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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25, ‘영광스러운 직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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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626회 작성일 12-07-2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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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25, ‘영광스러운 직분’

출28:1~5

2012. 7/29. 08:00  11:00

너 기도시킨다!

황소 한 마리가 있었다. 주인이 너무 잘해주니까 이 황소가 버릇이 없어졌다. 일을 시켜도 들은 척도하지 않고 벌렁 누워서 게으름만 피웠다. 주인이 다가가 ‘너 이놈, 어서 일어나! 그렇지 않으면 여물을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황소는 주인의 말에 끔쩍도 하지 안했다. 당장 쫓아내겠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주인이 이 게으르고 겁 없는 황소에게 한 마디 말을 했다. 그러자 황소가 벌떡 일어났다. 도대체 주인이 이 황소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너 자꾸 말을 듣지 않으면 기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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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기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의미보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는 것이 싫다는 의미다. 어떤 사람은 이 황소에게 ‘너 목사 시킨다.’고 했다면 아마 기절했을 것이라고 했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그냥 교회 다니는 것도 어려운데, 거기다가 직분까지 맡은 것은 굉장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저 믿음으로 응답하여 거룩한 부담으로 여기고 감당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성경 역시 주님을 따라는 길을 좁은 문을 통과해서 걷는 좁은 길이라고 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고난의 길이다. 이것이 신자의 길, 나아가서 직분자의 길이다. 그러니 게으른 황소에게 기도시키겠다는 말이 그 어떤 말보다 두려운 말이 된 것이다.

 

반면 이런 사람도 있다. 섬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와서 안 해 본 일 없이 다하며 피눈물 나는 고생을 했다. 그 덕에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식당을 경영하게 되었다. 주일은 쉬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음식은 한정 판매했다. 인간답게 여유를 갖고 살며, 종업원도 그렇게 살도록 해주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란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여전도회 회원이 1000명이 넘는 교회에서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들과 경쟁하여 초등학교 졸업한 그가 총회장이 되었다. 참으로 감사해서 눈물이 나왔다.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나님, 섬 것이 예수 믿고 출세했습니다. 제가 오늘 여전도회 총회장이 되었습니다.’며 흐느꼈다. 직분을 맡으면 황소처럼 깜짝 놀라 도망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사람처럼 감격스럽게 섬기는 사람이 있다. 동물은 본능으로 살고 맹수는 야성으로 생존하지만 신자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오직 감사와 감격으로 산다. 물론 직분은 ‘멍에’와 같다. 그런데 ‘은혜로운’ 멍에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복의 통로 스물다섯 번째, ‘영광스러운 직분’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직분의 성격과 특징

출25~27장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성막과 관련된 각종 기구들에 대한 말씀이고, 28장은 그 성막 관리를 책임지고 성실히 직무를 수행할 사역자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고 본문은 그 사역자로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선택된 사실(1)과 직무수행 중 그들이 착용해야 할 거룩한 옷과 장신구에 대한 내용이다(4). 하나님은 모세에게 대제사장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만들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2)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그 옷은 흉패, 에봇, 겉옷, 반포속옷, 관, 띠, 그리고 머리에 두르는 금패 등 모두 일곱 가지다(4). 일반 옷과는 확연히 구분이 되는 최고의 재료로 만든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이다.

 

왜 이렇게 옷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아론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고 하셨을까? 이것은 아론의 신앙이나 인격이 탁월하고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가 맡은 제사장 직분 때문이다. 이는 그가 맡은 제사장 직분의 성격과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선 옷은 직책이나 신분과 연관이 있다. 이는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옛날에는 왕이 입는 옷, 대신들이 입는 옷(관직에 따라 다름), 평민의 옷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신분(혹은 계급)에 따라서도 구분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론을 위하여 옷을 이렇게 만들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를 구별하여 세웠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즉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움 받은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옷은 부름받은 하나님의 일꾼으로서의 정체성을 뜻한다. 또한 제사장 직분이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직책인가를 보여준다. 즉 제사장 직분의 성격과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아름답고 영광스러우신 분이 맡기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은 사람 또한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된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교회 직분의 성격을 다양하게 묘사하였다. 교회 직분은 거룩한 성직이고(딤전1:12), 은혜로 받은 직분이고(딤전1:12), 영광스러운 직분이고(고후3:8), 의로운 직분이고(고후3:9), 영화로운 직분이고(롬11:13), 승리의 직분이라(고후2:14)고 하였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맡고 있는 직분의 성격이고 특징이다.

 

가장 소중한 직분

기독교 전통을 지닌 서구 사람들은 자기를 소개할 때 교수라도 교수라고 하지 않고, 회장이라도 회장이라고 하지 않는다. 실례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사만은 ‘나는 목사(Reverend)입니다.’ 라고 말한다. 이 Reverend는 ‘존경받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나는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얼마나 오만하고 뻔뻔스러운 말인가! 이는 목사가 자기를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말할 만큼 뻔뻔스러워서가 아니라 그 만큼 목사의 직분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그 직책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교회 직분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다.

 

장례식장에 가보면 더욱 분명하다. 영정사진을 밑에 위패가 있다. 거기에 집사, 권사, 장로라고 쓰여 있다. 직분이 없는 사람은 ‘성도’라고 쓴다. 선생, 교수, 국회의원, 장관, 회장이라 해도 그 직책을 쓰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공원묘지나 납골당에서도 같다. 묘비를 보면 장관 ○○○의 묘. 회장 ○○○의 묘란 없다. 집사 ○○○의 묘, 권사 ○○○의 묘, 장로 ○○○의 묘라고 적혀있다. 죽어서도 따라다니는 것이 교회의 직분이다. 왜 그럴까. 이 직책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 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례식장에서 영원히 남을 묘에 이름 밑에 교회의 직분을 적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이름이다. 세상에서 받는 가장 귀중한 직책이다. 그러니 이 이름과 직책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직분에 대한 태도

어느 식당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쓴 ‘사인여천’(事人如天)이란 글자와 김영삼 대통령이 쓴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글자를 표구로 해서 걸어둔 것을 보았다. 대통령들이 써준 것이라고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직분에 대한 태도다. 우선 직분을 그 어떤 것보다 소중히 여겨야 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고, 특권으로 여겨야 한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충성스럽게 여겨 맡겨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분을 소중히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그 직분을 주신 주님을 소중히 여기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된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주님의 복이 임하고, 주님의 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삼상2:30). 그리고 직분을 사모하고 사랑해야 한다. 사모함은 살아있음과 건강함의 표시다. 살아있는 건강한 신자는 직분을 사모하고 사랑하게 되어 있다. 물론 이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다. 주님의 일을 위하여 사모하는 것이다. 즉 주님의 일에 직분이 꼭 필요하고, 이런 이유로 주님의 일을 위하여 직분을 사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모하는 거룩한 마음에 주님께서 복을 쏟아부어주신다. 또한 맡겨진 직분에 충성해야 한다. 사실 주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면서 바라는 것은 성과가 아니라 충성이다. 직분을 얼마나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감당했느냐를 보신다. 그래서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전4:2)고 한 것이다.

 

회사를 잘 경영하는 사장은 스톡옵션(Stock Option)을 받고, 직장에서 일을 잘하면 승진을 하고, 월급도 오른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맡은 직분도 ‘상급이 있는 직분’이다. 성경은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고 했다. 물론 세상 일에는 수고한 만큼 거두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하는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는 투자다. 늦어도 하나님 나라에서 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도 미리 상급을 받는다. 주변에서 주님을 위해서 충성한 종들,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며 땀 흘려 수고한 사람들과 그 자손이 잘되고, 그 가정과 산업이 복을 누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직분은 소중한 복의 통로다. 아니 직분은 축복의 ‘명분’(名分)이다. 특히 직분에 대한 충성은 우리를 더욱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주고(딤전3:13), 주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게 하고(마25:21,23), 각종 면류관이 보장되어 있고(딤후4:8, 벧전5:4 등), 믿음의 큰 담력(딤전2:13)과 은사와 능력을 얻게 된다.

 

프로가 되자!

한 병장의 글이다. 제대 말년에 신병이 들어왔다. 어찌된 일인지 신병이 늘 보이지 않았다. 알아보니 신병이 바둑을 잘 두어 바둑광인 대대장에게 불려갔던 것이다. 대대장이 시간만나면 신병을 불러다가 바둑을 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대장에게 불려간 신병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얼마 후, 퉁퉁 부은 얼굴에 절름거리며 돌아왔다.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더니 바둑을 두던 대대장이 져주지 않는다며 바둑판을 뒤엎고 30분간 때리더란 것이다. 신병의 말을 들은 선임들이 ‘군대는 요령인데, 대대장에게 계속 이기기만 했으니 얻어맞지. 가끔 져주지 왜 이기기만 했냐?’고 또 때렸다. 그러자 신병이 울면서 ‘저는 아마추어 아니라 프로입니다.”라고 했다.

 

취미로 바둑을 두는 아마추어는 상대에 따라 져줄 수도 있지만 프로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상대가 누구든 프로는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자기 기량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병은 대대장 앞에서도 자기 기량을 다해 최선을 다한 것이고, 그러니 항상 이긴 것이다. 저는 이 글을 읽고 우리는 프로 신자가 되어야 하고, 맡은 직분에 대하여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같은 대대장 앞에서도 자신이 프로기사인 것을 잊지 않고 행동했던 신병처럼 우리가 주님의 일을 맡은 직분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주의 일을 맡은 직분자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영적 프로다. 주님은 이름뿐인 신자(직분자)가 아니라 이름값을 하는 신자(직분자)를 원하시고 기뻐하신다. 직분은 신자에게 있어서 고통스럽고 거추장스러운 ‘올무’가 아니라 주님을 향하여 비상하도록 돕는 소중한 ‘날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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