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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을 위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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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2,099회 작성일 16-10-3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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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을 위한 몸부림

합3:1~2

2016. 10/30. 11:00(종교개혁 499주년 기념주일)

만사비통(萬事秘通)

지난 실용정부에서 ‘만사형통’(萬事兄通)이란 말이 크게 유행했다. 무슨 일이든 ‘’(대통령의 형)을 통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대통령의 형이 나랏일을 좌지우지했다는 뜻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동안 현(現)정부에 들어서는 ‘비선실세’(秘線實勢)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는데, 드디어 지난주간에 그 실체가 드러났고, 이로 인하여 온 나라가 공황상태가 되었다. 나는 이 사태를 보면서 현정부는 ‘만사비통’(萬事秘通) 정부라고 생각했다. 비선실세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되었다는 뜻에서다. 나랏일이 비선실세를 통해서 이뤄지다(비통)보니 다른 사람들과는 소통이 되지 않는 ‘비통’(非通)정부라는 비판을 듣게 되었고, 결국은 온 나라와 국민을 ‘비통’(悲痛)에 빠뜨린 것이다. 이제라도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제대로 밝힌다면 얼마든지 전화위복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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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요즈음만큼 우리 사회에서 개혁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생각하게 한 때도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주간에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것은 깊이 생각해 볼만한 일이라 여긴다. 모쪼록 이를 계기로 나라도, 교회도, 개인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방향으로 개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온 국민이 행복한 나라, 행복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금번의 사태를 보면서 사람이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아무리 시스템이 훌륭해도 그것을 운용(運用)하는 사람이 잘못되면 잘못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변해야 조직도 사회도 교회도 변하게 된다. 잘 아는 대로 종교개혁도 루터라는 한 인물의 철저한 변화(심령의 부흥)에서 시작이 되었다. 그의 심령이 변하니까 가는 곳마다 개혁의 불씨가 되어 변화를 일으켰다. 이 시간에 개혁의 불씨가 되었던 부흥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심령의 부흥이 참된 부흥이다.

본문의 주인공 하박국은 종교개혁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다. 특히 2:4에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종교개혁의 핵심구호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의 근간이 되었다. 그리고 본문의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2) 라는 그의 기도는 부흥을 꿈꾸는 모든 사람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말씀이다. 이런 점에서 하박국은 개혁, 혹은 부흥과 관련이 깊은 사람이란 것을 알 수가 있고, 그를 통하여 부흥에 대한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흔히 우리는 ‘부흥’하면 먼저 큰 교회, 그곳에 가득한 성도, 넉넉한 재정을 떠올린다. 부흥을 위한 기도를 드려도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기도를 드린다. 하지만 성경적인 부흥, 특히 우리가 그토록 즐겨 인용하는 본문에서의 부흥은 전혀 다르다. 종교의 본질이 그렇듯이 부흥 역시 그렇다. 내면의 변화에 초점이 있다. 부흥을 히브리어로 ‘카야’(חיה)라고 한다. 이는 ‘살다.’, ‘살리다.’, ‘소생시키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구약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죽음과 대조해서 안전하고 온전하게 살아있음,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나 소생하는 것), 질병 등으로부터 건강을 회복하고 치료받는 것이다. 본문은 두 번째 의미다. 그러므로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는 자기 민족이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심판 중에라도 자비를 베푸셔서 자기 민족을 다시 살려달라는 것, 회복시켜달라는 간절한 기도이다. 그러니 부흥은 개인이나 공동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 소생하는 것이다. 기도가 살아나고, 말씀이 살아나는 것이다. 찬양이 살아나고 예배가 살아나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살아나고, 헌신과 섬김이 살아나는 것이다. 죽어가는 모든 것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부흥이다. 살아나면 성장은 시간문제다.

 

부흥은 거룩한 불만에서 시작된다.

그러면 누가 이런 부흥을 경험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부흥을 경험할 수 있을까? 하박국이 이에 대한 답이다. 하박국서를 소선지라고 한다. 본서는 모두 세 장으로 된 짧은 책인데, 1장과 2장은 두 번에 거친 선지자의 불만스러운 질문(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자상하신 응답이고, 3장은 응답에 대한 선지자의 신앙 고백적 찬양이다. 분문은 이 찬양에서 기도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마치 선지자 개인의 간증처럼 기록이 된 것과, 누구에게 이 말씀을 선포한 것인지 그 대상이 드러나 있지 않는 것이 본서의 특징이다. 흔히 하박국을 ‘구약의 도마’라고 부른다. 사도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확인하기까지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 것처럼 하박국도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응답해 주시기까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서는 선지자의 거룩한 불만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다(1,2장 전체가 불만에서 비롯된 선지자의 질문과 하나님의 답변으로 되어 있음, 내용설명은 생략).

 

하박국처럼 거룩한 불만이 영적 부흥의 시작이다. 현실에 안주해 버리면 그에게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현재적인 삶이나 상황에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라야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가 있는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가 의심의 사람, 불만의 사람에서 위대한 신앙 고백적 찬양을 드릴만큼 성숙한 사람으로 바뀐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에 눈감지 않고, 그 해결책을 얻기 위하여 끈질기게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이런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그의 이름과도 잘 어울린다. 하박국이란 이름은 ‘껴안은 자’, ‘씨름꾼’이란 뜻이다. 문제를 꼭 껴안고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씨름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그렇게 살았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외면하거나 피하지 않고 그것을 붙들고 씨름하듯 해결을 받을 때까지 하나님께 매달렸다. 이런 사람에게 부흥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루터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루터는 죄와 구원의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그는 고해성사한 다음 계단을 내려가다가 금세 되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다시 고해성사를 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마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고해하고 다시 계단을 내려가도 마찬가지였다. 루터는 또 돌아와 고해성사를 했다. ‘그 사이에 또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루터의 고해성사를 맡았던 신부가 너무 빈번한 루터의 고해성사 요청 때문에 루터를 피해 도망 다녔다는 일화가 있다. 그만큼 루터는 죄와 구원의 문제를 풀기 위해 세세하고, 꼼꼼하고, 철두철미하게 매달렸던 것이다. 그 결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2:4)는 믿음의 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토미 테니(Tommy Tenney)는 부흥을 태동시키는 힘은 ‘배고픔’이라고 했다. 영적 배고픔, 영적 갈망, 영적 갈급함이 부흥의 시발점이라는 뜻이다. 심령의 부흥, 교회의 부흥을 위해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무엇보다 예배에 대한 목마름이 있고, 은혜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기도에 대한 목마름, 찬양에 대한 목마름,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에 대한 목마름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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