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기둥Ⅱ, ‘습관’(Ha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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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899회 작성일 17-07-30 13:34본문
행복기둥Ⅱ, ‘습관’(Habit)
딤전4:7~8
2017. 7/30. 11:00
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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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당신과 함께 있다.
나는 당신의 조력자가 될 수도 있고 가장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당신을 성공으로 밀어줄 수도 있고 실패로 잡아 내릴 수도 있다.
나는 당신의 명령을 따른다.
………………………………
나를 선택하라.
나를 훈련시키라.
나를 엄격히 다루라.
그리하면 나는 세계를 당신 발 앞에 주겠다.
나를 우습게 대하면 나는 당신을 파괴할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습관’이다.
-숀 코비
습관은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하인이고, 실패한 사람들의 주인이다. 위대한 사람은 습관이 위대하게 만들어준 것이고, 실패한 사람은 습관이 실패하게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거미줄처럼 잘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는 밧줄보다 강한 것이 습관이다. 그래서 습관을 마음의 밧줄이라고 한다(호레이스 맨은 철사를 꼬아 만든 쇠줄과 같다고 함). 결국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이 습관이라는 밧줄에 묶이게 된다. 그러므로 선한 습관, 좋은 습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탁월한 사람으로 만들고, 좋지 않는 습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비참한 낙오자로 만든다. 지금 내가 선택하여 길들이고 있는 습관이 무엇인가? 어떤 습관으로 나를 길들이고 있는가?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미래의 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습관의 중요성을 논어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상근야 습상원야’(性相近也 習相遠也).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에 의해 달라진다.’는 뜻이다. 타고난 천성은 비슷한데 어떤 습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기고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행복기둥 7H의 두 번째 ‘Habit’(습관)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습관은 학습된 행동이다.
습관이란 반복된 수많은 행동의 결과다. 인간은 바로 이 습관의 덩어리다. 습관이 모여 인생이 된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지 불행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신의 불행을 호소한다. 이는 학습된 행동, 곧 습관 탓이다. 오랫동안 걱정과 불안에 집착하고, 옳지 못한 것에 집착하면 부정적인 패턴을 따르게 되고, 불행의식이 자라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반면에 좋은 생각, 선한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패턴을 따르게 되고, 행복의식이 자라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항상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좋은 습관을 익히는 것이 행복한 인생을 사는 중요한 비결이다.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
70년대에 매달 쥐 잡는 날이 있었다. 온 국민이 일제히 쥐약을 놓았다. 대개 쥐약은 고기 속에 버무려 놓았는데, 종종 개들이 그것을 먹고 죽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한 주인이 개를 훈련시키기 위해 고기를 앞에 두고서 개가 먹으려고 하면 매질을 했다. 입맛만 다셔도 회초리로 후려쳤다. 이러기를 반복하다보니 이제는 개가 고기를 보고도 입맛도 다시지 않고 그저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인의 눈치를 살핀 것이다. 마을의 많은 개들이 쥐약을 먹고 죽었지만 훈련받은 이 개는 살았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혹독한 시련을 주실 때가 있다. 섭섭할 정도로 매정하게 다루실 때가 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눈을 두고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람 눈치 살피지 않고 하나님의 눈치만 살피는 습관을 갖도록 하기 위한 훈련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고, 이것이 우리를 세상 유혹으로부터, 사망의 독으로부터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막과 같은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고, 그곳을 성공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행복으로 안내하는 거룩한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복도 습관이고, 연습이 필요하다.
행복을 위한 훈련, 기도
우리를 망하지 않게 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그래서 우리가 꼭 훈련해야 할 좋은 습관을 망라(網羅)하여 ‘경건에의 훈련’이라고 본문은 말씀한다. 이 경건에의 훈련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나님의 눈치를 살피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우리를 행복으로 안내하는 거룩한 습관을 갖도록 하는 영적 훈련이다. 물론 훈련에는 육적인 것도 있다. 그리고 육적인 훈련도 유익이 많다. 하지만 경건에의 훈련, 곧 영적 훈련은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보장되어 있다(8). 이것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위한 거룩한 습관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간 우리가 훈련해야 할 거룩한 습관으로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여주셨던 기도하는 습관을 소개하고 싶다. 예수님의 하루일과는 말 그대로 식사하실 겨를이 없을 만큼 분주했다(막3:20). 그런데 이렇게 바쁜 일상에도 결코 쉬지 않는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기도다. 주님은 주로 이른 아침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다. 성경은 이것이 주님의 습관이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1:35).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라.”(눅22:39).
주님께서 이른 아침마다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는데, 기도하기 위해 습관처럼 찾아가셨던 곳이 갈람산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주님은 하루를 기도로 여셨다. 모든 일에 앞서 기도를 하신 것이다. 먼저 기도하고 가르치시고, 기도하고 선포하시고, 기도하고 섬기셨다. 기도하고 고치시고, 기도하고 살리시고, 기도하고 먹이셨다. 잡히시기 전날 저녁도 기도하셨고, 기도의 현장에서 붙잡혀가셨다. 십자가상에 일곱 마디 말씀을 남기셨는데, 이 또한 기도였다. 죽는 순간까지 기도의 끈을 놓지 않으신 것이다. 이 모두는 기도가 습관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주님께서 얼마나 기도를 소중히 여기셨고, 기도생활에 집중하셨는지를 잘 보여준다. 주님께서 이렇게 본을 보여주신 것은 우리도 이렇게 살라는 뜻이다.
기도는 주님 품에 안기는 황홀한 행복이다.
어거스틴은 ‘인간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까지 참 안식이 없다.’고 했다. 하나님 안에서만이 참된 안식,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기도야말로 주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살아있는 매순간 주님의 품에 안기는 비결이 기도다. 기도할 때 주님의 품에서 쉼을 얻게 된다. 기도할 때 주님의 품에서 격려를 받고, 위로를 받고,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수많은 문제도 이겨나갈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황홀한 영적 즐거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신앙의 선배들은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고 귀하다.’(찬364장)고 고백했다. 물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룩한 습관이 많다. 예배를 비롯하여 찬양하는 습관, 잃어버린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습관, 서로 섬기고 돌보고 베푸는 습관.......이 모든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룩한 습관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거룩한 습관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기도다.
‘미처(狂)야 미친(及)다.’는 말이 있다. 인생이 무언가에 미처 사는 것이라면 행복에 미처 사는 것. 즉 ‘습관성 행복 추구병’에 걸려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기도하는 습관을 비롯하여 거룩한 영적 습관을 훈련해야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훌륭한 습관의 사람들이었다. 남보다 더 노력하는 습관, 남보다 더 인내하는 습관, 남보다 더 자신을 절제하는 습관, 남보다 더 잘 준비하는 습관의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이 피아노 연주자에게 천재적 재능을 가졌다고 칭찬했다. 그러자 그 피아니스트가 말했다. ‘저는 하루에 17시간 씩 피아노 연습을 합니다.’ 끊임없이 연습하는 좋은 습관이 그를 훌륭한 연주자로 만든 것이다. 좋은 습관을 통해 성공적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특히 기도하는 거룩한 습관을 통해 영적 승리자, 더 나아가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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