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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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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602회 작성일 17-06-11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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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자!

막1:40~45

2017. 6/11. 11:00

와우! 스토리(Wow! Stories)

제품의 질을 중요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기업의 구호는 ‘고객만족’이었다. 품질로 고객을 사로잡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런데 기술혁신을 통해 품질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기업은 서비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구호도 고객만족에서 ‘고백감동’으로 바뀌었다. 경영에서 고객감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객의 감동 없이 비즈니스 성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고객감동을 넘어 ‘고객졸도’, ‘고객사망’을 얘기한다. 고객이 놀라서 뒤로 자빠져 기절할 정도의 서비스를 말한다. 이런 놀라운 서비스에 관한 이야기가 유독 많이 전해지고 있는 기업이 있다. 세계적인 호텔체인 리츠칼튼(Ritz-Carlton)이 바로 그곳이다. 이 호텔은 이런 사례를 ‘와우! 스토리’(Wow! Stories)라고 부르는데, 모든 직원이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모여 이와 같은 와우 스토리를 나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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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알게 된 이 호텔의 와우 스토리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쯤 되어야 고객졸도 서비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다. 2012년 여름 한 가족이 플로리다 어밀리아 섬에 있는 리츠칼튼 호텔에 묵었다. 그런데 이 가족은 집으로 돌아온 뒤, 아들이 매우 아끼고 좋아하는 기린인형 조시(Joshie)를 호텔에 두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를 위로하려고 아버지는 인형 조시가 휴가를 더 즐기고 싶어 호텔에 남은 것이라고 하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호텔에 확인을 부탁한 결과 다행히 직원이 세탁실에서 그 인형을 찾았고, 그 사실을 전화로 알려주었다. 안도한 아버지는 아이에게 얘기한 거짓말의 증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호텔직원에게 수영장 옆에 있는 인형의 모습을 사진으로 좀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 호텔에서 보낸 소포가 도착했다. 그 안에는 기린인형 조시와 함께 리츠칼튼 브랜드 과자, 바인더 하나가 들어있었다. 바인더에는 인형에 관한 사진이 있었다. 부탁한 수영장 옆에서 일광욕을 하는 인형 조시의 사진을 비롯하여 마사지를 받는 조시, 골프카트에 탄 조시, 그리고 호텔의 명예 보안요원으로서 모니터 앞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조시의 사진까지 있었다. 호텔직원의 창의력과 친절에 아이의 부모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 부모는 이 일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이 이야기는 인터넷 여기저기에 게재되었다. 심지어 인형 조시의 페이스북까지 생겼다. 이 정도면 리츠칼튼 호텔은 대박이 난 것이다. 한 직원의 감동적인 서비스가 가져온 놀라운 결과다.

 

지식이나 기술보다 관계

성공하는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15%이고, 나머지 85%가 인간관계라고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잘 챙겨서 여러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특히 세 가지 방문을 잘하고 있는데. ‘입의 방문’과 ‘손의 방문’, ‘발의 방문’이다. 입의 방문은 전화나 말로 칭찬하고 위로하고 권면하고 감사하고 용기를 주는 것이다. 손의 방문은 편지나 문자로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만나면 붙잡아주고 안아주고 섬겨주고 붙들어주는 것이다. 발의 방문은 힘들어하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부지런히 찾아가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핵심은 감동이다. 입으로 손으로 발로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감동을 주는 사람은 관계에 성공하고, 사업에도 성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된다. 고기는 씹어야 맛있고, 말은 해야 맛이 난다. 칭찬은 할수록 늘고, 또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도 찾아갈수록 친근해진다. 아무튼 감동을 주는 사람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주님 사역의 특징

복음서를 읽으며 예수님의 사역을 꼼꼼히 묵상해 보았다. 나름 주님 사역의 특징을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것은 ‘감동사역’이다. 주님의 사역은 찾아오는 사람들이나 찾아가셔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공감하며 그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역이었다. 본문은 주님께서 한 나환자를 고쳐주신 사건인데, 이 사건도 그 중에 하나다. 주님은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신 다음(35),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지역을 다니시며 전도도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다(39). 그 때 한 나환자가 주님을 찾아와서 엎드려 간구하였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해주십시오.’(40). 이 때 마가는 주님께서 그를 치료해 주신 것만 기록하지 않고, 그에게 보여주셨던 모습까지 구체적이고 아주 인상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41).

 

사랑의 만짐(love's touch)

나병은 우리나라에서도 천형(天刑)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환자를 격리하여 수용했고, 그들이 나타나면 불길하고 더러운 물건을 대하듯 했다. 유대사회도 마찬가지였다. 나병에 걸린 순간 가족 공동체, 마을 공동체, 신앙 공동체로부터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며 살아야했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도 나올 수가 없었다(레13:45,46). 예배가 존재이유이고, 예배를 생명처럼 여긴 그들에게 이보다 더 가혹한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나환자는 ‘살아도 죽은 사람’으로 간주했다. 살아있는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고립을 당한 것이다. 특히 유대인은 질병을 죄와 연관시켜 생각했다. 그러니 그들이 환자를 어떤 태도로 대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환자를 더욱 괴롭혔던 것은 병도 병이지만 병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었다. 병 자체보다 병으로 인한 사람들의 멸시, 사회적 종교적인 단절로 인한 외로움이 더욱 심각했다. 그래서 병에 걸리면 몸도 마음도 다 망가졌다. 주님은 이와 같은 환자의 상황과 심정을 잘 아셨다. 41절에서, 주님이 이 환자를 고쳐주시기 전에 불쌍히 여기며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신 이유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다’(σπλαγχνίζομαι)는 말은 ‘창자가 뒤틀릴 정도로 깊은 동정심을 갖다.’는 뜻이다. 깊은 공감(동정)을 의미한다. 주님은 먼저 환자의 상황과 심정을 깊이 이해하고 공감해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대셨다. 감동적인 사랑의 터치를 하신 것이다.

 

여기서 주님이 환자에게 손을 댔다는 사실이 평범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다. 나환자에게 손을 댄 것은 율법을 어기는 행위다.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사람이나 물건을 만지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주님은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이 사람에게 손을 댄 것이다. 그냥 고쳐주시면 될 일을 굳이 율법을 어기면서 그를 만지셨다. 그 이유는 이 환자에게 육체의 치료보다 마음의 회복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마음을 회복시키고 육체를 치료하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를 위한 일이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우린 여기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의 크기와 깊이와 넓이를 볼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46:3,4). 하나님은 하늘에서 우리를 그저 내려다보시고,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까이 오셔서 어루만져주시고 안아주시고 업어주시는 너무 인자하시고 너무 따뜻하신 분이다. 주님이 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본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만지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원대로 그를 깨끗하게 고쳐주셨다. 한 마디로 그를 완전히 졸도시켜 버린 것이다. 부모와 이웃과 신앙공동체로부터 버림받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그를, 주님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그가 당한 일을 아파하시면서 사랑으로 만져주셨고, 깨끗하게 해주셨다. 사람을 이렇게 감동으로 졸도시켜버리는 것이 주님 사역의 특징이다.

 

감동을 받으면 바뀐다.

우리는 늘 ‘변하겠다! 변하자! 변해라!’고 말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했나 싶어 바라보면 여전히 똑같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면 변한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은혜를 받으면 변한다. 왜 은혜를 받으면 변하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감동을 받으니까!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받으면 변화가 일어난다. 본문이 좋은 증거다. 주님은 이 환자를 치료하신 다음 그에게 엄히 경고하셨다.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44). 누구에게도 고쳐주셨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했나?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멀리 퍼지게 하니”(45).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못하게 했는데, 많이 전파하여 멀리 퍼지게 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런 행동을 했을까?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너무 놀라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감동을 받은 사람의 모습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의 변화를 기대한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다고 투정도 부린다. 방법은 주님처럼 뜨거운 감동을 주는 것이다. 본문의 이 환자처럼 감동을 받으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그러면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님처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사랑의 터치를 하는 것이다. 특히 마음을 잘 만져주어야 한다. 제임스 하디슨(J. Hardison)은 ‘인간은 접촉의 존재’라고 했다. 따뜻한 사랑의 접촉을 통해 자라나고 힘을 얻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은 온몸에 접촉수용체세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꾸 어루만져주어야 하고, 자꾸 만져주면 면역세포가 살아나서 몸이 건강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접촉결핍증(marasmus)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다. 우리의 마음도 자주 만져주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병들지 않는다. 마음이 사막이 되지 않는다. 행복하고 건강한 마음, 감동 가득한 감사가 넘치는 물댄 동산과 같은 마음이 된다. 찌르는 가시가 푸른 잎이 되고 향기로운 꽃이 된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만져줄 수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랑스럽고 정겨운 말, 부드럽고 따뜻한 말, 은혜롭고 경건한 말, 위로와 격려의 말, 진심이 담긴 공감의 말, 감사의 말을 하는 것이다. 말은 우리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고, 화나게도 하고 즐겁게 한다.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치료하기도 하는 것이 말이다. 좋은 말은 감동의 기폭제다. 좋은 말은 귀로 먹는 마음의 보약이다. 이런 말을 아끼지 말고 잘 선용해서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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