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감사’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감사’

페이지 정보

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8,287회 작성일 22-11-20 13:42

본문

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감사

살전5:16~18

2022. 11/20. 11:00(추수감사주일)

감정의 전용 고속도로

한 감정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데 평균 90초가 걸린다.’ 뇌 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J.B.Taylor)의 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일로 화()를 냈다면, 그 화는 90초 후면 생리적으로 우리의 몸과 뇌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90초가 지났는데도 계속 화를 낸다면 그것은 우리가 화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화를 붙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리고 이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뇌에는 화에 이르는 전용 고속도로가 생긴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을 볼 수가 있다. 아니면 그 사람이 바로 내 자신일 수도 있다. 자주 화를 내는 이유는 화와 관련된 전용 고속도로가 뇌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화가 아니더라도 자주 경험하는 정서(기쁨, 슬픔, 불평, 원망, 감사 등)가 있다면 그것과 관련된 전용 고속도로가 뇌에 깔리게 된다. 소위 뇌에 특정 신경회로가 생긴다는 것이.

 

이렇게 전용 고속도로가 만들어진 감정은 일상에서 다른 감정보다 쉽게, 그리고 자주 경험할 확률이 높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반응성(reactivity)이라고 한다. 자주 반복적으로 습관화된 감정은 반응성이 높은 감정인 것이다. 어떤 감정에 반응성이 높은지. 누가 건드리면 자동적으로 나오는 반응성이 높은 감정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자! 그리고 이렇게 습관이 된 감정은 태도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성장시키고 풍요롭게 하는 좋은 생각과 감정을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자주 반복적으로 훈련하여 습관이 되면 뇌에 좋은 생각과 감정에 이르는 전용 고속도로가 깔리게 된다. , 좋은 생각과 감정에 대한 반응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것은 결국은 좋은 태도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주 반복적으로 습관화해야 할 좋은 생각, 좋은 감정은 무엇일까? 물론 많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감사일 것이다. 감사만큼 좋은 생각, 좋은 감정, 좋은 태도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의 뇌에 감사에 이르는 전용 고속도로가 깔려서, 감사에 대한 반응성이 높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열한 번째 감사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말세적 특징

디모데 후서는 말세의 특징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3:1,2). 바울은 말세의 특징 중 하나로 사람에게서 감사가 사라진 것을 꼽고 있다. 어느 글에서 읽은 것이다. 세상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 수많은 생명나무 과실을 먹을 수 있었는데, 이 모든 것에 아담과 하와가 감사치 아니하여’ 먹지 말라고 하신 한그루 선악과나무 열매를 따먹음으로 죄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아담과 하와가 지천에 널려있는 생명나무 열매에 대해 감사치 않음으로 그 모든 축복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많은 생명나무의 열매보다 단 한그루 선악과나무의 열매에 대한 불만이 범죄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거꾸로 선악과나무는 지천에 널려있고, 생명나무는 딱 한그루만 남았다.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이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의 삶이 감사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고, 그래서 바울은 감사치 아니함을 말세적 특징으로 꼽은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민수기. 민수기는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을 기록한 것인데, 여기에서 그들의 삶이 불평과 원망으로 얼룩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목이 마르다고, 길이 나쁘다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했다. 물론 광야는 생활하기에 불편한 곳이다. 길도 없고, 거칠고, 메마르고, 모든 것이 결핍된 곳이 광야다. 그렇지만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면서 돌보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곳이 또한 광야다.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경험하며 사는 곳이 광야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불평을 쏟아내었다. 문제는 그 불평이 점점 더 심해졌다. 이것이 불평의 속성이다. , 불평은 또 다른 불평을 낳고, 마침내 불평은 습관이 되고 만다. 그러다보니 별 것 아닌 것도 불평하게 된다. 문제가 커서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에 이르는 전용 고속도로가 깔려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불평중독자가 되고 만다. 지금 세계적으로 이 불평 바이러스가 코로나19보다 더 강하게 역사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 범사에 감사하라.’(18)는 본문의 말씀을 실천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까그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감사에 이르는 전용 고속도로가 우리 뇌에 깔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한 몇 가지 감사 노하우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렇게 감사하라!

첫째, 있는 것, 얻은 것을 생각하며 하는 감사빙점이란 소설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를 아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폐결핵으로 인생 황금기인 24세 때부터 13년 동안 거의 침대에 누워 지냈다. 또한 직장암, 파킨슨, 척추결핵 등으로 계속 투병생활을 했다. 그런 그녀에게 한 줄기 강렬한 빛이 쏟아졌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그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녀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원죄와 하나님의 사랑에 깊은 관심을 갖고 글을 썼다. 그것이 빙점이고, 이 소설이 그녀를 일본 최고의 작가로 만들었다. 42세 때였다. 그녀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질병으로 내가 잃은 것은 건강뿐이었습니다. 그 대신 신앙과 생명을 얻었습니다.’ 삶이란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 그런데 잃은 것, 없는 것에만 주목하면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불평꾼이 될 수밖에 없다. 얻은 것, 남아있는 것에 주목해야 감사할 수가 있다. 누구에게나 잃은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다. 그렇지만 잃은 것보다 얻은 것, 아직 남아있는 것이 훨씬 많은 인생이다. 문제는 우리의 관심이 잃은 것, 없는 것에 있기에 감사보다 불평이 앞선다. 항상 얻은 것에 집중하고, 아직 남아있는 것에 집중하며 감사를 실천하자

 

둘째, 만들어서’ 하는 감사감사할 수 있는 일만 가지고 감사한다면 누구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요구대로 살 수 없다범사에 감사하려면 감사할 수 없는 것까지 감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그 비결이 만들어서 하는 감사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찾고, 감사의 이유를 만들어 감사해야 한다. 감사 할아버지라고 별명을 가진 노인이 있었다. 모처럼 고기를 사오다가 그만 넘어졌는데, 뒤를 따라오던 개가 그 고기를 물고 도망갔다. 넘어진데다 고기까지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화가 나고, 마음이 상해겠는가그런데 이 노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감사합니다.’고 외쳤다. 이를 본 한 젊은이가 그에게 물었다. ‘어르신, 넘어져서 다치고 고기까지 잃었는데 뭐가 감사합니까?’ 그러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 사람아, 건강해서 그래도 입맛은 남아있다네.’ 고기가 있어도 입맛이 없어 못 먹는 사람이 있는데 비록 넘어져서 다치고 고기까지 잃었지만 자신에게는 무엇이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입맛이 있다는 것이다. 소위 이와 같은 태도를 만들어서 하는 감사라고 한다. 단순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감사의 조건을 찾고, 감사의 이유를 만들어서 감사를 한 것이다.

 

셋째, 믿음으로’ 하는 감사감사는 믿음의 표현이고, 믿음의 수준이고, 믿음의 열매다. 믿음의 사람은 그래서감사, ‘그러니까감사, ‘그럼에도감사, ‘그것까지감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감사하며 산다. 이런 감사를 믿음의 감사라고 한다.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라고 한다. 이런 믿음의 감사를 드린 사람이라야 범사의 감사, 무조건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구약의 그 유명한 감사대장 하바국 선지자가 좋은 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그는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지라도 즐거워하며 기뻐한다.’고 고백한다.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이 즐거운 이유였고, 하나님이 기쁨의 이유라는 것이다. 원래 그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불평 전문가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적인 믿음을 가진 다음 그의 태도가 이렇게 바뀌었다. 불평 전문가에서 감사대장이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은 감사의 절대조건이고, 감사는 믿음의 꽃이다. 감사가 주님께 기쁨이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주님은 믿음을 기뻐하시는데, 믿음의 꽃인 감사를 드리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구약시대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물이었다. 그런데 이 제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제물을 드리는 제사자의 마음이다. , 감사하는 마음이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50:14,15,23) 라고 했다.

 

항상 감사의 말을 하자!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말 대로 된다는 뜻이다. 특히, 무심코 내뱉은 말이 그대로 된다는 것으로 말을 조심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를 뒤집으면 좋은 말은 자주 할수록 좋다는 뜻도 된다. 그 말이 좋은 씨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자주 반복적으로 훈련해서 습관이 된 말이 우리의 뇌에 전용 고속도로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사는 자주, 많이, 반복적으로, 습관이 되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뇌에 감사로 이르는 전용 고속도로가 깔리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감사가 태도가 된다.

 

교회 데크에 있는 에메랄드그린과 같은 나무를 상록수라고 한다. 상록수는 날씨가 변해도 항상 푸르다찌는 듯한 여름에도 혹한의 겨울에도 푸르다감사생활 역시 이와 같아야 한다주변사정이나 상황에 영향 받지 않는 변함없는 감사가 이어지는 생활이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 기쁨이 되는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다. 이런 사람에게 감사는 절로 열리는 문이 된다. 사랑의 문, 임재의 문. 변화의 문, 축복의 문, 행복의 문이 절로 열리게 된다. 감사는 수증기와 같다. 수증기는 공중에서 사라지 않고 다시 이슬로, 눈으로, 비로 땅으로 내리게 된다. 작은 것 감사도 우리에게서 끝나지 않고 주님께로 올라가서 은혜의 단비로, 이슬과 같은 은혜로, 눈과 같은 축복송이로 변해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이것이 감사하는 사람이 잘 되는, 형통한 이유다. 절로 문이 열리게 되는 이유다. 또한 주님께 기쁨이 되고 주님의 사랑을 받는 이유다. 감사는 믿음의 온도계다. 감사의 횟수가 믿음의 넓이를, 감사의 깊이가 믿음의 깊이를 결정한다. 뿐만 아니라 감사는 죄에 대한 예방주사와 같고, 항생제와 같고, 방부제와 같다. 그래서 건강한 믿음, 곧 영적 건강을 보장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있는 것 얻은 것을 생각하며 하는 감사, 만들어서’ 하는 감사, 믿음으로’ 하는 감사의 사람이 되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34 / 5 page

설교말씀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