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순간(Stern-stu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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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3,751회 작성일 23-06-24 10:06본문
별의 순간(Stern-stunde)
10여 년 전, 이집트에서 출발하여 요르단을 거처 이스라엘을 여행하는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일정 중에 시나이 반도에 있는 시내산 새벽등반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산으로 불리니 성지순례자들이 그 산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굳이 새벽에 험한 돌산을 손전등에 의지해서 그 위험한 등반을 해야 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일출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일출 때 바위산이 아침 햇살을 받으면 붉은 색을 띠게 되는데, 이 붉은 산을 만들어낸 빛의 장관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위가 햇살을 받으면 붉은 색을 띠는 것은 빛의 여러 파장 중에서 붉은 색이 가장 멀리 퍼져나가기 때문입니다. 빛이 만들어낸 그 순간을 보기위해 무리해서 새벽등반을 한 것입니다. 성지순례 겸 빛이 만들어낸 순간도 보겠다는 것입니다.
별의 순간이란 말이 있습니다. 독일어 문화권에서 비범하고 찬란한 사건이나 시대를 의미하는 일상어 ‘슈테른슈툰데’(Stern-stunde)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인생에도 시내산 일출이 만들어낸 장엄한 빛의 순간과 같은 별의 순간이 있고, 사람마다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운명적인 순간이나 사건, 곧 그 별의 순간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무리한 새벽등반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별의 순간이 벌(罰)의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출을 보겠다고 새벽등반을 했다가 실족하거나 낙상하여 성지순례를 중도에 접어야 하는 사건이 빈번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별의 순간이 벌의 순간이 되고 만 것입니다. 별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매순간이 별의 순간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 비결은 주어진 시간, 장소,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시간이 별의 시간이 되고, 그곳이 별의 장소가 되고, 그 일이 별의 사건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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