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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두가 주님의 은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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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520회 작성일 15-12-2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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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두가 주님의 은혜라!

신1:30~33

2015. 12/27. 08:00, 11:00

저는 계란이 되고 싶어요.

저는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를 좋아한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라는 가사가 너무 좋다. 이것이 저의 간증이고 고백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 짝에도 쓸모 자를 주님께서 왜 사랑해 주시고, 왜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해 주셨는지 너무 감사하고, 게다가 목사로까지 세워서 주님과 몸된 교회를 섬기게 하시니 그 은혜가 더욱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이 찬송이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일축하 찬양으로 자주 불린다고 한다. 여기엔 재치 있는 장난기가 섞여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생일축하 찬양으로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은혜를 받을 만한 자격도 없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구원하여 주시고, 지금까지 여기까지 이렇게 건강하고 반듯하게 자랄 수 있게 하신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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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위암으로 죽자, 술 중독자 아빠는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된 두 자녀를 돌보지 못했다. 추운 겨울에 불도 때지 않은 방에서 떨고 있다는 소식을 윗마을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 듣고, 두 남매를 데려다가 옷도 갈아입히고, 배불리 먹이고, 따뜻한 방에서 재우고, 학교도 보내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목사님은 남매 중 큰아이가 쓴 글을 우연히 읽고 나서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 글은 마을에 있는 양계장을 견학하고 쓴 글이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계란이 되고 싶어요. 나는 오늘 닭장을 돌아보고 어미 닭의 품에 안긴 계란을 보았어요. 그리고 엄마의 품이 그리웠어요. 내가 만일 계란이 된다면 어미 닭이 나를 품어 주겠지요. 그래서 나는 계란이 되고 싶어요.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는 아이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목사님이 이 아이에게 따뜻한 음식, 따뜻한 옷, 따뜻한 방을 주었는데도 여전히 그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춥고 황량한 빈 공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결코 떡으로만 살 수가 없는 존재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인간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그 누구도 채울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절대공간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공간이 채워지기까지 인간에게는 만족도 안식도 없다. 우린 이렇게 주님을 만나 주님 안에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리고 주님과 함께 2015년도를 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다. 이 시간에 지나간 시간을 회고하면서 다가오는 시간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여전히 광야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지 40년째 되는 해, 모압 평지에서 행한 모세의 설교다. 지난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며 이집트에서 탈출한 20세 이상 사람들 중 모세, 여호수아, 갈렙을 제외하고 모두 죽고, 새로운 세대(1.5, 2세대)가 광야에서 태어났다. 모세는 그 동안 광야를 숨가쁘게 사느라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못했다. 그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가나안이 바라다 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설교로 그들을 가르쳤다.

 

본문은 모세의 설교 첫 번째 부분으로,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사건을 회고한 내용이다(민13:~14:). 이곳에서 백성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대하여 악평을 하고,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과대평가하면서 자신들은 절대로 그들을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자신들은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에 지나지 않다고 했다. 이런 보고를 듣자 백성은 모세를 원망하며 다른 지도자를 세워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집트 탈출사건을 헛되게 만들고, 하나님의 약속을 거부하는 심각한 반역이었다. 결국 이 사건 때문에 그들은 지난 40년 동안 ‘크고 두려운 광야’(19)에 갇히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들은 광야에 있다. 모세는 그 광야에서 그들의 부모 세대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광야를 성공적으로 건너는 법을 말하였다. 우리 인생도 광야다. 우리 역시 인생광야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2015년을 보내면서 이제 광야를 벗어났나 생각했는데, 여전히 광야에 있고, 여러 소식에 의하면 2016년이란 광야는 더욱 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어떻게 인생이란 광야를 성공적으로 건널 수가 있을까?

 

먼저 가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 갇혀 떠돌아다니게 된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32).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었다고 모세는 강조한다. 그는 광야생활에서 있었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상기(想起)시키고 있다. 그 은혜에 힘입어 이곳까지 왔고, 그 은혜를 힘입으면 가나안도 넉넉히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모세는 두 가지로 그 은혜를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로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30).

 

하나님은 위험하고 불확실한 곳으로 우리를 먼저 보내시고 뒤를 따라가시는 분이 아니다. 솔선하시는 분이시다. 먼저 가시면서 따라오게 하시는 분이시다. 사실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40년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모습을 철저하게 보여주고, 경험하게 하는 기간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다. 구름기둥(낮)과 불기둥(밤)이 멈추면 멈추고, 이동하면 이동하였다. 또한 ‘언약궤’다. 행군을 할 때면 언약궤가 항상 모든 대열의 맨 앞에서 갔다. 여기서 구름기둥과 불기둥, 그리고 언약궤는 모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이다. 이런 상징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행동이 이스라엘보다 앞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반역과 불순종을 수없이 반복했지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원칙과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길을 만들기’ 위해서다(30). 길을 가로막고 있는 대적을 무찔러 길을 트고, 홍해와 같이 길이 없는 곳에서는 길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다른 하나는 준비하기’ 위해서다(33). 백성이 안전한 곳에서 쉴 수 있도록 그 장소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앞장서신 것이다. 주님의 이런 은혜는 ‘지금까지’ 계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안으시는 하나님

6,7살쯤에 큰 소원이 부모님을 따라 순천 아랫장(場)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서너 번 부모님을 따라 장(場)구경을 왔다. 먼 길을 걸어왔다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무척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힘든 기색을 못했다. 그래야만 다음에도 따라간다고 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저의 마음을 알아차린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고갯길이나 강을 건널 때 꼭 업어주었다. 그러다가 아버지 등에서 잠이 들어 집에까지 업혀온 적도 있다. 아버지도 무척 피곤했을 텐데, 아무튼 아버지의 등이 참 편하고 좋았다. 그런데 성경도 하나님이 우리를 안아주시고 업어주시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모세가 본문에서 소개한 또 하나 하나님의 은혜가 ‘안아주시는’ 은혜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31).

 

험한 길을 가거나 시련의 강을 만날 때 사람이 자기 자녀를 안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광야는 마실 물도 없고, 양식도 넉넉하지 않는 결핍의 장소다. 게다가 길도 없고, 낮에는 더위 때문에 저녁에는 추위 때문에 사람이 살기 힘든 장소다. 또한 그곳에서 자라는 모든 동물이나 식물들은 맹독을 지니고 있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거칠고 호전적이다. 그런데 이런 광야생활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온 시간이었고, 하나님의 등에 업혀온 세월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모세의 기막힌 고백이다. 한 마디로 은혜의 나날이었고 은총의 시간이었다는 뜻이다. 그들이 광야 40년 동안 옷이 헤지지 않고 신발이 닳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안고 오셨고 업고 오셨기 때문이다. 선지자 이사야도 같은 말씀을 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기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46:3,4).

 

여기에 더 이상의 설명을 붙인 것은 사족(蛇足)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하나님께 끝까지 책임을 지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는 은혜의 말씀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은혜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은혜로 산다.

신/불신을 떠나서 사려가 깊은 성숙한 사람들은 항상 ‘모두가 ~의 덕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모두가 부모(남편, 아내, 아이들, 친구, 이웃, 직원들 등) 덕이다.’ 이런 것을 ‘은혜의식’이라고 한다. 은혜의식이 깊다. 이렇게 은혜의식이 깊은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고, 은혜의식이 깊은 사회가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다. 덜 된 사람일수록 자기 힘과 능력과 지혜와 경험을 주장한다. 이것은 완벽한 착각이다. 사람은 은혜로 사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2016년도는 더 크고 두려운 광야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가시면서 길을 터주시고, 길을 만들어주시고, 모든 것을 준비해주실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우리가 인생의 어떤 험지(險地)를 걷거나 어떤 시련의 폭풍우, 어떤 고난의 파도를 만났을 때도 주님께서 우리를 안아주시고, 업어주실 것이다.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남은 2015년도를 잘 마무리하고, 주님이 허락하실 2016년도를 힘차게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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