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서의 하나님(God as the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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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34회 작성일 26-07-17 07:17본문
아버지로서의 하나님(God as the Father)
앞서 우리는 온 우주를 다스리는 ‘전능하심’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의 위엄을 고백했습니다. 만약 기독교의 하나님이 거기서 끝났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너무나 거대하고 두려운, 감히 다가갈 수 없는 먼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그 장엄한 고백 한복판에 가장 따뜻하고 친밀한 단어, ‘아버지’를 놓아두었습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법적인 관계나 군신(君臣) 관계를 넘어 ‘가족의 관계’로 바꾸어 놓는 거대한 전환점입니다.
1. 아바(Abba): 가장 친밀하고 안전한 품
예수님은 하나님을 부르실 때 당시 유대인에게는 상상도 못 할 파격적인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바로 아람어로 ‘아바’(Abba), 오늘날 우리말로 하면 ‘아빠’라는 호칭이었습니다. 거룩하고 엄하신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격식과 두려움을 깨뜨리는 선언입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아무리 밖에서 높은 직책을 가졌거나 무서운 사람이라도, 집에 돌아오면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가 품에 안깁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얼마나 연약하고 부서진 상태이든 그분 앞에 나아갈 때 결코 거절당하지 않는 가장 안전한 품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2. 존재 자체를 기뻐하시는 무조건적인 사랑
세상은 늘 우리의 조건과 능력을 보고 대접합니다. 성과를 내야 인정받고, 쓸모가 있어야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의 조건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하고 왔냐고 다그치지 않고, 그저 살아 돌아온 존재 자체를 기뻐하며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은, 내 삶의 가치가 내 업적이나 성공에 달려 있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내가 낙심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조차, 내 아버지는 나를 ‘보시기에 심히 좋은’ 자녀로 바라보시며 사랑하십니다.
3.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책임과 양육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아버지는 자녀의 삶을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배고프지 않은지, 아프지 않은지 늘 살피고 기르십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하나님께 서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이가 떼를 쓴다고 해서 몸에 해로운 불량식품이나 위험한 칼을 쥐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심을 믿는다면, ‘지금 내 상황이 비록 이해되지 않더라도, 내 아버지는 결국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전능한 창조주가 마침 ‘나의 아빠’이십니다. 그래서 이 고백은 고아처럼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을 지워버리고, 우리를 가장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하게 서게 만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아버지이신 하나님까지 사도신경의 이 첫 고백을 하나씩 깊이 음미해 보면서, 삶의 자리에 어떤 고백이 가장 깊은 평안과 울림으로 다가오는지 묵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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