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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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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8,406회 작성일 22-11-1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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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성장

4:13~16

2022. 11/13. 11:00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

독일의 정신과의사 미하일 빈터호프가 쓴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이런 글이 있다. ‘대가를 치르고 고통을 참는 것이 우리가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런 관점에서 고통은 사람을 좀 더 성숙한 자아로 만드는 성장통이다. 단순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인격이 되도록 만든다.’ 고통은 책임감이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그는 책임지는 행동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대신 내가 그렇게 하려고 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 변명대신 책임을 지려고 하는 의지적인 태도가 성숙함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억장이 무너지고 애가 끊어지는 슬픈 현실이다. 누구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 다시는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부터 반성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더욱 슬픈 것은 무슨 일이 발생할 때마다 내가 그렇게 하려고 했다.’고 당당히 말하고, 그 일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나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이 모두가 성숙하지 못한 까닭이다. 성숙하지 못함은 개인은 물론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린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성경은 사람을 두 종류로 구분을 한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곧 하나님께 속한 사람과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다시 성도를 성숙하지 못한 육에 속한 성도성숙한 영에 속한 성도로 구분을 한다. 첫 번째는 논의 대상이 아니고, 문제는 두 번째다. 특히 믿지만 성숙하지 못한 육에 속한 성도가 문제다.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 고린도서인데,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였다. 현존하는 바울의 편지 중에서도 가장 양이 많지만 잃어버린 편지까지 합하면 그 양은 지금보다 훨씬 많다. 이는 그만큼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심각했다는 뜻인데, 그 이유는 성숙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다(본문 14절 참조). 이와 같은 성도의 성숙하지 못한 태도는 믿지 않는 세상에 덕이 되지 못하고, 몸인 교회에 유익이 되지 못하고, 주님께 영광이 되지 못한다. 성숙해야 덕이 되고, 유익이 되고, 영광이 되어 주님께 기쁨이 될 수가 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열 번째 성숙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성장()이 중요한 이유 

아기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은 절대 아기를 낳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기를 키우는 것이 힘만 드는 것은 아니다. 즐거움도 대단하다. 아기를 키우면서 가장 큰 즐거움은 아기의 자라는 모습이다. 누워있기만 하던 아기가 어느 날 몸을 뒤집고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그리고 첫 걸음마를 내디딜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온 식구가 박수를 친다. 또한 가족을 알아보고 방긋방긋 웃고, 조금씩 말을 하고, 재롱도 부린다. 가정은 온통 웃음바다가 된다. 이렇게 아기의 성장하는 과정은 키우면서 겪는 온갖 어려움을 다 잊게 된다. 주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린 신앙인이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얼마나 기뻐하실까? 처음 교회를 나올 때는 마치 지옥에서 출장 나온 사람 얼굴 같았는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소중한 보물을 발견한 사람처럼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혼자서 성경을 읽고, 서툴지만 기도도 하고, 모임에서 섬기고, 예배를 사모하여 예배를 드린다. 이렇게 성장하며 변화하는 모습에 주님께서 얼마나 흐뭇해하실까? 자녀의 성장이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것처럼 성도의 성장은 주님께 기쁨을 드리게 된다.

 

그렇다면 성장과 성숙이 기쁨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곧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또한 건강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태어났지만, 살아있지만 성장하지 않는 것은 둘 중에 하나다. 죽었거나 건강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식물도 보라. 비를 맞으면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가 활기를 얻고, 푸르고, 싱싱하게 자란다. 하지만 죽은 것은 비를 맞으면 거뭇거뭇 썩어서 주저앉는다식물이 자라는데 비는 필수적인 요소다살아있는 식물은 그 비를 맞고 아름답게 자라는데 죽은 것은 생명의 단비를 받고서 오히려 썩는다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성도, 건강한 믿음을 가진 상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고 성장하고 성숙하지만죽었거나 건강하지 못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성장도 성숙도 없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욕망의 도구로 삼으면서 부패하게 된다. 아무튼 죽은 것은 생기도 없고반응도 없다더 자라고자 하는 열망도 없고자라나지 못함에 대한 위기감도 없다반면 살아있고 건강한 것은 날마다 자라고 더욱 든든해지고, 결국 열매를 맺을 만큼 내적으로 충만해진다. 그래서 사람이든 식물이든 성도든 성장과 성숙은 기쁨과 보람의 원인이고, 성장과 성숙이 없는 것은 근심과 걱정의 원인이다. 이것이 기쁨이 되는 중요한 이유다.

 

성장()은 명령이다.

본문은 또한 성장의 이유를 이렇게 말씀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15). 자라감, 성장과 성숙은 명령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러한 성질이 아니다. 생명, 곧 사는 것이 명령인 것처럼, 자라는 것 역시 명령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살아있음은 성장과 성숙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결국 자라지 못한 것은 살라는 명령(생명)에 대한 거부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장과 성숙의 명령을 달리 표현하면 우리가 반드시 실천하고 실현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란 것이다. 그러니 성장과 성숙이 얼마나 엄숙한 사명인지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같은 말을 하였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3:18). 그런데 본문은 성장과 성숙의 목표까지 제시하고 하고 있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에게까지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3절도 같은 말씀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이르리니.

 

성경은 예수님을 알파와 오메가(1:8)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주님이 모든 것의 시작(처음)이자 마침(나중)이라는 뜻이다. 성장과 성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님이야말로 우리 지향하는 성장과 성숙의 기초이자 목표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성장과 성숙의 가장 완전한 모델(본보기)이시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2:52). 여기를 보면 주님의 성장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주님은 지혜와 키가 자라갔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러우셨다. 이것은 주님의 정신적인 성장(지혜), 물리적 혹은 신체적인 성장(), 영적 성장과 관계적 혹은 사회적 성장(하나님과 사랑에게 사랑)을 뜻한다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균형있고 건강하게 성장하셨다는 것이다. 성도도 교회도 주님처럼 이렇게 균형이 있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성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날마다 성장()해야 할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성장이 주님의 명령이자 뜻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성장()을 이룰까?

앞에서 주님을 본보기로 한 네 가지 측면의 성장()을 소개했다. 물론 이 네 가지가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영적 성장이다. 이 영적 성장이 다른 세 가지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3:2).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해야 정신과 육체, 사회적 관계도 원만하고 건강하게 유지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네 가지, 특히 영적 성장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일까? 첫째는,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다. 말씀을 헬라어로 로고스’(λόγος)라고 한다. 로고스란 단어의 뜻이 많지만 그 중에 기원’, ‘원리’, ‘핵심이란 뜻이 있다. 말씀은 단순히 구원의 진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말씀은 우리 삶의 원리요, 핵심이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5~17). 말씀은 구원의 진리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원리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 장로교 신조 제1조에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무오(無汚)한 유일의 법칙이다.’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성장에 필요한 중요한 자양분은 곧 말씀이다. ‘세월이 지나면 성장하겠지!’ 아니다. 저절로 자라는 법은 없다.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말씀을 사모하여 부지런히 말씀을 우리 마음에 심어야 한다. 그래야 성장의 열매를 거둘 수가 있다.

 

둘째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영적 성장에 또 하나의 비결이 기도다. 말씀이 밥이라면 기도는 호흡과 같다. 아무린 건강한 사람도,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먹지 않으면 건강을 잃게 되고, 숨 쉬지 않으면 죽는다. 사실 호흡은 건강의 중요한 척도다. 숨소리만 듣고도 그가 건강한 사람인지 허약한 사람인지 금방 알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기도는 영적 건강의 척도다. 나아가서 영적 성장()의 척도다. 그의 기도를 들어보면 그의 영적 깊이와 성숙, 영적 수준과 상태를 알 수가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큰 보람 중 하나가 기도를 인도하는 여러분의 기도를 들을 때다. 정말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여러분, 건강하고 아름다운 영적 성장을 원하는가? 열심히 기도하기 바란다. 기도에 더욱 많은 시간을 쏟고, 기도의 무릎이 되기 바란다. 기도의 부흥은 곧 신앙의 부흥, 영적 성장으로 나아가게 한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도 기도에 있다

 

셋째는,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다. 근육이 잘 발달된 사람을 건강미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근육은 지속적인 운동으로 만들어지고 강화된다. 영적 근육 역시 영적 운동을 통해 만들어지고 강화된다. 섬김이 영적 근육을 강화시키는 비결이다. 섬김을 통해 말씀이 우리 생활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기도가 더욱 능력있게 된다. 그리하여 건강한 신앙을 가지게 되고, 건강한 신앙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성장이 일어난다.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냐는 문제로 다툼이 있었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 위에 군림한 사람이 아니라 밑에서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신 분이 주님이시다. 여기서 큰 사람이란 성숙한 사람이다. 섬김이 성숙의 비결이고, 정말 영향력이 있는 큰 사람이 되는 비결이다. 성장과 성숙은 주님의 뜻이자 명령이고, 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의 비결이다. 말씀과 기도, 섬김을 통해 날마다 성장하고 성숙하여 주님처럼 정신적, 신체적, 영적, 관계적으로 두루 균형있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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