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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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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77회 작성일 26-09-03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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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의 삶에 대한 고백 중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실존, 고난의 성격, 그리고 구속 사역의 핵심을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이 짧은 한 문장 안에서 인간의 완악함과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 그리고 십자가의 눈부신 역설을 깊이 만나게 합니다.

 

1. 역사적 의미: 객관적 역사적 사실의 확증

실존 인물의 등장: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는 로마 제국의 유대 총독(재임 기간: AD 26~36년경)이라는 실제 역사적 인물입니다.

역사성 증거: 기독교 신앙은 관념이나 신화가 아니라, 역사라는 시공간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기반하고 있음을 확증합니다. 빌라도의 이름은 예수님의 수난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로마의 공적 기록과 역사 속에서 일어난 진실임을 보여줍니다.

 

묵상: 빌라도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로마의 대리인이었고, 예수님은 죄수의 신분으로 그 앞에 섰습니다. 겉보기에는 빌라도가 예수님의 생사를 심판하는 재판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묵상할수록 이 구도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침묵으로 빌라도 앞에 서신 그분이 곧 온 세상을 심판하실 참된 재판장이시며, 오히려 빌라도는 진리(예수님) 앞에 자신의 영혼을 심판받고 있는 피고인석에 서 있었습니다. 세상의 권세와 힘이 영원할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인간의 악의와 무능은 폭로되고 하나님의 구속사는 성취됩니다. 내 삶에서 힘을 가진 것에 주눅 들지 않고, 오직 주님의 주권만을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안위와 폭동을 두려워하는 군중의 압력 때문에 그를 십자가에 내어주었습니다. 손을 씻으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지만, 역사와 하나님 앞에서 그 책임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빌라도의 모습 속에는 진리를 알고도 타협하는 우리 자신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들어 있습니다. 나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일상에서 주님의 진리를 외면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에 동참하지 않았는지 깊이 회개하게 됩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라는 구체적인 이름은, 이 사건이 특정한 옛날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라 죄성을 가진 모든 인간 공동체의 책임 아래 일어났음을 고발합니다.

 

2. 신학적 의미: 세상의 권세와 대속의 죽음

세상의 심판 아래 놓인 인간: 빌라도는 로마 제국의 불의한 권력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권세자가 의로운 분을 불의하게 재판하고 처형함으로써, 인간의 죄악과 부패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대속적 죽음(구속):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과 십자가 처형은 단순히 비극적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신 대속(Atonement)의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성취된 구원의 자리입니다.

 

3. 신앙적 의미: 성도의 고난 수용과 소망

그리스도의 길을 따름: 성도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신주님을 기억하며, 이 세상에서 진리를 따를 때 겪는 고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자취를 따르는 과정으로 받아들입니다.

부활을 향한 관문: 십자가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로 나아가는 필수적인 관문입니다. 절망의 상징이었던 십자가가 구원의 능력과 승리의 상징으로 바뀌었듯, 성도 역시 고난 속에서 부활의 소망을 품게 됩니다.

 

로마 시대의 십자가형은 가장 잔인하고 수치스러운 처형 방식이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나무에 매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비참한 저주와 수치를 친히 담당하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진노와 저주를 끊어내셨습니다. 나무 위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비천한 자리에 내려가셨기에, 가장 깊은 절망과 죄악에 빠진 우리도 건져 올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5). 이 고백을 드릴 때마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나를 위해 고난받으신 주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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