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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다시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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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7,637회 작성일 23-01-0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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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다시 새롭게

5:19~22

2023. 1/1. 11:00(신년주일, 개당 기념주일)

새롭게 시작하려는 노력  

한 여인이 잔뜩 근심어린 얼굴로 목사를 찾아왔다. ‘목사님, 저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어요. 새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늘 작심삼일이어서 새해에 세운 계획도 지금은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목사는 여인의 말을 듣고 창고로 가더니 먼지가 내려앉은 낡은 소쿠리를 들고 와서 여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유는 묻지 말고 여기에 물을 가득 담아오기 바랍니다.’ 구멍이 숭숭 난 소쿠리에 물을 담아오라는 말에 여인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목사의 말을 따라 우물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소쿠리에 물이 담길 리 없었고, 여인은 화가 난 얼굴로 돌아와 목사에게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쿠리를 내밀었다. 그러자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소쿠리에 물을 담지는 못했지만 먼지는 깨끗이 사라졌지요? 마음먹은 대로는 안 되도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입니다.’

 

마음먹은 대로는 안 되도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가 의미 있다! 참으로 중요한 말이다. 그렇다. 결과는 누구도 모르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새롭게 해보려는 노력, 새롭게 시작하고, 새롭게 시도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새해가 중요한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새해라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다. 단지 숫자만 바뀔 뿐이다. 2022년에서 2023년으로! 그렇지만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시도하려고 결심하고 노력을 한다. 비록 작심삼일로 그칠지라도 말이다. 그나마 우리 생활에 진보가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다. 이런 의미에서 금년에도 실패할지라도 많은 것을 결심하고, 시도하고, 시작해 보기 바란다마음먹은 대로는 안 되도 분명히 개선되고 발전되고 유익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금년도 교회표어를 함께, 다시 새롭게!로 정했다. 늘 새롭게 다짐하고, 시도하고, 시작하고, 힘쓰자는 의미다. 물론 여기에는 개척 당시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 보자는 의미도 있다.  

  

슬픔이 꺾지 못한 희망 

예레미야 애가는 말 그대로 예레미야가 부른 슬픈 노래. 탄식으로 시작되는 이 거룩한 노래는 선지자가 조국의 멸망을 직접 목격하면서 지은 눈물의 시다. 선지자의 평생소원은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목격하게 된 현실은 바벨론에 함락되어 기근과 공포에 시달리는 조국의 모습이었다(1:11). 그러나 이 노래는 슬픔만을 담고 있지 않다. 역설적으로 선지자는 한때 이스라엘의 영광을 보여주었던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처참하게 짓밟히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노래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3:22,23). 성전이 파괴되는 뼈아픈 광경을 보면서도 슬픔에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속에서 참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슬픔이 이기지 못할 희망을 노래한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19). 그리고 이스라엘의 옛적을 회고한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21). 그가 회고한 옛적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사랑으로 연합되어 있던 때, 곧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외하던 때였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가 바로 그랬다. 그렇지만 선지자가 그리워하고 있는 옛적은 단지 시간적인 과거가 아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서 샬롬의 삶을 누리던 때를 가리킨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평화를 누리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다. 이것이 선지자가 그리워하는 옛적이다. 여러분에게 옛적은 언제인가? 여러분이 그리워하는 옛적이 있는가?

 

다시 새롭게 하소서!

역사적으로 위대한 부흥의 때에는 언제나 교회의 옛적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 시대의 교회의 가난함과 옛적의 부요함을 비교하며, 자기의 시대가 잃어버린 영적인 부요함으로 인해 가슴 아파하며 기도의 십자가를 졌다. 다시 말해서 옛적에 대한 신령한 그리움의 깊이가 바로 그들이 올린 기도의 깊이였다. 이런 그들의 기도가 교회의 새벽을 깨웠고, 이런 그들의 열정과 헌신이 교회의 부흥을 이끌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15세기의 종교개혁자들이다. 그들은 교회의 옛적’, 곧 초대교회를 그리워했고, 이것이 종교개혁이라는 부흥역사를 만들었다. 죄를 책망하고 죄인을 거듭나게 하는 성령의 역사는 교회에 다시 옛적의 고상한 가치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영광이 교회와 온 땅에 가득하기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기름을 부으셨다. 교회가 이러니, 저러니 말을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실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이다금년도에 이런 기도자가 우리 교회 안에서 많이 나오기를 원한다. 특히 저와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를 움직이신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가정에 복을 주시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기업에 복을 주시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교회에 부흥을 주신다. 기도의 사람이 부흥의 영적 엔진이고, 기도의 사람이 모인 곳이 부흥의 영적 발전소다.

 

이스라엘이 옛적 같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새롭게’ 하시는 일이 필요했다. 여기서 우리는 부흥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선지자는 새롭게 되어야 할 대상을 우리의 날들이라고 했다. 이는 우리의 시대를 의미한다. , 교회와 성도인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영역, 곧 정치, 경제, 사회, 법률,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관심은 교회와 성도에게만 있지 않고, 세상과 세상 사람도 하나님의 관심이다. 성도와 교회의 사명은 잘못된 세상과 세상 사람을 바로잡고 올바른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교회와 성도는 이 세상에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된 공동체이고 사람들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주의 영광을 드러나도록 다시 새롭게 해달고 기도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의 날들의 의미를 좁히면 우리의 삶과 가정, 우리 교회가 된다. 우리의 삶과 가정과 우리 교회가 주님과 평화를 누리며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다시 새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그래서 올 한 해, 우리가 있는 이곳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주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자. 우리 모두 다시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함께,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시도하고, 노력하는 새해가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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