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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1,582회 작성일 16-11-1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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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들고 아멘 아멘

느8:1~12

2016. 11/13. 11:00

헬싱키의 역설(Helsinki paradox)

싱가포르에 ‘새 공원’(Jurong bird park)이라는 관광명소가 있다. 어떤 사람이 싱가포르에 가서 그 공원을 다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유니세프 동전 모금함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동전함이 참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동전을 넣으면 쨍그랑하고 곧장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몇 초(秒)동안 원뿔형의 원통을 따라 빙글빙글 돌다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이 장치가 주는 재미 때문에 정신없이 동전을 넣다보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동전을 몽땅 집어넣었다고 한다. 만약 동전을 넣는 재미가 없었다면 그는 동전 몇 개 집어넣고 그 자리를 떴을 것이다. 하지만 동전을 넣는 재미에 빠져서 그렇게 많은 동전을 넣은 것이다. 재미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자발성’이다. 이 사소한 경험담이 보여준 것처럼 무슨 일이든 자발성이 작동되면 기대효과는 극대화가 되는 것이다.

 

 

자발성과 관련된 실험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핀란드 정부가 실시한 실험이다. 40대 초반의 상급 관리자를 각 600명씩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A그룹은 자기의사와 상관없이 계획대로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식이요법, 운동, 금연, 금주 등 의사의 지시에 철저히 따르게 하고, B그룹은 평소 자기 생활습관대로 지내게 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후, 두 그룹의 건강을 비교했다. 어느 그룹이 더 건강했을까? 놀랍게도 B그룹이 심장혈관질환, 고혈압, 당뇨, 암, 각종 사망, 자살 등에서 월등히 낮고, 삶의 질은 훨씬 높았다. 이것이 소위 ‘헬싱키의 역설’(Helsinki paradox)이다. 질병치료는 물론 건강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자발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발성이 없다면 제 아무리 명의를 만나도, 좋다는 약과 음식을 먹어도, 건강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자발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예배를 위해 교회에 나온 것을 비롯해서 기도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고, 말씀을 듣고, 섬기는 모든 일을 이를 악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기쁘게 예배를 드리고, 기쁘게 기도를 드리고, 기쁘게 찬양을 드리고, 기쁘게 섬겨야 한다. 기쁘게 말씀을 들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기왕 하는 것 자발성을 가지고 열심히 즐겁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곳에, 이런 사람에게 임하신다. 오늘 본문이 좋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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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모인 사람들

본문은 성경에서도 보기 드문 무척 감동적인 장면 중에 하나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의 헌신적이고 탁월한 지도하에 예루살렘 성벽공사를 단 52만에 완공을 하였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100여 년 동안이나 폐허로 방치되었던 것을 단 두 달도 걸리지 않고 해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일을 그토록 빨리 해낼 수 있었을까? 모두가 이 일에 모든 힘과 정성을 쏟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마음이 있고, 힘과 정성을 모으면 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무너진 성벽공사를 마무리한 그들은 이제 무너진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마음을 모았다. 그래서 일곱째 달 초하루, 곧 새해 첫날에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남녀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1,2).

 

1절에 매우 인상적인 단어가 나온다. ‘일제히’ 라는 말이다. 이를 히브리어로 ‘케이쉬 엑하드’(כאיש אחד)라고 하는데, ‘한 사람처럼’이란 뜻이다. 모든 백성이 한 사람처럼 수문 앞 광장으로 모였다는 것이다. 누가 모이라고 요구해서 이렇게 모인 것이 아니다. 그저 자발적으로 모여든 것이다. 이 점이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는 더욱 놀랍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다. 얼마나 기특하고 놀라운가? 새해를 말씀으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말씀으로 무너진 신앙을 회복한 다음 새해를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이요 율법학자인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달라고 요청했다. 스스로 청한 것이다. 이런 자발성이 신앙의 부흥, 민족의 부흥을 가져왔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말씀을 듣는 그들의 태도다.

 

말씀을 듣는 태도

그들은 누구의 지시에 의해 광장에 모인 것도 아니고, 말씀을 듣도록 강요를 당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광장에 모였고, 자원해서 말씀을 듣고자 했다. 그러니 말씀을 듣는 그들의 태도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본문은 그 당연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가지라고 말이다.

 

우선 그들은 말씀을 ①‘집중적으로’(3) 들었다. 그들은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3), 적어도 6시간 이상을 에스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루로 끝나지 않고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 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18). 그 많은 사람들이 칠일 동안 하루에 6시간 이상씩 한 자리에서 집중적으로 말씀을 들었다는 사실이 굉장하지 않는가?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없는 일이다. 각자가 스스로 결단해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일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나 사람들이 집중도가 높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다음으로, 그들은 말씀을 ②‘간절히’(3하下) 들었다. 본문은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3下) 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귀를 기울리다.’는 히브리어로 ‘아잔’(אזן)이다. 이는 단순한 듣는 행위가 아니다. ‘가까이서 듣다.’, ‘손을 귀에 대고 경청해 듣다.’는 뜻이다. 대충 듣는 시늉만 한 것이 아니라 한 말씀도 놓치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간절히 듣고, 절박한 심정으로 들었다는 뜻이다. 말씀을 통한 생명의 역사, 은혜의 역사는 이와 같은 간절함에서 비롯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③‘올바른 반응’을 보이며 들었다. 그들은 에스라가 말씀을 펴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5). 윗사람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나듯 에스라가 말씀을 펴자 모두 일어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과 존경의 표시다.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며 응답하였다.’(6).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외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순종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댔다.’(6). 이는 말씀에 자신을 복종하겠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고 모두가 통곡을 했다.’(9). 이것은 말씀에서 떠난 지난 삶에 대한 회개의 눈물이다. ‘존중-수용-복종-회개’의 네 가지 반응을 보이면서 에스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그리고 집중적으로 들었다.

 

목마름이 자발성의 동인(動因)이다.

이와 같이 말씀을 듣는 그들의 태도를 통하여 말씀에 대한 그들의 ‘목마름을 짐작할 수 있다. 흔히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말을 한다. 강력한 필요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것을 채워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목마름을 자발성의 동인(動因)이라고 한다. 본문에서도 보면, 말씀에 대한 거룩한 목마름이 누구의 지시를 받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정초부터 수문 앞 광장으로 한 사람처럼 모이게 했다. 스스로 청하여 말씀을 듣게 했고, 하루 6시간씩 계속되는 말씀 듣기를 7일 동안이나 계속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거기에 올바른 반응까지 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신앙생활은 자발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마지못해서, 혹은 억지로 하는 일은 반드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성경은 곳곳에서 자발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출35:5,20,21,22,29, 고후8:11, 9:5,7). 특히 베드로는 “너희 중에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벧전5:2) 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자발성은 하나님을 섬기는 매우 중요한 태도다. 그런데 신앙생활에서 이 자발성의 출발점이 거룩한 목마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발성을 기반으로 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항상 주님의 은혜에 목이 마르고, 주님의 사랑에 목이 말라야 한다. 주님의 복음과 주님의 나라에 목이 말라야 한다. 예배에 목이 마르고, 기도에 목이 마르고, 찬양에 목이 말라야 한다. 무엇보다 본문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목이 말라야 한다. 특히 말씀에 대한 목마름은 영적 건강의 계기판이다. 몸이 아프면 가장 먼저 식욕이 떨어진다. 반면 건강이 회복되면 식용도 좋아진다. 성장기 아이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 건강한 영혼은 말씀을 향해 끊임없이 목마름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말씀에 자발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말씀 앞에 하나같이 모이게 되고, 말씀을 자원해서 집중적으로 듣게 되고, 절박한 심정으로 간절히 듣고, 올바른 반응을 보이면서 들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심령의 부흥, 신앙의 부흥, 교회의 부흥이 시작된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이와 같은 자발성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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