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힐러(healer),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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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581회 작성일 15-05-10 13:01본문
마음의 힐러(healer), ‘이삭’
창21:1~7
2015. 5/10. 08:00, 11:00(어버이 주일)
대머리 목사
어느 교회에 머리가 많이 벗겨진 목사가 담임 목회자로 부임했다. 그러자 신자들이 ‘대머리는 공짜를 좋아한다.’는 둥 목사의 대머리를 두고 여기저기서 수군댔다. 사소한 목사님의 외모가 구설수에 올라 부정적인 말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알아차린 목사는 부임예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제 머리가 많이 벗겨졌지요? 그 이유는 주님 때문이랍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라며 주님께서 예쁘다고 고맙다고 자꾸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셔서 이렇게 벗겨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그 교회에선 배꼽이 빠져버린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목사의 이 유쾌한 한 마디가 목사님에 대한 신자들의 부정적인 생각과 말들을 잠재우고, 모두를 기분 좋게 행복하게 만들었다. 어느 곳을 가든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 있다. 기분 좋게, 평안하게,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된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즐겁고 평안하고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 기쁨과 그 평안과 그 행복이 흘러가게 된 것이다.
어느 의사는 환자에게 하루에 세 번 이상 크게 웃을 것을 권장한다고 한다. 잘 웃는 사람, 자주 웃는 사람이 병에 대한 저항력도 좋고 회복도 빠르기 때문이다. 마음은 병을 일으키는 주범이면서 동시에 병을 치료하는 치료자다(Mind as Healer, Mind as Slayer). 때문에 마음이 괴롭고 힘들면 없는 병도 생기고, 마음이 즐거우면 병도 쉽게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건강잡지〈쌍떼〉에 따르면 프랑스 의사들이 가장 좋은 약으로 ‘웃음’을 뽑았다고 한다. 이것은 이미 성경이 말씀한 것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good medicine)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고 했다. 한 번의 웃음은 부정적인 어두운 생각을 날려버리고, 마음의 결박을 끊어버린다. 웃음은 기적의 씨앗이다. 신자는 이웃에게 웃음을 주고, 기쁨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특히 인생에 거름이 되어준 부모에게 기쁨이 되고, 나아가서 섬기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한다. 본문은 부모와 이웃에게 큰 웃음을 주었던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웃음이 없는 가정
‘젖먹이 아이에게서는 몸을 떼지 말고, 어린 아이에게서는 몸은 떼되 손을 놓지 말고, 소년에게서는 손은 놓되 눈을 떼지 말고, 청년에게서는 눈은 떼되 마음을 떼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자식이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단 한순간도 마음 편하게 발을 뻗을 수 없게 하는 평생의 기도제목이란 뜻이다. 한마디로 자식은 ‘애물단지’란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식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충만한 기쁨을 안겨준다. 자식이 없는 사람, 그래서 자식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 혹은 자식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끄시는 손길에 의해 고향과 친척을 뒤로 하고 미지의 땅 가나안까지 왔다(창12:1~4). 하나님은 이렇게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복으로 응답하셨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는 남이 부러워할 만큼 큰 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었다(13:2). 문제는 이 많은 재산을 이어갈 자식이 없었다. 이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더욱 답답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녀에 대한 약속만 하시고 그 자녀를 주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어 나름 해결책을 찾는 노력도 했다. 그래서 신실한 종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으려고 했고(15:2), 하갈이란 몸종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다(16:16). 그렇지만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걱정과 가정불화만 더욱 키웠다(16:4~6, 21:9~12). 그러다보니 아브라함과 그의 가정에 웃음이 사라지고 근심만 깊어갔다. 자식을 제외하곤 다 가졌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한 인생과 한 가정에 있어서 자녀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잘 보여준다.
웃게 하시는 하나님
히브리어로 어린이란 단어는 ‘건설자, 곧 미래의 건설자’란 뜻이다. 가정의 미래, 나라와 민족의 미래, 특히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건설하는 건설자란 뜻이다(당시 온 세상이 어린이를 어리석고 아직 완전한 사람구실을 할 수 없는 존재로 취급하고 있을 때).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투자순위 1위로 자녀교육을 선택한 것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셨다. 어린 아이들이 주님께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아이 한 명 한 명을 안고 기도해 주셨고, 바로 이들이 천국의 주인공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무튼 자식은 부모의 기쁨이고 자랑이다. 가정의 꽃이고, 장래의 희망이다. 그 무엇과도 비교가 불가능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기업이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천국의 보배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천금을 가지고 있고, 수많은 가축을 가졌어도 근심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그의 가정에 걱정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는 것은 당연했다.
드디어 이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창18:1).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 89세 때다. 이미 생물학적으로 자녀를 생산할 수 없는(18:11), 그저 지친 열망만 가지고 있을 때였다. 그렇지만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신 ‘전능하신 분’(אל שדי)이시다(17:1). 사람으로선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다.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가정을 찾아오신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8:10). 그런데 사라가 장막 안에서 이 말씀을 듣고 그만 웃고 말았다. 이것은 좋아서 기뻐서 웃은 것이 아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은 것이다. 자신의 상황에서 너무 얼토당토않은 말씀이었기 때문에 웃었다. 아브라함도 그랬다(17:17). 이런 모습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입장, 자기 수준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시는 일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라에게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18:14)고 반문하시며 꾸짖으셨다. 물론 하나님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이지만 너의 수준과 너의 입장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판단하지 말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은 빈말을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또한 하신 말씀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을 지시는 분이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아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1). ‘말씀하신 대로’ 라는 표현이 두 번이나 나온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성을 강조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2).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에 되어 사라가 임신을 하고, 또한 아들을 낳았다. 그가 ‘이삭’이다. 처음엔 어이가 없어서 웃었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웃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웃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너무 기뻐서 웃고, 자신에 일어난 일이 너무 놀라워서 웃었다. 무엇보다도 그토록 소망했던 자녀를 갖게 되어 기뻤다. 그래서 사라는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6). 이것은 모든 믿는 사람의 찬양의 기원이 되는 사라의 찬양이다. 사라의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내용이다. 자녀를 통하여 웃게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 웃음을 잃은 아브라함과 그의 가정에 웃음을 회복시켜주셨다. 이삭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그의 가정을 치료하고 회복하신 것이다. 근심의 그림자, 걱정의 먹구름을 제거해 버리신 것이다.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자!
자녀는 우리를 웃게 하시려고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엔 웃음이 떠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로 항상 웃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삭이란 이름의 뜻이 이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삭은 ‘웃음’이다. 이삭은 그의 부모에게 기쁨이었다.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도 기쁨이었다. 그러므로 여기에 자녀인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 있다. 그것은 부모를 항상 즐겁게 하는 것, 부모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하는 것이다. 부모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다. 이삭이 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왕궁에는 ‘웃음내시’가 있었다.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왕을 웃게 하는 직책을 맡은 사람이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자식은 부모에게 웃음 내시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효(孝)다.
흔히 효를 3등급으로 나눈다. 첫째는 ‘존친’(尊親)이다. 부모를 높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존대(尊待)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불욕’(不辱)이다. 부모가 욕을 먹지 않도록 바르게 사는 것이다. 마지막은 ‘능양’(能養)이다. 부모를 육신적으로 잘 보살펴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은 ‘열친’(悅親)이다.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다. 예로부터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효의 으뜸이라고 했다. ‘열친지효’(悅親之孝)란 말이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부모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느냐? 존친, 불욕, 능양이 그 방법이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대로 부모가 자식에게 ‘거름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면 자녀는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이 어버이 주일에 부모에게 기쁨이 되고 있는 자녀인지 생각해 보자.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또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다. 주님을 경외함으로,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음으로, 우리의 몸을 산제물이 되게 함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효자(녀)가 되고, 교회에서는 효자(녀)신자가 되는 것, 이것이 건강한 신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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