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기둥Ⅶ, 소망(Hope)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058회 작성일 17-09-03 14:49본문
행복기둥Ⅶ, 소망(Hope)
베드로전서 1:3~5
2017. 9/3. 11:00
희망만 있으면
(그림을 보여주며)여러분 이런 그림을 본 적 있는가? 눈과 귀를 수건으로 싸맨 연약한 소녀가 맨 발에 남루한 옷을 입고 둥근 지구 위에 앉아있다. 아마도 눈 먼 소녀인 것 같다. 소녀의 손에는 낡은 하프가 들려있는데 줄이 끊어지고 단 한 줄만 남아있다. 눈도 멀고, 가난하고, 하프가 낡은데다 줄도 한 가닥만 남은 모든 것이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이 소녀는 한 개 남은 줄로 하프를 연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포기할 것도 같은데 연주를 하고 있다. 이 그림은 프레드릭 왓츠(G. Frederic Watts)가 그린 것으로 제목은 ‘소망’(Hope)이다. 작가는 소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모든 것을 이기고 나갈 수 있다는 뜻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은 여러 힘든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온 최초의 여성이 누구인지 아는가? 그러면 제우스가 이 여성을 만든 이유를 아는가? 제우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사람들이 반할만한 미모의 여인을 만들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여성 판도라가 탄생한다. 신들까지 그녀의 미모에 반해서 그녀에게 한 가지씩 선물을 가져왔고, 제우스는 그 선물을 상자에 넣어서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그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데우스에게 보냈다. 에피메데우스는 신들이 보낸 어떤 선물도 받지 말라는 그의 형 프로메테우스의 당부를 잊고 판도라에게 반해 결혼까지 한다. 신혼의 재미에 깨가 쏟아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온 상자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을까? 무엇이 들었기에 열어보지 말라고 한 것일까? 하지마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보지마라고 하면 더 보고 싶고, 먹지마라고 하면 더 먹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이런 심리를 제우스가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아무튼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그녀는 상자의 뚜껑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상자 안에서 질병을 비롯해서, 전쟁, 기근, 슬픔, 고난, 고통, 근심, 걱정, 등 인간에게 불행을 가져다주는 온갖 악한 영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깜짝 놀란 그녀는 빨리 상자의 뚜껑을 닫아버렸다. 그런데 그때 미쳐 상자를 빠져나오지 못한 영이 하나 있었다. ‘희망’이다. 그래서 이 판도라 상자는 당시 그리스인의 인생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도 희망만 있으면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희망만 있으면 견딜 수가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내일을 주세요!
우리를 간절하게 만들고, 절실하게 만드는 것이 많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밥일 것이고, 목마른 사람에겐 물일 것이다. 아픈 사람에겐 건강일 것이고, 실직자에겐 직장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어떤 사람은 재물을, 또 어떤 사람은 성공을 절실하게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간절하고,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희망이다. 희망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희망을 잃어버리면 그렇게 힘겹게 들어간 직장도 팽개치고 나온다. 심지어 먹고 마시는 것조차 포기해 버린다. 6.25전쟁 당시 한 종군기자가 지친 병사에게 물었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병사가 먹을 것이나 마실 것, 아니면 전쟁이 속히 끝나서 집에 돌아가는 것쯤으로 대답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병사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Tomorrow!‘ ’내일을 주세요.‘ 내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희망(소망)이라는 뜻이다. 이 기사를 읽으며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이 누군가에겐 그토록 간절했던 내일인데, 내가 그 소중한 시간을 허송하고 있지 않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시간에는 행복기둥 7H 마지막으로, ‘Hope’(소망)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산 소망(Living Hope)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아는가? 어딘가에 샘물이 있기 때문이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러면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소망, 그것이 우리를 살아있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반면에 소망이 사라지면 모든 사람은 금방 죽게 된다. 절망은 곧 죽음에 이르는 병이기 때문이다(짐 스톡데일). 행복한 사람들의 행복을 분석해 보면, 많이 가져서, 시련이 없고, 고통이 없고, 문제가 없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누구도 꺾을 수 없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소망이 있어 그 삶이 빛난 것이다. ‘나는 꿈이 있다,’ ‘나는 소망이 있다.’는 말과 ‘나는 행복하다.’는 말은 동의어다. 소망이 있기에 행복한 것이다. 우리 성도가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망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주신 소망을 붙잡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본문이 좋은 예다.
베드로 전후서는 일명 ‘소망의 서신’이다. 베드로가 이 서신을 보낼 때의 시대적 배경은 네로 황제에 의한 본격적인 기독교 박해가 예견되고 있던 때다. 베드로는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성도에게 믿음과 주님에 대한 ‘산소망’을 굳게 잡음으로 닥쳐올 핍박을 잘 이겨내자고 권면한다. 산소망은 ‘현실의 문제’를 이길 수 있는 살아있는(Living), 활기가 넘치는(Lively) 소망이다. 살아있는 것은 어떤 현실의 벽도 넘어선다. 송사리처럼 작은 물고기라도 살아 있으면 역류(逆流)할 수 있지만, 고래처럼 큰 물고기라도 죽어 있으면 물결에 밀려 갈 수밖에 없다. ‘산소망’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다(3). 아울러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는 것’이 산소망이다(4).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구원을 받고, 썩지도 더럽지도 쇠하지도 않는 유업을 잇게 되는 산소망이 있기에 성도는 현실의 문제를 극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실 모든 문제의 근본은 소망의 문제다. 궁극적인 소망, 산소망, 이 소망에 포로가 된 사람은 지금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가 문제되지 않는다. 장차 누릴 영광과 승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이 소망과 행복은 비례한다.
우리는 이중 국적자
게다가 성도는 육신으로는 이 땅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영으로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빌3:20). 소위 ‘이중 국적자’인 셈이다. 따라서 성도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이 땅에 사는 사람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해외지사나 공관으로 파견 나가서 근무하는 것처럼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잠시 이 세상에 파견 나온 사람이 성도다. 때문에 이 땅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하고, 땅에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본향인 천국소망을 품고 이 땅을 살아가야 한다. 이런 사람은 현실의 어려움이나 불편을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다. 여기를 본향이 아니라 임시 처소로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향의 부요함을 알기에 이 땅의 것에 한눈을 팔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상을 전부로 생각하는 사람은 다르다. 육적인 것이 약해지면 마음도 정신도 약해진다, 그래서 돈이 떨어질까, 권력을 잃어버릴까, 명예를 잃어버릴까, 건강을 잃을까 조바심을 갖는다. 이것을 전부로 여기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