이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2:13).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일에서 이 소금처럼 소중한 존재가 곧 충성스러운 사람이다.

 

충성스러운 사람은 소금과 같다.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다. 소금은 움켜쥐면 모래처럼 손에서 흘러내리지 않고 뭉치게 된다. 충성스러운 사람은 스위스 용병들처럼 위기가 와도 떠나지 않는다. 자신의 손익(損益)을 계산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라도 소금처럼 뭉친다. 또한 소금은 자기를 희생하여 맛을 낸다. 소금을 물에 넣으면 물에 녹고, 김치에 넣으면 김치에 녹고, 생선에 넣으면 생선에 녹아서 그 형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자신을 완전히 희생해서 맛을 내는 것이 소금이다. 충성스러운 사람도 자신이 맡은 일, 섬기는 사람, 소속된 공동체에서 완전히 자기를 희생한다. 그래서 맡은 일을 잘되게 하고, 섬기는 사람을 빛나게 하고, 섬기는 공동체를 부흥하게 만든다. 그러니 이런 사람을 만나면 어찌 기쁘지 않고,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16:7).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약속된 복이다. 하나님께 기쁨과 감동을 드리는 충성스러운 사람에게 하나님은 원수라도 더불어 화목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원수를 친구로, 적을 동지로, 역풍을 순풍으로, 거침돌을 디딤돌로 바꿔주신다는 뜻이다.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말로 표현하면 인생의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여 형통(亨通)하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충성스러운 사람이 누리게 될 복이다. 정말 우리가 주님께 충성하여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한다면 우리와 우리 가정, 일터, 그리고 교회는 형통하게 될 것이다. 놀라운 영향력을 세상에 떨치게 될 것이다. 원수의 마음을 움직여서라도 우리의 필요와 우리의 부족을 채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놀라운 복을 예비하신 주님께 우리 모두 충성하자! 주님께 기쁨과 감동을 드리는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자!

 

충성을 구하라!

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unfailing love-다함이 없는 사랑, 현대인의 성경은 이를 충성으로 번역)을 자랑하나니 그러나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잠20:6). 이 말씀은 충성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로는 누가 못하고, 무엇을 못하겠는가? 충성은 ‘다함이 없는 사랑’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도 부족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드리는 것이 충성이다. 그래서 참으로 충성스러운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충성스러운 사람을 기뻐하시고, 또한 그들에게 감동하시는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이 이 세대를 향한, 우리와 우리 교회를 향한 주님의 탄식이라 생각한다. 주님께서 ‘내가 끝 날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셨는데, 같은 의미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만큼 주님께서 우리의 충성을 기다리고, 충성스러운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가 말로만 하는 충성이 아닌 참된 충성으로 주님이 찾으시는, 그래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감동을 드리는 소금처럼 소중한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되자!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복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누가 이런 복의 주인공이 될까? 하나님께 충성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이다. 저와 여러분이 보지도, 듣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런 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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