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동행’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동행’

페이지 정보

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9,023회 작성일 22-11-06 13:30

본문

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동행

5:21~24

2022. 11/6. 11:00

장거리 인생, 누구와 동행할까? 

흔히 인생을 짧고, 허무하고, 덧없이 지나가는 꿈과 같다고 말한다. 성경도 하룻밤 경점 같고, 풀잎 끝에 이슬 같고,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 같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주로 인생무상을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표현들이다. 하지만 인생 칠팔십 년,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백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자주 말하고 듣는 것처럼 인생은 장거리요 마라톤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장거리 인생여정을 혼자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던 동행자가 있게 마련이다. 함께 가야할 길이라면 동행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동행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와 동행하느냐. 동행자가 누구냐에 따라 동행의 질, 동행의 의미와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 인생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아름다운 동행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행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이다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꿀벌을 따라다니면 아름다운 꽃밭을 누비게 되고파리를 따라다니면 냄새나는 오물과 시궁창을 갈 수밖에 없다.’ 성경도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13:20)고 했다. 이는 만고불변의 철칙이다. 그러니 동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낄 수 있다그러므로 누구와 동행하면서 어떤 영향을 받는지, 그 동행이 아름다운 동행인지 항상 잘 점검해 보아야 한다. 경건한 성도와 동행하면 날마다 의롭고 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지만 경건하지 않는 사람과 동행하면 악하고 불의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주님과 동행하면 날마다 천국을 경험하게 되지만 사단과 동행하면 매일 지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그래서 이 시간에는 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아홉 번째로 동행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동행한다는 것

동행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단어를 할라크(הָלַךְ)라고 한다이는 가다.’, ‘따르다.’, ‘걷다.’는 등 여러 의미로 성경에서 쓰이고 있다가다.’, ‘따르다.’, ‘걷다.’동행하다.’가 되었을까아무래도 바짝 따라 가다보니 함께 걷게 되고그래서 동행하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 같다동행은 단순히 함께 걷는 것보다 함께 사는 것을 뜻한다부부처럼 친밀하게 사귀고’, ‘소통하고’, ‘교제하는’ 것을 뜻한다부부 역시 다투기도 하고미워하기도 하지만 한평생 묵묵히 함께 사는 사이다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동행이다구약성경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부로 자주 표현하고 있고신약도 주님과 교회의 관계주님과 성도의 관계를 부부로 표현하고 있다그래서 교회와 성도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한다이는 주님과의 친밀성을 강조하면서동시에 주님과 항상 동행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주님과 친밀하게 사귀고소통하고교제하는 존재가 성도이기 때문이다.

 

또한 할라크라이프 스타일도덕적인 성품의 뜻도 가지고 있다예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주님이 먼저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자주님이 사셨던 삶의 방식과 주님의 성품을 살아내는 것이다성도는 이렇게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동행하면서 그 의 일부가 된 사람이다흔히 제자를 스승을 닮은’ 사람스승에게 물든’ 사람이라고 한다삶의 태도는 물론 사상이나 가치관삶의 방향과 목적성품소소한 습관까지 다 닮은 사람이다그래서 스승의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닮고주님께 물든사람이 성도. ‘닮음물듦함께 있음을 통해 이뤄진다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함께 먹고함께 마시고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생활하며, 보고 듣고 배우면서 따르다보니 주님을 닮고주님께 물이 들게 된 것이다이 모든 과정이 동행이고, 또한 동행의 목적이다. 신앙생활이란 동행훈련인 것이다. 그리고 이 동행의 좋은 모델이 본문의 에녹이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기까지 10명의 족장 가운데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족장이 에녹이다. 본장의 족보는 하향식인데, 마치 하나의 공식처럼 각 인물을 누가 누구를 낳았고, 낳은 후, 낳았으며, 몇 년을 살고 죽었더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낳았고-낳은 후-낳았으며-죽었더라.’는 인간의 숙명적인 고리다. 이것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모든 인간의 숙명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외인 사람이 나온다. 에녹이다. 에녹의 경우는 낳았고, 낳은 후, 낳았으며, ‘죽었더라.로 끝나지 않고,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로 끝이 난다.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24). 전통적으로, 이 진술은 에녹이 죽음을 겪지 않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래서 신약성경 히브리서 저자는 에녹을 이렇게 소개한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더라.’(11:5a). 아울러 그는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 이유도 말한다.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11:5b).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기에 죽음을 넘었다는 것인데, 이 모든 이유가 하나님과의 동행에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동행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비결이고, 또한 죽음 넘어서는 비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절 밖에 안 되는 짧은 본문에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두 번이나 말씀하고 있는데, 그가 동행을 시작한 시점과 기간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65세에 무드셀라를 낳은 후부터 시작하여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동행 이유가 성경에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무드셀라의 출생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추정할 수는 있다. 무드셀라란 이름은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뜻인데, 실제로 그가 죽은 이듬해에 홍수심판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고, 영원하지 않는 세상보다 하나님께 마음을 쏟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렇다에녹처럼 이 세상은 영원하지도 않고 전부가 아니라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종말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걸을 수 있다상황과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고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동행의 조건

동행(同行)의 한자적 개념은 동일한 행보란 뜻이다.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함께 같은 길을 걸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방향(목적지)이 같아야 하고, 속도가 같아야 하고, 친밀함이 있어야 한다. 먼저, ‘방향이 같아야 한다동행을 위해서는 진행하는 방향이 같아야 한다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동행하려면 삶의 방향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여기서 방향이란 뜻이나 목적(혹은 목적지), 삶의 태도 등을 의미한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그의 뜻이나 목적, 삶의 태도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맞췄다는 뜻이다이런 점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태도를 알아야 한다그래서 우리에게 항상 요구되는 것이 말씀과 기도인 것이다. 아무튼 주님과 동행을 위해선 끊임없이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우리의 뜻과 목적, 삶의 태도를 맞추어야 한다.

 

 다음은, ‘속도가 같아야 한다상대방의 속도를 무시하고 자기의 속도에 맞춰가는 사람은 동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일 뿐이다. 또한 자기 속도에 상대방이 맞춰주기를 바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동행하려면 상대방의 속도에 자신의 속도를 맞춰야 한다. 자기 속도에 상대방이 맞춰주시길 원하는 것은 동행의 바른 원리가 아니다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속도를 맞추며 순종해야 한다때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다급히 재촉하시는 때도 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속도(기다림과 서두름)에 나를 맞춰 함께 가는 것이 동행의 비결이다. 마지막으로, ‘친밀함이다이것은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조건(방향과 속도)의 전제다. 뜻이나 목적지, 삶의 태도가 방향이 같다는 것, 상대방의 속도에 자신의 속도를 맞춘다는 것은 그만큼 친밀하다는 뜻이다. 누군가와 동행하려면 반드시 마음()이 같아야 하고, 목적지나 삶의 태도가 같아야 하고, 속도가 같아야 한다. , 친밀해야 한다(앞에서 설명한 동행의 의미 참조). 이와 같은 것이 같지 않으면 친밀함에 문제가 생기고, 친밀함에 문제가 생기면 동행할 수가 없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것이 부부사이인데, 일생을 함께 동행하지 못하고 중도에 갈라서는 경우가 많다. 살다가 친밀함에 문제가 생겨서 그렇다. 본문에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에 대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다고 했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하다는 의미다동행하는 삶이 주님께 기쁨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이드 러너(Guide Runner)

여러분, 가이드 러너를 아는가?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함께 운동하며 시각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맞은 사람을 가이드 러너라고 한다. 어느 TV에서 마라톤 연습을 하는 가이드 러너를 보았다두 사람은 붉은 끈으로 팔목을 묶은 채 달렸다가이드 러너는 함께 달리는 시작장애인에게 휘어진 길입니다.’, ‘왼쪽에 장애물이 있습니다.’ 계속 길의 정보를 알려주며 장애인 마라토너와 호흡을 맞추었다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달리며 조금씩 단축시키고 있는 기록은 말 그대로 사랑의 기록이고, 기적의 기록이다. 연습을 끝낸 뒤 나누던 두 사람의 뜨거운 포옹이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참으로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가이드 러너가 계신다.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령님은 영적 시각장애인과 같은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시고, 주님과의 동행하는 삶으로 우리의 길을 지도해 주신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과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삶의 방향(목적지), 추구해야 할 삶의 태도를 가르쳐주신다.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친밀함을 갖도록 도우신다. 그러므로 언제나 옳으시고, 바른 방향만을 제시하시는 영적 가이드 러너이신 성령님을 온전히 믿고 따라갈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주님과의 성공적인 동행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영적 가이드 러너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께 기쁨이 되는 성공적인 동행의 삶을 살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33 / 5 page

설교말씀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