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마땅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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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015회 작성일 16-11-27 13:37본문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시147:1~6
2016. 11/27. 11:00(추수감사절)
※ 김화정, 조연옥 자매의 감사 간증
-감사절의 참 의미는 앞서 간증한 두 자매처럼 그동안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그것을 입술로 증거하는 것이다. 예배의 본질은 ‘받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예배는 무엇인가를 기대하기보다는 이미 주신 것을 고백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말씀을 듣기 전에 돌아가면서 감사의 고백을 한 마디씩 하겠다(예, 지난 1년 동안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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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
본 시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보다 선하고 아름답고 마땅한 일은 없다.’ 찬양은 선하고(טוב), 아름답고(נעים/‘기분이 좋다’), 마땅하다(נאוה/‘아름답고 모양새가 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찬양의 중요성과 당위(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본 시편을 전형적인 찬양시라고 한다. 본 시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에스라-느헤미야 시대가 배경이다. 본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고 마땅하다고 선언한 다음,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열거하고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감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는가?
1. 세우시고 모으시는 분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2).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로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 전역으로 끌려가서 노예생활을 해야 했다. 그 세월이 무려 70년이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을 받아 세 번에 거쳐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파괴된 성전을 다시 세우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았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민족적인 신앙 회복운동을 일으켰다. 2절은 이런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각 지역으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아서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다시 세우도록 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 자신을 비롯하여 자녀와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바로 세우시는 분, 흩어진 모든 것들을 다시 모으시는 분이시다.
2. 고치시고 싸매시는 분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3).
가장 무서운 상처는 마음의 상처다. 마음이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지기 때문이다(※전설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화 돋구기 전략’). 그래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4:23)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의 마음을 모든 상처로부터 지켜주시고, 또한 상처 난 마음을 고쳐주시고, 회복시켜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여기서 ‘상심한 자’는 ‘마음이 깨져서 조각난 자’란 의미다. 그리고 ‘고친다.’는 것은 단순한 응급조치가 아닌 ‘완전한 회복’을 뜻한다. 하나님은 마음이 깨져서 조각난 자들을 완전히 회복시키시고, 치유해주시는 분이시니 감사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70년간의 포로생활에서 얻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고국의 상황은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안겨주었다. 고국은 말 그대로 폐허더미였다. 하나님께서 이런 그들을 고치시고 싸매주신 것이다.
3. 세시고 부르시는 분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그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4).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관심에 대한 말씀이다. 별이 얼마나 멀리 있고, 얼마나 많은가? 런던대학 우주 물리학자 보이드 박사는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수가 약 10만개이고, 최신 전자 망원경으로 보면 한 은하 안에서 약 2,000억 개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재까지 밝혀진 숫자이고, 지금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그러니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멀리 있는, 그렇게도 많은 별들을 다 세시고, 그 이름대로 부르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별처럼 아무리 멀리 있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 중에 있어도 아시고,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름을 부르다’는 것은 ‘알고 있다.’,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다.’는 뜻이다. 경험적으로 아무나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또한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별처럼 아주 먼 곳에, 수많은 사람들 중에 묻혀 살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일이 다 세시고, 아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하고 찬양할 일인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신이 잊혀진 존재라고 생각될 때다. 그래서 프랑스의 어느 여류 작가가 ‘죽은 여자보다 더 불행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라고 했다.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을 잊혀진 존재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무한한 사랑과 관심으로 돌보신다는 것이다. 바로 이 은혜로 오늘의 우리가 있고, 우리 가정이 있고, 교회가 있고, 이 나라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름을 아시고, 또한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하나님은 멈추지 않으신다!
본문은 지금까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행동을 6개의 동사로 소개하였다. ①‘세우시고, 모으심’, ②‘고치시고, 싸매심’, ③‘세시고, 부르심’이 그것이다. 이 동사들의 시제가 모두 현재형으로 되어 있다. 진행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행동(사랑과 관심)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계속 세우시고, 계속 모으신다는 것이다. 계속 고치시고, 계속 싸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행동은 과거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회적으로만 일었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지금 우리 안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세우시고, 모으심’, ‘고치시고, 싸매심’, ‘세시고, 부르심’을 이어가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와 찬양도 계속되어야 한다. 말 그대로 감사로 물든 인생, 찬양이 일상이 된 인생이 되어야 한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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