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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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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7,580회 작성일 22-12-2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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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함께

1:18~26

2022. 12/25. 11:00(성탄절, 송년주일)

성탄은 함께를 위해서다.

복음서에서 주님의 탄생을 언급한 책은 마태, 누가, 요한복음이다. 그런데 책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누가복음은 예수님 탄생의 역사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탄생 당시 로마제국의 사건(황제포고에 의한 인구조사)과 그 지역을 다스렸던 총독의 이름(구레뇨)을 밝히고 있다. 기독교가 사사로이 생긴 비밀스러운 종교가 아니라 역사성이 분명한 역사적인 종교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는 누가복음이 로마인(데오빌로)에게 기독교를 변호하려는 목적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은 영적 복음서답게 탄생사건을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성탄의 이유와 의미, 목적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1:14에서 성탄의 의미를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으로 규정하고, 3:16에서 그 이유와 목적을 말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또한 마태복음인데, 이는 유대인을 상대로 기록된 복음서이기에 구약성경이 약1,600회 정도 예언하고 있는, 그래서 그들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과 관련된 사건마다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본문도 그 중에 하나다. 성탄에 있어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강조하고 있다. 정혼자 마리아의 임신소식에 어리둥절하고 있는 요셉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에 의한 것이며(20), 아이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일러주셨다(21). 그리고 이는 선지자 이사야에 의한 예언의 성취(22,23)라고 했다.

 

 

여기서 예수(21)라는 이름은 성탄의 목적을 보여준다.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아심이라.예수님이 구원자시라는 것, 그러니까 주님께서 오신 목적은 죄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이자 목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름, 임마누엘(23),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는 성탄의 본질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이다. 가난한 자와 함께, 우는 자와 함께, 아픈 자와 함께, 연약한 자와 함께, 압제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멸시를 당하는 자와 함께, 죄악의 사슬에 묶인 자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다. 실제로 주님께서 이 땅에 사신 날 동안 이런 사람과 함께 먹고 마시고 문제를 해결해주고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래서 성탄절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대 선물이고, 최대 이벤트다. 구약의 모든 이야기가 여기로 수렴하고, 신약의 모든 이야기 또한 여기로부터 발산한다. 사실 신()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과 함께 할 수 있겠는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것이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다. 이것이 성탄절이다. 성탄절을 최대의 기적이라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함께가 중요하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르달 교수의 딸은 자서전에서 부모와의 기억을 이렇게 적었다. ‘내가 필요로 할 때 부모님은 언제나 나의 곁에 없었다. 한 마디로 나는 엄청나게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경제잡지 포브스에서 유명인의 자녀들이 어떤 훌륭한 교육을 받는지 조사를 하다가 결국 고통 받는 유명인의 자녀들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이 책에 결론이다. 부족한 것 없고 똑똑하기까지 한 유명인의 자녀들이 불행했던 것은 함께하는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의 솜뭉치와 1의 쇠뭉치 중에 어느 것이 더 무거울까? 둘 다 같다. 똑같이 무게가 1이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훅 불면 날려가는 솜도 함께 뭉치면 쇠뭉치와 같은 묵직한 무게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힘들다. 어렵다고 말하지만 함께 하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고, 극복해 낼 수가 있다. 그래서 함께함이 중요하다. 특히 인생에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삶의 질과 방향, 그리고 평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우리가 주님과 함께하면 우리의 신분과 존재가 바뀌게 된다. 죄 용서를 통한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받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자녀, 천국의 백성이 된다. 이 모든 은혜가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우리가 누리게 된 복이다. 그런데 이런 복이 성탄절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주님의 성탄을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2:10)이라고 한 것이다. 이런 좋은 기쁨의 소식을 늘 간직하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함께 하려면

그런데 이와 같은 성탄의 기쁨을 경험한 사람은 주님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명이 있다. 그러니 성도 또한 함께하는 삶을 추구해야 하고, 살아야 한다. 우선 가족과 함께, 지체들과 함께, 주변 이웃과 함께 잘 살아야 한다. 어디에 있든지 함께하는 삶으로 주님의 자녀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오신 주님의 삶이 우리를 통해 주변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는 주님의 삶을 통해 알 수가 있다. 빌립보서에 따르면,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려고 먼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셨다(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다음은 겸손히 자신을 낮추셨다(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마지막으로 희생하셨다(2:8,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권리포기와 겸손, 그리고 희생을 통해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셨다. 누군가와 함께 하려면 이와 같은 각오와 결단이 요구된다.

 

 

어떤 분이 그랬다. 함께 하려면 부허비실장이 되라고 했다. ‘는 다른 사람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Fuller)이고, 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Coverer)이고, 는 다른 사람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Keeper)이고, 은 다른 사람의 실수나 실패를 격려하여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Energizer)이고, 은 다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하며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것(Applauder)이다.’ 너무 단순화한 것 같지만 우리가 더불어 함께 하는 삶을 실천하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함께 하지 못할 자들과 함께 하러 오셨다. 성탄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죄인과 함께 하기 위해 오신 임마누엘의 은혜이고, 증거다. 이제 우리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받았고, 그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주님께 기쁨이 되는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성탄절뿐만 아니라 올해의 마지막 송년주일의 결론이다. 주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무엇보다 주님처럼 권리포기와 겸손과 희생을 통해 부허비실장을 실천하여 함께하는 삶, 곧 임마누엘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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