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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감사로 넘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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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031회 작성일 15-07-0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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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감사로 넘치게 하라!

골2:6~7, 시100:1~5

2015. 7/5. 08:00, 11:00(맥추감사주일)

감사를 배우자!

 가난과 병고로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노부부가 있었다. 이들의 형편을 안타깝게 여기고 누군가 쌀 한 가마니를 주고 갔다. 그런데 그 날 밤, 도둑이 들어와서 그 쌀을 가져가 버렸다. 아침에 밥을 지으려고 나온 아내가 이 사실을 알고 너무 억울해서 남편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여보,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도둑이 쌀을 몽땅 가져가버렸어요. 그렇게도 도둑질할 데가 없어서 불쌍한 우리 것을 훔쳐가다니.’ 아내의 말을 들고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안타깝네요. 하지만 우리는 이 세 가지에 감사합시다. ①우리 같은 사람에게 쌀 한 가마니를 주는 사람이 있으니 감사하고, ②아무 것도 없던 우리에게 도둑이 가져갈 것이 있었으니 감사하고, ③비록 도둑이지만 그 쌀 가져다 배불리 먹을 테니 감사합시다.’ 이것이 이 부부의 행복비결이다. 비록 가진 것 없어 가난하고, 게다가 몸까지 병들었지만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행복이란 환경이나 소유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의 문제다. 그래서 동양 성현들 행복이 ‘삼지’(三知; 知足, 知止, 知分)에 있다고 했다. 내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현재 자기 자신에게 만족할 줄 아는 마음(知足), 내가 추구하는 생각이나 욕구, 행동을 멈춰야할 때 멈출 줄 아는 마음(知止), 어느 상황에서든 자신의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마음(知分)에 행복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온다. 결국 감사가 참된 행복의 비결이다. 특히 우리 신자에게 있어서 감사는 자신의 현재 영적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영적 온도계’와 같다. 믿음의 수위와 감사의 지수는 비례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항상 배우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배우는 존재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배우며 살아간다. 무엇보다 행복을 위하여 감사를 배우고 감사를 훈련하자.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성경에서 나온 주요 인물들은 감사의 달인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감사를 가장 잘 실천하고, 또한 강조한 사람이 사도 ‘바울이다. 그는 심지어 감옥이라는 답답하고 불우한 환경에 있으면서도, 더욱이 장래가 불투명한 수감생활 중에도 감사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감옥 밖에 있는 신자들을 향해 감사의 생활을 강조했다. 오늘 골로새서 본문 역시 그 중에 하나다. 본문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골로새 교회에게 보내 권면이다. 짧은 내용이지만 신앙생활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6)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네 가지 동사를 사용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7).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여기에 나온 동사들이 모두가 ‘현재 분사형’이다. 지속적인 생명의 동작을 강조한 것이다(①번은 완료형이다. 주 안에서 믿음의 뿌리를 박은 것은 이미 완료된 기정사실임을 강조). 또한 앞의 세 동사는 ‘수동태’이고, 네 번째만 ‘능동태’이다. 앞의 세 가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고, 네 번째는 내가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것은 배움과 훈련과 노력으로 된다는 것이다. 감사는 전적인 나의 책임이고,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삶을 감사로 넘치게 만들 수 있을까? 구약본문을 통해서 살펴보자(시100편 함께 읽음).

 

나아가라!

시편 100편은 ‘쥬빌라테’(Jubilate), 즉 ‘기쁨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 유대인에게 많이 애송되는 시 중의 하나다. ‘감사의 시’라고 제목이 있듯이 감사를 노래하고 있다. 우선 시편기자는 우리를 다음과 같이 초대하고 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2).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행위를 총칭하는 표현이다. 즉 예배에로의 초청(부름)이다. 예배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길)이다. 이 외에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기도, 찬양, 봉헌, 섬김 등이 있다. 이 모두를 흔히 예배의 요소라고 부른다. 그런데 우리가 예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요구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제물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제사를 위한 제물은 예배자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성경을 살펴보면 제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감사함’이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시50:13,14).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23). 시69:30,31절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가 있다. 감사가 예배의 중요한 조건이란 뜻이다. 이것은 예배의 요소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기도도 감사함으로 드리고(빌4:6), 찬양도 감사함으로(골3:16), 봉헌도 감사함으로(고후9:5,7), 섬김도(2) 감사함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감사함으로 기도를 드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고, 감사함으로 예물을 드리고, 감사함으로 섬기면 우리 안에 감사가 더욱 풍성해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곧 영적 풍요의 법칙이다. 세상적인 재화는 사용할수록 작아지거나 없어지게 되지만 영적인 재화는 사용할수록 더욱 풍부해지고 풍성해진다. 감사도 마찬가지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더욱 풍성해진다. 특히 예배의 요소들은 우리 안에서 감사를 일으키는 불꽃과 같은 것들인데, 여기에 감사의 기름을 부으니 감사가 흘러넘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감사로 흘러넘치게 하는 방법은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감사함으로 기도를 드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고, 감사함으로 예물을 드리고, 감사함으로 섬기는 것이다. 무엇이든 감사함으로 하면 감사가 흘러넘치게 된다.

 

알라!

할머니 집사님이 있었다. 주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주일아침에 헌금대신 동태 5마리를 머리에 이고 교회에 가다가 강도에게 머리를 각목으로 맞고 쓰러졌다. 믿지 않는 자녀들이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리고는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하나님이 살아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나님은 자기에게 충성하는 사람이 이 지경이 될 때 도대체 무엇하고 계셨던 거야? 동태만 챙기셨나? 이번 기회에 어머니를 다시는 교회에 못 나가게 하자!’ 그러던 가운데 어머니가 깨어났다.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믿음 없이 살아가는 우리 자식들을 두고 먼저 가지 않게 해주시고, 전도의 기회를 다시 주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려고 가져갔던 동태 5마리가 저 대신 각목을 맞아 주었기에 머리가 부서지지 않고 이렇게 깨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동태 5마리는 하나님이 보내어주신 천사였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똑 같은 상황을 두고, 자녀들은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늙은 어머니는 감사를 드렸다. 이것이 곧 믿음의 차이, 나아가서 깨달음의 차이다.

 

영어로 ‘감사하다’(thank)와 ‘생각하다’(think)의 어근이 같고, ‘은혜’(grace) 또한 ‘감사’ 혹은 ‘고마움’이란 뜻을 가진 gratitude와 어원이 같다. 이는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많이 생각할수록 더 많은 감사를 드릴 수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 감사는 은혜를 깨달은 만큼 할 수 있는 일이다. 감사는 깨달음이 많을수록 풍성해지고, 깨달음이 깊을수록 넘치게 된다. 위의 이야기에서 같은 사건을 두고 자식들과 어머니 사이에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시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3).

 

그것은 하나님을 ‘알라’는 것이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체험적인 지식이다. ‘체험하여 깨달아라.’는 뜻이다. 감사가 우리의 삶에 넘치도록 하는 비결은 체험하여 깨닫는 것이 중요한다. 특히 하나님에 대하여, 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하여 깊이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내게 어떤 분이시고, 내게 어떤 일을 행하셨고, 행하시고, 또한 행하실 것인가를 알라는 것이다. 깨달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란 사실에 기초하여 다음의 사실을 알라고 한다.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내 존재의 근원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라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알라는 것이다. 나는 왕이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나는 목자이신 하나님의 양이라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된 존재라는 사실을 알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을 감사로 넘치게 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깨닫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창조주 나의 하나님으로, 주인이신 나의 하나님으로, 왕이신 나의 하나님으로, 목자이신 나의 하나님으로 깊이 깨달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감사를 좌우한다. 이 지식이 깊어지고 많아지고 풍성해질수록 흘러넘치는 감사생활을 하게 된다.

 

천국을 경험하는 삶이 되라!

하나님의 주소는 두 가지라고 한다. 하나는 ‘하늘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특히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에 계신다는 의미다. 이는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계속해서 머무시도록 하는 방법이 곧 감사라는 사실이다. 어떤 분은 또 이런 말을 했다. ‘감사가 있는 곳은 천국의 분점이고, 감사가 없는 곳은 지옥의 분점이다.’ 감사는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고, 감사가 없는 불평이나 원망은 이 땅에서 지옥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란 뜻이다. 그렇다. 감사가 있는 마음, 감사가 있는 가정, 감사가 있는 교회, 감사가 있는 일터는 천국의 분점이다. 또한 천국이 경험되어지는 곳이다. 모쪼록 여러분의 마음이 천국의 분점이 되어 천국이 경험되어 지는 삶, 여러분의 가정, 무엇보다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 교회가 천국의 분점이 되기를 소원한다. 그래서 이곳을 들고나는 사람들마다 천국이 경험되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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