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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26, ‘영혼을 적시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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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1건 조회 17,272회 작성일 12-08-0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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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26, ‘영혼을 적시는 눈물’

시6:1~10

2012. 8/5. 08:00 11:00

눈물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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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l:namespace prefix = w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word" />tears.jpg ‘다이애나 효과’(Diana effect)란 말이 있다. 영국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죽자(1997년) 영국 전체가 큰 슬픔에 빠졌다. 많은 이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고, 그녀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날은 영국 전체가 흐느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사건 후,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심리 상담소를 찾는 발걸음이 뚝 끊어진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다이애나의 죽음으로 인해 흘린 눈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현상을 ‘다이애나 효과’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체액에는 3가지가 있는데,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의 인격과 감정, 그리고 마음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피에는 생명이, 땀에는 노동이, 눈물에는 감정이 담겨있다. 암치료 전문의 이병욱은 ‘우리가 가진 감정의 바다에서 웃음을 파도에 비유한다면 울음은 해일과도 같다’고 했다. 계속 30분 이상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도 30분 이상 울 수 있는 사람은 많다. 그러니 울음은 누구나 가장 편하게 자신을 비워낼 수 있는 훌륭한 자기표현이고,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거나 감춰둔 상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이다. 그래서 눈물에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순화시키며, 심지어 불치병까지도 치료하는 힘이 있는 것이고, 그 눈물을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각박함 속에서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속 시원히 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눈물은 마음을 녹여주고, 때로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이 시간에는 복의 통로 스물여섯 번째, ‘영혼을 적시는 눈물’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눈물의 종류

눈물은 우리의 눈을 보호하는 필수요소이다. 그리고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기초눈물’(Basal Tears)로 눈을 깜빡일 때 자연스럽게 흘리는 눈물이다. 이 덕분에 눈동자는 촉촉하고 깨끗하고 부드럽게 유지된다. 한 마디로 자동세척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이 소량의 액체가 눈동자 표면에 골고루 퍼지면서 안구의 건조를 막고,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바이러스의 접근을 막는 항균작용까지 한다. 둘째는 ‘반사눈물’(Reflex Tears)로 외부적인 자극에 의해 반사적으로 흐르는 눈물이다. 반사눈물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자극으로 눈이 손상될 위험이 있을 때에만 작용한다. 양파나 마늘을 다듬을 때 나온 눈물이 반사눈물이다. 눈물 시스템이 작동해서 자극적인 물질을 희석시키고 씻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은 ‘심리적 눈물’(Psychic Tears)로 감정적 변화에 의한 눈물이다. 기쁘거나 슬플 때, 혹은 화가 나거나 무언가에 감동했을 때 흘리는 눈물이다. 이렇게 감정에 의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영적 세척장치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덧붙이면, ‘영적 눈물’(Spiritual Tears)이 있다. 탈무드는 천국의 한쪽 구석에는 울고 싶은 사람을 위한 방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사실 천국은 눈물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도 천국에 울음 방이 있다는 것은 영혼을 씻을 때에도 눈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이 영적 눈물이다. 영적 눈물은 영혼을 병들게 하고, 썩게 만들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의 찌꺼기를 씻어내는 영적 세척장치고, 죄의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영적 항균장치다. 그래서 영혼을 맑고 밝게 해주고 주님을 향한 열정을 쏟게 해준다. 그러니 이는 거룩한 눈물이다. 이는 감정적인 기복에 의하여 흐르는 눈물이 아니라 거룩한 삶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이다. 더 나아가 거룩한 사명을 위하여 흘리는 눈물이다.

 

본시를 지은 다윗이 좋은 본보기다. 다윗은 눈물의 사람이다. 영적 울보였다. 그의 시들을 보면 눈물이 철철 흐르고 있다. 특히 본문 6절에서 그는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고 했다. 다른 곳에서는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56:8)라고 했다. 이것은 깊은 영성을 소유한 신앙인의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다윗은 무엇 때문에 밤마다 침상을 띄우고 요를 적실만큼 눈물을 흘린 것일까? 일신의 영달이나 부귀영화를 위해서인가? 아니다. 자신의 영혼을 파괴시켜 파멸로 이끄는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죄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것이지를 잘 알았고(2,3), 또한 죄에 대한 용서가 얼마나 큰 행복인지도 알았던 사람이다(시32:1). 그래서 자신의 죄를 위해 밤마다 가슴을 찢으며 통곡한 것이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로 심한 곤경에 처해 있다(1). 구체적으로 그 내용은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하고, 그와 함께 왕국을 세웠던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을 추종하면서 그는 왕좌에서 쫓겨나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다윗은 이를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고백하고 있다. 그가 지은 죄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일이고, 이를 감추기 위해서 충신 우리야를 전쟁이 가장 치열한 곳으로 보내 선봉에서 싸우게 하여 전사하게 만든 것이다. 간통과 살인이라는 극악한 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고난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죄를 기억하고, 만물이 휴식을 취하는 밤마다 홀로 깨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침상을 띄우고 요를 적실만큼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는 눈물을 통하여 범죄의 장소였던 침상을 회개의 장소로 만든 것이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고’(8) 회복시켜 주셨다.

 

회개의 눈물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맞는 사람(행13:22)’이라고 하셨고, 그를 양치는 목동에서 백성의 지도자 왕으로 삼으셨다. 뿐만 아니라 그와 언약을 맺어 그의 자손이 대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될 것과, 그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탄생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가문에 이렇게 복을 쏟아 부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눈물, 곧 회개의 눈물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주께서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51:16,17).

 

이는 제사나 제물이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제사나 제물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한 심령’이다. 즉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다. 사실 이런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주님의 기뻐하시는 예배, 이런 마음으로 예물을 드려야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물이 된다. 다윗은 구약시대 인물이었지만 이 원리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보시고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한 천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져오도록 했다. 천사는 처음엔 귀한 보석들 중에서 그것을 찾다가 ‘아니야, 이런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충분히 가지고 있어.’하고 외치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후 천사는 하나님께 바칠 귀한 물건을 찾느라 세상을 두루 살폈지만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의 부르짖음을 들었다. 살그머니 그가 엎드려 있는 곳으로 가서 조용히 그를 지켜보았다. 그 사람은 죄로부터 구해주시고 사랑해주신 하나님께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때 천사는 ‘드디어 찾았다!’고 외치며 보석으로 만든 상자에 그의 눈물을 담아 하늘로 가지고 갔다. 또한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의 문을 열기 위해서 인류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흘린 투사의 피를 가지고 갔으나 열리지 않았다. 자녀를 잃고 슬피우는 어머니의 눈물을 가지고 갔으나 역시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죄인이 흘린 회개의 눈물을 가지고 갔더니 천국의 문이 활짝 열렸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가장 귀한 보석,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는 바로 ‘회개의 눈물’이라는 것이다. 최고의 비극, 최고의 저주는 눈물이 없는 것이다. 눈물이 말라버린 것이다. 눈물만 나오면 기적인데 눈물이 말라 버린 것이다. 눈물이 마르면 은혜도 마른다. 심령이 사막이 되고, 영혼이 사막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눈물이고, 특히 회개의 눈물이다. 다윗은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내 울음소리를 들으셨도다.”(8). 주님은 팔복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요.”(마5:4)라고 하셨다. 여기서 “위로”라는 단어를 ( )로 묶고 그 ( )안에 무슨 말을 넣든지 가능하다.

 

눈물이 소망이다. 울어야 산다.

사람은 태어날 때 울음으로 시작하고, 눈물 속에 살다가, 통곡소리와 함께 세상을 떠난다. 이는 눈물 없는 인생은 없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물을 약한 사람, 아픈 사람, 외로운 사람, 없는 사람, 뭔가 부족한 사람들만 흘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눈물은 부끄럽지도 약하지도 않은 것이다. 특히 회개의 눈물은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새롭게 하고, 소성하게 한다. 신앙이란 나무는 눈물을 먹고 자란다.  눈물이 마르면 가슴이 움직이지 않고, 생명이 없다. 사막의 가시는 원래 잎이었는데 메마름이 가시로 만든 것이다. 메마름은 가시를 만들어 나를 찌르고, 남을 찌르는 재앙이 된다. 사막에 사는 식물이나 짐승들 대부분이 맹독을 가지고 있다. 메마르고 거친 환경에 살다보니 독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사막에 돌과 모래가 그토록 많은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메마르니까 그런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눈물이 마르면 돌과 같은 심령이 된다. 마음속에 분노라는 돌멩이, 미움이라는 돌멩이, 불평과 불만, 원망, 시기와 질투 등 수많은 돌멩이들이 생긴다. 주님은 깨진 마음, 젖은 눈을 원하시고, 눈물의 회복을 원하신다. 바로 여기에, 이런 심령과 삶에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이 맺는 주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말처럼 웃음에 7무가 있는 것처럼 울음에도 ‘7무’가 있다. ①‘무조건’ 울고, ②‘무차별적으로’ 울고, ③‘무시로’ 울고, ④‘무수히’ 울고, ⑤‘무릎을 꿇고’ 울고, ⑥‘무안을 당하더라도’ 울고, ⑦‘무엇보다 먼저’ 울어야 한다. 눈물은 얼룩진 상처를 곱게 펴주고, 구겨진 인생을 쫙 펴주는 영혼의 다림질이다. 특히 눈물은 나의 육체적, 정신(심리)적, 영적 상태를 가늠해 보는 중요한 척도다.

 

울면 무너진 신앙과 잃어버린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회개의 눈물이 있어야 주님을 만날 수 있다. 눈물은 절망과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이 살아나는 하늘 공식이다. 눈물은 하늘을 보게 하는 천국렌즈이고, 인간됨의 표현이다. 눈물로 써내려간 기도만이 마침내 하늘에 닿는다. 나의 눈물로 내 자신은 물론 가정과 교회, 사회가 살아나고 건강해 지고 행복해 지고 주님의 복이 임하게 된다. 신자는 주님처럼 다윗처럼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처럼 눈물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눈물 젖은 눈으로 내 자신을 바라보고, 자녀를 이웃을, 가정과 교회를 사회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이와 같은 눈물 프리즘 속에서 아름다운 영혼의 무지개가 수없이 피어나게 될 것이다. 아니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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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눈물은 우리의 영혼을 살게 하는 생명수입니다.</span>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눈물은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키는 샘물입니다.</span>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눈물은 축복의 씨앗이고 은총의 거름입니다.</span>


<p class="바탕글"><span style="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눈물은 주님의 언어입니다.</s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