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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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5,913회 작성일 15-03-15 12:51본문
관용의 힘
로마는 작은 도시국가에서 출발하였지만 대제국을 이루며 지중해 문화권을 수백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로 ‘관용정신’을 들 수 있습니다. 관용은 상대방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로마는 다른 민족들을 없애거나 그 문화를 병합하지 않았습니다. 소위 미개부족과 자기들이 정복한 민족일지라도 제국에 기여가 있을 때는 그들에게도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최고기구인 원로원 의원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1790년 미국헌법의 기초자 중 한 사람인 제임스 윌슨은 이렇게 분석하였습니다. ‘로마인은 자국의 힘을 전 세계로 확장하려 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주민들이 자진해서 로마로 쏟아져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관용이야말로 로마가 담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고 그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우리 언어습관 중에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우리’라는 말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국어교과서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접한 말도 ‘우리’라는 단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영어에서 ‘나의 교회,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우리 교회, 우리 하나님, 우리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외동딸(아들)도 자신의 부모를 ‘우리 엄마, 우리 아빠’라고 소개하고, 심지어 ‘우리 남편, 우리 아내’라는 비논리적이고 괴이한 표현도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의식이 언어습관에 투영되어 나타나고, 다시 언어습관이 의식을 지배한다면 우리사회는 ‘나’ 대신 ‘우리’가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이 ‘우리’가 문제입니다. ‘우리끼리만’ 함께 하는 집단 이기주의와 ‘우리’(울타리)밖에 대한 배타심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배타적 민족주의, 배타적 지역연고주의, 배타적 학벌주의, 배타적 가족이기주의는 이미 ‘국제적 명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 관용정신인 것 같습니다. ‘배타성’은 강한 것 같지만 실은 약자의 무기이고, 단단한 듯 보이지만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맙니다. 교회와 신자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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