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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복음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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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036회 작성일 17-02-0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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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복음전도

딤후4:1~2

2017. 2/5. 11:00

기쁨을 잃어버린 시대

미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맥스 러너(Max Lerner)는 우리 시대를 이렇게 정의했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생각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도 기쁨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시대를 한 마디로 ‘기쁨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정의한 것이다. 충분히 공감이 되는 말이다. 기쁨이 없는 가정생활, 기쁨이 없는 직장생활, 기쁨이 없는 학교생활,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기쁨을 잃어버린 회색인간이 넘쳐나고 있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생각해 보라. 눈물이 나도록 웃어본 것이 언제인가? 기쁨을 주체할 수가 없어 밤잠을 설쳐본 적은 있는가? 심리학자들이 사람이 언제 기뻐하는지를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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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인정을 받을 때 기뻐한다고 한다. 이는 ‘인정(認定)의 기쁨’이다.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사람은 누구든지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으면 기쁨이 생긴 것은 당연지사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어도 단 한 사람이라도 주변에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때문에 살아갈 용기와 삶의 기쁨을 갖게 된다.

둘째,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손에 넣었을 때 기뻐한다고 한다. 이런 것을 소위 ‘성취(成就)의 기쁨’이라고 한다. 학문의 깊은 경지를 추구하는 사람은 만족스러운 연구결과를 얻었을 때,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물을 낚았을 때,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 명예를 얻었을 때, 운동선수는 메달을 획득했을 때 기뻐한다.

셋째, 이것은 상당히 수준이 높은 것인데, 자신의 형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기뻐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족(知足)의 기쁨’이다. 내가 잘살든 못살든, 내 자신의 형편이 좋든 좋지 않든, 그것을 만족하게 여기면서 좋게 받아들이면 거기에 기쁨이 있다. 아무리 좋은 형편에 살아도 만족이 없는 사람에겐 기쁨이 없고, 여간 채소를 먹으며 움막에 살아도 만족하는 사람에겐 기쁨이 있다. 자신의 형편을 항상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기쁨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반면 지족하면 기쁨이 항상 따라다닌다.

마지막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때 기쁨이 있다고 한다. ‘나눔의 기쁨’이다. 최고의 기쁨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나누며 사는 사람에게 큰 기쁨과 보람이 있다. 사람들이 기쁨을 잃어버린 가장 큰 이유는 두루 나누려고 하지 않고 그저 움켜쥐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움켜쥐기만 하면 불만지수가 계속 올라간다. 그러니 마음이 더욱 삭막해지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충분히 가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나누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눔의 실천, 전도

위의 네 가지가 다 중요하지만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다. 마지막이 앞의 3가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나눔이 잘 이뤄지면 인정의 기쁨, 성취의 기쁨, 지족의 기쁨이 절로 따라온다, 기쁨을 잃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나눔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복음의 나눔이 없기 때문이다. 전도는 나눔이다. 나눔의 가장 큰 실천이 전도다. 전도는 복음의 나눔이고, 은혜의 나눔이고, 생명의 나눔이다. 복음은 기쁜 소식인데 기쁜 소식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나눌 때 그 기쁨이 생기고, 나아가서 더욱 커진다. 그래서 전도하는 사람에겐 항상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전도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문에 우리는 전도를 해야 하고, 실패해도 해야 하는 것이 전도다(‘우리의 다심’ 한 번 외쳐보자!).

 

전도는 주님의 ‘엄한’ 명령이다.

어느 백만장자가 아프리카 여행을 하다가 선교사를 만났다. 선교사가 어딘가로 부산히 가고 있었다. 어디를 그렇게 서둘러 가냐고 부자가 묻자, 나환자촌에 전도하러 간다고 선교사가 대답했다. 부자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나 같으면 백만 불을 준다고 해도 그런 곳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선교사가 대답했다. ‘저 역시 그 정도의 돈을 받고는 가지 않습니다.’ 부자는 더욱 놀랐다. ‘그래요? 그럼 얼마나 받고 가는 겁니까?’ 선교사는 십자가 목걸이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돈을 받고 가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이분이 가라고 해서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환자에게도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기에 나는 가는 것입니다.

 

이 선교사처럼 왜 그토록 많은 주님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전도에 힘을 쓰는지, 왜 우리가 실패해도 전도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도는 명령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본문에 나온 대로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1)의 엄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전도는 예수님의 명령이다. 그래서 바울은 ‘부탁한다.’ 혹은 ‘소원한다.’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엄히 명하노니’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본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준 바울의 유언적인 명령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명령은 절대복종을 요구한다. 군대의 경우 명령불복은 즉결처분 대상이다. 우리 역시 주님의 병사들이다. 명령 중에서도 유언적인 명령은 구속력이 더 강하다. 전래동화에 나온 말썽꾸러기 청개구리도 어머니의 유언명령에는 순종을 했다. 그만큼 유언명령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전도가 곧 유언명령이라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바울의 유언명령으로 나오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유언명령’이다(마28:18~20). 다시 말하면 전도는 예수님의 유언명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2)고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조 디마지오(Joseph P. DiMaggio)는 그의 전 부인 마릴린 먼로가 자살했을 때 이런 말을 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은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삶의 목적을 위해서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해서 만족과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삶의 목적을 위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공허와 허무를 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지는 못했을지라도 삶의 목적이 분명하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수가 있다. 오늘날 신앙 공동체인 교회가 그 능력을 상실하고, 세상을 위한 소금인 성도가 맛을 잃은 것도 이 때문이다. 교회와 성도의 본질적인 사명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삶의 목적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신학자 에밀 브루너는 ‘불은 타오르므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하므로 존재한다.’고 했다. 타오르지 않는 불은 불이 아니듯이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전도하지 않는 성도는 성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도가 교회와 성도의 본질적인 사명이기 때문이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토록 영향력을 발휘하며 부흥하고 성장했던 이유는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일에 전력했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잡아다가 위협하며 전도를 못하게 하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을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9)고 외치며 전도를 멈추지 않았다. 사실 교회에서 전도보다 우선적인 일이 없다.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전도야말로 최고의 가치다. 그리고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다. 바로 이 일에 여러분 모두가 즐겁게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도는 희망의 씨앗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일이다. 독일군 비행기가 하루에도 수십 대씩 날아와 런던 시가지를 폭격했다. 그런데 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 런던에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이상한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식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그 꽃은 뉴질랜드 해안에 많이 피어있는 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꽃씨가 바람과 물결을 따라 영국에까지 날아와 땅 속에 깊이 파묻혔다가 폭격으로 흙이 뒤집혀 묻혀있었던 씨들이 싹이 나서 런던 거리와 해안근처에 꽃밭을 이룬 것이다. 전쟁의 파괴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던 영국인들은 이 꽃이 피어난 것을 보고 전쟁의 파괴 속에서도 반드시 일어날 것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재건에 힘써 오늘의 영국을 만들었다. 전도도 이와 같다. 전도의 씨앗이 사람의 마음에 떨어지면 언젠가는 반드시 소망의 꽃을 피우게 된다. 폐허와 같은 인생을 꽃밭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전도다.

 

6.25 전쟁 때 일화다. 한 인민군 장교가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독실한 신자였다. 이 장교는 아내를 핍박했다. 아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이 위험에 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내에게 믿지 말라고 사정도 해보고 협박도 하였지만 아내를 막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더 열심히 남편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잠든 남편의 손을 잡고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하며 찬송을 불렀다. 전쟁이 나고, 남편은 전쟁터에서 포로가 되었다.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군목이 신자가 있으면 나오라고 했고, 나온 사람들에게 한명씩 찬송가를 시켜보았다. 그리고 통과가 되면 즉시 석방을 했다. 이 장교는 아내가 매일 밤 들려주던 찬송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찬송을 부르게 되었고, 찬송을 부르다가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것이 복음의 신비, 전도의 신비다. 그저 헛수고처럼, 실패처럼 보이지만 뿌려진 전도의 씨앗은 반드시 싹이 난다. 그래서 소망의 꽃을 피우고,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된다. 한 인생을 절망의 구덩이에서 소망의 항구로 인도한다. 때문에 성경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한 것이다. 이 엄숙한 주님의 유언적인 명령을 진지하게 받아 실패해도 복음전도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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