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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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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8,097회 작성일 22-12-1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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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나눔

11:24~25

2022. 12/11. 11:00

우유 한 잔의 사랑

존스 홉킨스 병원 공동 설립자 하워드 켈리(Howard A. Kelly)의 일화다. 그는 의과대학을 다니며 스스로 등록금을 벌기 위해 집집마다 방문해서 물건을 팔러 다녔다. 물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날도 종일 방문판매로 온몸이 지칠 대로 지쳤고 배도 고팠다. 그는 다음 집에 가서는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집 현관문을 두드리자 예쁜 소녀가 나왔다. 부끄러움이 많은 그는 차마 배고프다는 말은 못하고 물 한 잔만 달라고 했다. 그러자 소녀는 그가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고 큰 컵 가득 우유를 담아왔다. 그는 그 우유를 단숨에 마셨다. 그러자 온몸에서 힘이 솟아나고 눈이 밝아지는 듯 했다. 우유 값을 묻자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 엄마는 남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돈을 받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그는 소녀의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특히 대가없는 사랑의 나눔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뛰어난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렀다. 우유 한 잔을 건네주었던 예쁜 소녀도 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만 큰 병에 걸렸다. 그 도시 병원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중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큰 도시에서 있는 전문의를 찾으면 희망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큰 도시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 병원에 10년 전 그녀에게 우유 한 잔을 대접받은 그 학생이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의사는 환자를 보고 한 눈에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바로 그 소녀임을 알아보았다. 그는 최선을 다해 치료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난 그녀는 퇴원을 앞두고 치료비 청구서를 받았다. 비용을 걱정하며 청구서를 받았는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청구서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한 잔의 우유로 치료비가 모두 지불됨.’ 그녀는 청구서를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대가 없이 베푼 한 잔의 우유가 이렇게 큰 보답으로 돌아온 것이다.

 

한 소녀가 베푼 우유 한 잔이 켈리를 변화시켰다. 그는 이 일로 어떤 의사가 되어야할지를 고민했고, 결국 가난한 이웃에게 인술을 베푼 좋은 의사가 되었다. 시골에서 온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의 비싼 호텔비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 자비로 요양원을 만들어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었고,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그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 4명 중에 3명은 그가 치료비를 내주었다고 한다. 우유 한 잔이라는 작은 나눔이 이를 실천한 소녀 자신에게는 큰 혜택으로 돌아왔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한 사람을 변화시켜 그를 통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리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기적이다. 곧 나눔의 기적이다. 나눔은 자기 자신에게도 큰 유익이 되지만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사랑은 지지 않는다고 했다. 사랑의 나눔은 결코 헛되지 않고 1006030배의 결실을 맺는다. 한 소녀에게서 시작된 사랑나눔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준 것처럼 오늘 나와 여러분을 통해 흘러가는 예수님의 사랑이 이 땅에 소망과 기쁨을 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 열세 번째 사랑의 나눔에 대해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남을 잘 되게 하는 삶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말씀한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양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더욱 풍성한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어서 어떻게 풍성한 생명을 주실 지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1). 그것은 목숨까지 주시는을 통해서다. 사실 이 말씀은 교회와 성도가 어떤 삶을 살아야할 지에 대한 중요한 지침이다. 주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주어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신 것처럼 성도와 교회 또한 희생과 헌신을 통해 다른 사람을 잘 되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남을 잘 되게 하는 삶에 대해 성경은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 축복의 통로(‘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이고, 본문에서 두 번이나 반복해서 표현되고 있는 윤택이란 단어도 같은 의미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 지리라.’(25). 윤택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라바(רָוָה)물에 퐁당 잠기다.’, ‘안을 가득 채우다.’는 뜻이다. , 물을 부어 내적으로 채우고 외적으로 완전히 잠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윤택하게 하는 사람은 물을 부어주는 사람이다(영어로 기부자Rain maker, 곧 비를 가져온 사람이라고 함도 이 때문인 듯). 그래서 내적으로 채우고 외적으로 완전히 잠기게 하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은혜로 잠기게 하고, 사랑으로 잠기게 하고, 축복, 위로, 소망, 생명으로 잠기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을 잘 되게 하는 것을 뜻한다. 성경에는 하나의 경제원칙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주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소위 신성한 경제원칙이라고 한다. 이는 경제뿐만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7:12)이것을 기독교 황금률(Golden-Rule)이라고 부른다. 이 황금률이 경제원칙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 것이다. 다른 이를 먼저 축복하라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 먼저 물을 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나에게도 축복이 임하고, 내가 그 물로 적셔진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경제원칙은 성경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이와 같은 신성한 경제원칙을 실천하는 것, 곧 기독교 황금률을 실천하는 것이 먼저 다른 사람을 윤택하게’(내적으로 채우고 외적으로 잠기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이 주고’, ‘베풀고’, ‘나누는 것이다.

 

 

나눔의 원칙

나눔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3:27,28). 여기에 적어도 4가지 원칙이 나온다. 첫째,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여건과 시간이 있을 때, 혹은 기회가 있을 때 나누라는 것이다. 여기서 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뜻한다. 여유나 여건, 물질, 시간, 힘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다. 그런데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기회는 주어졌을 때 선용해야 한다. 기회가 있는 대로 열심히 나누며 살아야 한다. 둘째, ‘마땅히 받을 자에게우선순위를 정하여 꼭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나누라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가진 물질도, 시간도, 재능이나 힘도 생명도 모두 제한적이다. 모두에게 나누고 싶고, 모두를 섬기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제한된 것을 가지고 보다 효과적으로 나누기 위함이다. 그래서 바울도 나눔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6:10). 모든 이에게 하되 믿음의 가정들에게 먼저 하라는 것이다. 믿음의 가정들부터 순차적으로 나눔의 범위를 넓혀가라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부터, 가까운 사람부터 먼저 나눔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셋째, ‘아끼지 말며아낌없이 나누라! , 인색하지 않게 풍성하게 나누라는 것이다. 어떤 분의 말이다. ‘성공하고 싶고, 돈을 벌고 싶고, 넓은 인맥을 갖고 싶으면 밥을 사라. 사람을 모이게 해서 나눠주어라. 많이 만나고, 만나게 해주고, 아낌없이 베풀어라. 그러면 그 사람들은 당신의 재산이 된다.’ 그렇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의 숫자는 내가 도와준 사람의 숫자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회 있는 대로 마땅히 받을 자에게 아낌없이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넷째, ‘갔다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미루지 말고 즉시 나누라는 것이다. ‘즉시현금 갱무시절’(卽時現今 更無時節)이란 말이 있다.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은 없다는 뜻이다. 바로 지금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나눔도 마찬가지다. 지금 즉시가 중요하다.

 

 

풍족하여 질 것이요.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 질 것이요.’(25a). 여기서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원문에는 축복하는 자(The blessing soul: 네페쉬 베라카נפשׁ־ברכה)로 되어 있다. 이는 우리 성경이 보다 구체적으로 번역을 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적절한 번역이라 생각한다. 이는 누군가에게 구제하는 것(나누는 것)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누는 삶이 곧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삶이고, 또한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축복한다는 것은 단순한 입 서비스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이다. 여기서 더욱 눈여겨 봐야할 단어는 풍족하다.’이다. 이를 히브리어로 다샨(דּשׁן)이라고 하는데, 이는 기름지다.’, ‘기름지게 되다.’, ‘재를 가져가다.’, ‘받아들이다.’는 뜻이다. 이 단어의 명사형 데셴(דֶּשֶׁן)기름진 재’,풍성한 재’, ‘비옥함의 뜻과 함께 축복이라는 뜻도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풍족하다는 를 통과한 풍족함이다. 재는 곧 희생과 헌신, 죽음을 뜻한다. 그러니까 희생헌신을 통과한 풍족함, 죽음을 통과한 축복을 뜻한다. 주님께서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하게 얻게 하시려고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과 같다. 누군가를 축복하고, 누군가를 잘 되게 하기 위해선 를 통과해야 한다. , 헌신과 희생, 죽음을 각오해야 나누는 삶을 살 수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헌신과 희생의 배후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헌신과 희생을 감수하며 소중한 자기 것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주님의 삶이었고, 주님을 닮은 삶이고, 그래서 주님께서 기뻐하신 것이다.

 

 

오늘은 대강절 셋째주일이다. 대강절 셋째주일은 사랑을 의미한다. 사랑하며 사는 것이 주님을 기다리는 태도라는 뜻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헌신과 희생을 감수하며 자기 것을 주고 베풀고 나누며 사는 것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세다. 가진 것이 없어 나눌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가진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이다. ,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나눔은 가진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만 있으면 나눌 것은 무궁무진하다. 나눔은 다른 사람을 잘 되게 하는 것은 물론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이다.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는 일이다(딤전6:19). 일종의 거룩한 보험인 것이다. 이것이 또한 주님의 삶이었고, 주님을 닮은 삶이고, 그래서 주님께서 기뻐하신 삶이다. 지키는 것만으로, 찾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나눠야 비로소 완성이다. 참으로 사는 것이 된다. ‘남에게 주라그러면 너희가 받을 것이다. 그것도 많이 꾹꾹 눌러 흔들어서 넘치도록 너희 품에 안겨줄 것이다.’(6:38 우리말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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