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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서 ‘사랑’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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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294회 작성일 18-12-2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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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서 사랑의 주님

19:1~10

2018. 12/23. 11:00(대강절 넷째 주일)

아줌마가 하나님 부인이세요?

몹시 추운 12월 어느 날이었다. 10살 정도 된 소년이 신발가게 앞에 서 있었다. 맨발인 소년은 추위에 떨면서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측은하게 지켜보던 한 부인이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애야! 진열장을 그렇게 쳐다보는 이유라도 있니?소년은 대답했다. ‘저는 지금 하나님에게 신발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중이에요.부인은 소년의 손을 잡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신발과 양말을 주문하고, 따뜻한 물이 담긴 세숫대야와 수건을 빌려 소년을 의자에 앉히고 무릎을 꿇고 소년의 발을 씻긴 뒤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부인은 점원이 가지고 온 양말과 신발을 소년의 발에 신겨주었다. 소년의 차가운 발에 따뜻한 기운이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부인은 소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니?소년은 미소를 띠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부인이 가던 길을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소년이 부인의 손을 잡고는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소년의 눈은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물었다. ‘아줌마가 하나님 부인이세요?

 

어느 분이 보내준 글이다. 알고 있는 내용이긴 하지만 몇 번을 읽었다. 아줌마가 하나님의 부인이냐는 소년의 질문이 특히 감동이고 충격이었다. 내가 주님을 믿은 지 50년이 되었다. 50평생 주님을 믿고 따르면서 이런 감동적인 질문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주님을 잘 믿어서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꼭 받고 싶다. 소년은 자기가 간절히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자기 부인을 보내 신발을 사주신 것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섬기면 이 소년처럼 사람들은 우리를 주님의 친구로, 혹은 아내로, 자녀로 기억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참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이야기다. 아무튼 주변에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의 큰 기쁨이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가 사랑이다. 사랑이 삶의 중요한 이유가 되는 것을 몸으로 증명해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사랑의 주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워주셨다. 그래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고, 들을 수 있게 되었고, 볼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할 수 없었던 것들을 감사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랑할 수 없었던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따뜻한 사랑으로 찾아오신 주님 덕분이다. 오늘은 소망도 평화도 기쁨도 사랑도 식어가는 이 땅에 소망의 빛, 평화의 빛, 기쁨의 빛, 사랑의 빛을 선물로 안고 오신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 넷째주일이다. 이 시간에는 마지막 사랑의 빛으로 오신 주님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목마른 사람들

나는 일평생 사랑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아직 그 사랑을 찾지 못했다.’ 20세기 미의 화신으로 불리던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남긴 말이다. 그녀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생을 살았다. 8명의 남성과 사귀며 결혼을 일곱 번이나 했다. 하지만 끝내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비단 그녀만의 탄식이 아닐 것이다. 지금 세상 곳곳에는 사랑에 목마른 이들로 아우성이다. 현대인의 7대 질병 가운데 하나가 애정결핍증이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도대체 이와 같은 사람들의 목마름을 채워줄 사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누군가 말했다. ‘사랑은 사전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찾아야 한다.맞는 말이다. 2000년 전 주님은 십자가 위에 계셨다.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자신을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기도를 드리셨다.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주님의 심장에는 오직 사랑뿐이었다. 그러니 십자가란 사랑의 원천이고, 사랑의 링거인 것이다. 괴테는 먼지도 햇빛을 받으면 반짝인다.고 했다. 아무리 하찮은 먼지 같은 인생일지라도 십자가 앞에 서면, 그 사랑의 빛을 경험하면 결핍이 없는 빛나는 인생이 된다. 그러니 사랑에 목마르다면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거기서 누구도 줄 수 없고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사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본문도 목마른 한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가 잘 아는 삭개오가 그 주인공이다(1). 삭개오는 목마른 사람이었다. 부모가 순결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라는 염원을 담아 삭개오(‘순결’, ‘의로움’)란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그는 당시 자기 민족이 가장 혐오하는 세리가 되었다. 이름을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볼 때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반대의 길을 택한 것이다. 재물과 명예에 대한 목마름이 이런 길을 걷게 만든 것이다. 한 마디로 자신의 존재를 재물과 명예로 바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삭개오는 성경판 파우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얻었다. 세리장이 되고, 부자가 되었다(2). 모든 것이 뜻대로 되었으니 목마름도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도 그의 목마름은 진행형이었다. 본문에서 그가 주님의 소문을 듣고 거리로 나온 이유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때문이다. 그러나 먼저 온 사람들 때문에 주님을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의 작은 키도 문제였다(3). 그래서 그는 또 한 번 선택을 하는데, 주님이 가시는 길목에 서 있는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는 것이었다(4). 첫 번째 선택과 마찬가지로 이 선택 역시 멸시와 조롱이 따르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내용은 전혀 달랐다. 첫 번째 선택이 이기적이고 육적인 목마름 때문이었다면 이 선택은 존재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다. 하여간 그가 이렇게 무화과나무에 올라간 것은 스스로 자기의 키가 작다는 것과 함께 자기의 목마름을 인정한 것이다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체면(멸시와 조롱)보다 존재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드러내야 해결 받는다.

우리 주변에도 삭개오와 같은 사람이 많다. 문제는 삭개오처럼 자신의 목마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해결을 받지도 못한 것이다. 그것이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꼭꼭 감춰두고 혼자 힘들어하고 혼자 슬퍼하고 혼자 괴로워한다. 그러다가 폭발하면 자신과 주변에 재앙이 된다. 흔히 말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것이 목마름이 제 때 적절하게 해결되지 않아 생긴 질병이다. 체면 같은 것 다 내려놓고 상처도 아픔도 절망도 드러내야 치유를 받는다. 목마름도 마찬가지다. 주님만이 나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실 분으로 알고 주님께 드러내야 한다.

 

주님은 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 또다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마음이 가난한 삭개오를 바라보셨다그의 이름을 불러주셨다. 오늘 그의 집에 머물고 싶으니 속히 나무에서 내려오라고 하셨다(5). 그저 주님을 한 번 보는 것으로 족하게 여겼는데, 주님께서 자신을 알아보시고, 이름도 불러주시고, 심지어는 자기 집에서 머무시겠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주님께서 삭개오에게 사랑의 레이저를 뿜어대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이다. 우리가 한 발짝만 다가가도 주님은 세 발짝을 달려오신다. 우리가 미동만 보여도 폭풍처럼 다가오신 분이 주님이시다. 이 때 삭개오의 기분이 어땠을까?(누가 한 번 말해 보세요?). 여기서 참으로 놀라운 것은 주님을 자기 집으로 모신 삭개오의 태도다. 삭개오는 주님께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내놓겠다고 했고, 혹시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중대선언을 했다(8). 주님께서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는데 스스로 이렇게 결심하여 발표한 것이다. 사실 이 재물은 그동안 그가 온갖 멸시와 모욕을 당하면서 모았던 그의 전부였다. 그런데 그것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절반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는 그에게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났음을 뜻한다. 주님을 만남으로 가난한 그의 마음에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게 된 것이다. 생명의 근원, 존재의 근원,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을 통해 세상의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존재의 결핍이 완전히 해소된 것이다주님의 사랑이 먼지 같은 삭개오의 삶을 보석처럼 빛나게 만든 것이다.

 

사랑은 변화다!

주님의 사랑이 삭개오를 이렇게 놀랍게 변화시켰다. 사랑의 빛이 그의 심령에 비치니까 티끌과 같은 그의 삶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순결’, ‘의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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