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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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4,957회 작성일 15-07-27 14:25본문
은혜를 잊지 말자!
시103:1~5
2015. 7/26. 08:00, 11:00
농부와 머슴
어떤 농부가 머슴과 함께 외딴 밭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숲길을 지날 때 갑자기 곰이 나타나 농부를 덮쳤다. 농부는 데굴데굴 구르면서 비명을 질렀다. 머슴은 주인을 두고 차마 혼자만 도망칠 수가 없어 자기 손에 있던 도끼와 쇠갈고리를 치켜들고 곰에게 달려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머슴은 온몸에 상처를 입었지만 결국 곰을 쓰러뜨렸다. 그런데 머슴이 곰과 싸우는 동안 나무 위에 피해있던 농부가 내려와서 곰의 가죽을 살피더니 도끼로 마구 찍어서 곰의 가죽을 망쳐놓았다며 머슴에게 호통을 쳤다. 위기에서 벗어난 이 농부의 눈에는 자기를 위해 목숨을 걸고 곰과 사투를 벌인 머슴은 보이지 않고 곰의 가죽만 보였던 것이다. 머슴의 온몸에 난 상처는 보이지 않고 곰의 가죽에 난 도끼 자국만 보였던 것이다.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생명의 은인을 외면한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그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사는 것은 더부살이이고, 죽음은 (본향으로)돌아가는 것이다.’(生寄也 死歸也)고 했다. 사람은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인가에)의존된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더부살이 인생이다 보니 주변 존재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린 살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한 사람은 흔치 않다. 그 이유는 자신이 베푼 것만 기억하고 받은 것은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남에게 베푼 일은 잊더라도 남에게 받은 은혜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흔히 감사를 인격의 척도, 나아가서 우리 신앙인에게는 신앙의 척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감사는 은혜의식에서 나온다.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일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은 온통 하나님께 마음을 쏟고, 하나님께 집중하고, 몰두하는 것이라고 했다. 온통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붓고, 집중하고, 몰두하는 방법이 바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다. 은혜를 기억할 때 마음을 쏟고, 집중하고, 몰두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말자’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은혜를 기억한 사람, 다윗
본문은 다윗의 시다. 다윗은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았던 사람, 아니 잊지 않고 살려고 애썼던 사람이다. 그 증거로 그는 왕이 된 후에도 자신을 항상 ‘이새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자신을 이렇게 부른 것은 비천한 자기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삼상16장에, 하나님께서 사울에 이어 왕이 될 사람을 세우도록 사무엘을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보내셨다. 이 때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초청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5). 그런데 이새는 이 모임에 들에서 양을 치고 있는 다윗은 부르지 않았다. 사무엘이 다른 아들이 없냐고 찾을 때 비로소 ‘말째가 있는데 양을 지키고 있다’(11)고 했다. 우린 여기서 다윗이 가족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한 잊혀진 아이, 가족으로부터 소외를 당한 아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특히 이새가 다윗을 ‘말째’(개역성경)라고 한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말째를 히브리어로 ‘학카톤’(הכתין)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나이’의 개념을 넘어 ‘등급’의 의미도 담고 있다. 가장 늦게 태어난 아이(막내)라는 뜻과 함께 ‘제일 변변치 못한 놈(꼴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당시 양을 지키는 것은 이 학카톤의 몫이었다.
이렇게 한(寒)데서 양이나 지키며 가족으로부터 소외받은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한 나라를 경영하는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대개 잘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무너진 이유가 자신의 ‘본래성’(originality)을 잃고 교만할 때다. 그런데 그는 자신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하여 이새의 아들이라고 부른 것이다. 자신의 본래성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오늘의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역시 그를 부르실 때 ‘이새의 아들, 다윗’이라고 하셨다. 네게 베푼 은혜를 잊지 말라는 뜻이다. 본래성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는 평생을 철저한 은혜의식에 사로잡혀 살았다. 이런 은혜의식이 치명적인 약점을 뛰어넘어 성군이 되게 했던 것이다.
기억해야 할 은혜
오늘 본문도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은혜를 기억하라고 자신에게 촉구하고 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2). 그는 여기서 기억해야 할 은혜의 목록을 열거하고 있다(3~5). ①사죄의 은혜, ②치료의 은혜, ③파멸에서 구속의 은혜, ④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는 은혜, ⑤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는 은혜, ⑥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그것이다. 여기서 열거하고 있는 은혜의 사건들은 둘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구원’(죄, 질병, 파멸)의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관을 씌우심, 만족케 하심, 새롭게 하심)의 은혜다. 그런데 여기에 나온 모든 동사의 시제가 ‘현재형’이다. 이는 은혜의 현재성과 계속성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도 계속 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기억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은혜는 지금, 여기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구원의 은혜를 비롯하여 일상의 은혜들이다.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매일을 은혜의식 속에서 살아야 한다. 나아가 그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은혜를 받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이것이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그 은혜에 반응하는 것이다. 은혜를 받았는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에 합당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그 은혜는 헛것이 되고 만다. 오스카 와일드의 「그날 이후」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은혜를 받았던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그들을 다시 만나셨다. 한 알코올 중독자를 만나셨다. 그는 앉은뱅이로 살다가 주님을 통해 고침을 받은 사람이었다. 주님은 그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물으셨다. 그가 한 숨을 쉬면서 말했다. ‘나를 고쳐준 분이군요. 앉은뱅이로 살아갈 때는 구걸하며 살아도 부끄럽지 않고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두 발로 걸으면서부터는 얻어먹을 수도 없고 마음에 맞는 직장을 얻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방황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은혜가 정말 은혜 되게 하려면 기억해야 한다. 그러면 넘치는 이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하며 살까?’(시116:12) 고백하게 되고, 그런 삶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은혜를 기억하면
사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적으로 잘나고 못남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역전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고전1:26~28).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다. 사울과 다윗은 비교가 안될 만큼 사울이 탁월했다. 그런데 그 탁월한 사울은 버림을 받고 별 볼 일 없는 다윗이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 그것은 그가 늘 은혜를 기억하였고, 그 은혜에 올바로 반응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다. 행복한 사람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은 은혜는 기억하지 않고 원망할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섭섭한 것만 생각하고, 마음에 맺힌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일생동안 불행하게 산다. 그러나 ‘아! 은혜가 크다.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것이 은혜구나.’ 하면서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된다. 이 사람이라고 어찌 원망할 것이 없고, 섭섭한 일이 없고, 마음에 맺힌 것이 없겠는가? 어찌 불편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일이 없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다 덮고도 남을 만큼 은혜의식이 크고 넓으니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살면서 부모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녀는 효자가 된다. 선생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사람은 좋은 제자가 된다. 좋은 신자가 되고, 좋은 예배자가 되고, 좋은 헌신자가 되기 위해선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한다.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좋은 하나님의 자녀,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래서 본문에서 다윗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고 자기 자신에게 당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기억하지 않고 잊고 살아서 그렇지 우리 찬송가(304장) 가사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다 기록할 수도, 측량할 수도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다. 우리 다같이 이 찬송을 드리면서 기록할 수도 측량할 수도 없는 그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결단의 기도를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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