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주소서! ‘입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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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4,496회 작성일 21-10-18 08:09본문
열어주소서! ‘입Ⅰ’
시81:1~16
2021. 10/17. 11:00
하마놀이
어린 아이들의 놀이 중에 ‘하마놀이’(하마 입 벌리기)가 있다. 단순한 놀이지만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하마 입 벌리기 놀이는 경직된 얼굴근육을 풀어주는 놀이이기도 하다. 그러니 놀이면서 운동인 셈이다. 실제로 하마는 적을 만나면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위협한다고 한다. 하마가 입을 크게 벌리면 굵고 긴 송곳니가 위협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하마는 입을 크게 벌려 입이 작은 동료나 적을 위협하여 물리친다. 살다보면, 우리도 입을 크게 열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치과에서 치료를 받을 때다. 치과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입을 크게 벌려야 한다. 치료 중에 입이 점점 다물어지면 의사는 즉시 ‘입을 더 벌리시고’ 하면서 입을 크게 열도록 다그친다. 입을 크게 열어야 이빨을 치료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무리 소문난 명의라도 입을 열지 않으면 치료할 수가 없다.
‘물 좀 주소!’ 라는 대중가요처럼 인생은 목마른 존재다. 항상 무엇인가로 채움 받기를 갈망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물질로, 누군가는 권력으로, 누군가는 배움으로, 인기로 그 욕구를 채우고자 몸부림치지만 무저갱의 바닥은 여전히 불가해한 허공일 따름이다. 그래서 무엇으로 채워져야 더 이상 원함이 없는 자족을 누릴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여정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옛날 중동의 황제들은 공을 세운 신하나 외국사신이 알현할 때 그들에게 ‘아~’하고 입을 벌리도록 하여 준비된 황금이나 선물을 그들의 입에 채워주었다고 한다. 마치 어린 시절 부모님이 ‘아~’하고 입을 벌리게 한 다음 맛있는 것을 입 안에 쏙 넣어주던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입을 크게 열어야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입을 크게 열어야 치료를 받고, 입을 열어야 맛있는 것을 얻어먹을 수가 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본문을 보니 하나님도 우리에게 입을 크게 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입을 크게 열면 채우리라 약속하신다(10). 본 시편은 주로 장막절, 추수이후 축제 때 사용되었던 시다. 특히 이집트를 나와서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고, 6절 이후부터는 설교형태로 되어있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우상을 섬기지 않으면 이스라엘을 풍성하고 만족한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특히 10절은 본시에서 유명한 구절로, 하나님의 간곡한 권면과 보장의 말씀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여기에서 중요한 대목이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이다. 입을 크게 열면 반드시 보장하시겠다는 뜻이다. 물론 나처럼 능력도 힘도 없는 사람의 약속이라면 그것은 공허한 말에 불과하겠지만 역사에서 증명된 하나님의 말씀이니 이보다 확실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간곡한 권면을 외면했다(11). 그래도 하나님은 거듭 강조하신다.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13). ‘그리하면 속히 너희의 원수를 물리쳐 주고’(14), ‘너희의 시대를 영원히 계속되게 하며.’(15). ‘기름진 밀을 너희에게 먹이고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만족하게 하리라.’(16). 이 말씀들 역시 입을 크게 열면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의 연장이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크게 열어서 이와 같이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을까?
결핍과 한계를 하는 사람이다.
첫째는 자신의 ‘결핍과 한계를’ 아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결핍을 채우고자 간절한 소원과 기대와 갈망을 가진 사람이다. 이어령 교수의 일화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에게 엉뚱한 질문을 했다고 하여 알밤을 맞은 일이 있다고 한다. ‘제비 어미는 둥지에서 여러 마리의 새끼 제비가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리고 있는데, 이미 먹이를 먹은 놈과 먹지 않은 놈을 어떻게 구별하느냐?’ 즉, 방금 먹이를 먹은 새끼 제비와 먹지 않은 새끼 제비를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이런 그의 질문이 엉뚱하다고 선생님이 그에게 알밤을 준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먹이를 먹은 제비는 아무리 입을 크게 벌려도 먹지 않은 제비보다는 작게 벌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미 제비는 입을 더 크게 벌린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준다는 것이다.
결국 차이를 만든 것은 ‘절실함’이 아니겠는가! 결핍과 한계가 절실함과 간절함을 만들고, 그 절실함과 간절함이 입을 더 크게 열도록 만든 것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아주 무서운 영적 질병이 있다. 이는 라오디게아 교회 현상인데, 소위 영적 ‘결핍 결여증’이다. 육신의 생활이 넉넉하고 풍요로우니까 영적인 생활도 그런 줄로 착각하는 병이다(눅12장의 어리석은 부자). 요한계시록에 나온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랬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계3:17a). 그래서 그들은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내지 안했다. 영적 생활에 전혀 결핍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육적인 부요가 영적 생활을 보장한다는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에 대한 주님의 호된 책망이 주어졌다. ‘네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17b). 그들의 영적 실상을 책망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촉구하셨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19). 여기서 열심을 내라는 것은 본문의 표현대로 하면 입을 크게 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입을 크게 여는 비결은 자신의 부족과 한계, 곧 결핍을 아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간절함과 절실함이 생겨 입을 더욱 크게 열게 되는 것이다.
신뢰하는 사람이다.
다음은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다. 대개의 사람은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리 상황이 절박하고 절실해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렇다.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신뢰하며,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는가? 심지어 자신의 처지가 절박하여 치료를 받겠다고 찾아간 사람에게조차도 신뢰관계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쉽게 마음과 입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상담사들이 먼저 하는 일이 내담자가 입을 열고 말을 할 수 있도록 신뢰관계를 쌓는 일이다, 이를 전문용어로 ‘라뽀’(Rapport)라고 한다. 프랑스어로 ‘다리를 놓다.’는 뜻인데,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연결하는 신뢰관계를 의미한다. 이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내담자의 입이 거침없이 열리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신뢰가 먼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입을 크게 열라는 권면에 앞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먼저 소개하신 것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10a). 이는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실 때도 같은 말씀으로 시작하였다(출20:2). 한 마디로 부모가 스스로 자신의 자녀를 죽여야 했고, 평생 노역에 시달려야 했던 죽음과 절망의 땅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즉, 종 되었던 곳에서 구출하신 분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본문에도 자주 언급되고 있지만(1,6~7,10,14~16) 성경의 많은 부분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가를 이야기하고 있다(복음서를 비롯한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줌). 결국 이 모두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관련이 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신뢰하게 되고, 신뢰해야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크게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가 신령하고 좋은 것으로 채움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크게 열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해야 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믿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6절과 13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들음에서 믿음이 나고, 그 믿음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낳게 한다. 이 신뢰가 하나님을 향해 입을 크게 열리게 만든다.
내가 채우리라!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결핍과 한계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향한 우리 주님의 권면이자 약속이다. 여기서 ‘채우다.’를 히브리어로 ‘마레’(מָלֵא)라고 하는데, ‘충만하다.’, ‘성취하다.’, ‘완성하다.’, ‘만족시키다.’ 라는 뜻이다. 우리가 만족할 수 있도록 충만하게 채워주신다는 뜻이다. 우리의 간절한 필요를 성취하시고 이루신다는 뜻이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충만하신 분이다. 우리는 구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고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분이다. 결핍과 한계를 채워주시는 분이다. 참으로 결핍이 많고, 한계가 많은 우리다. 이런 결핍과 한계 넘어서려면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을 향해 입을 크게 열어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고자 하는 믿음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성경이 끝도 없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그렇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다. 우리의 삶 또한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뜻이다. 세상이 어려워도, 삶이 힘들어도 곁눈질하지 말고, 딴 것 의지하지 말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여 입을 크고 넓게 열자.
관련링크
- https://youtu.be/TeAPCMROZIA 13390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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