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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표지로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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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9,870회 작성일 21-12-1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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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표지로서 기쁨

2:43~47

2021. 12/19. 11:00(대림절 넷째 주일)

근심(걱정)에 사로잡힌 인생

SK브랜드 관리실에서 20~50세의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웃음에 관한 라이프 스타일에 관련한 설문조사를 했다(2008년도). 그리고 사람의 수명을 80세로 가정하고 환산한 것이다.

  

 하루 평균 일하는 시간 8시간(26.6)

 하루 평균 먹고 마시는 시간 2.6시간(9)

 하루 평균 자는 시간 6.7시간(22)

 하루 평균 걱정 근심하는 시간3시간(10)

 하루 평균 웃는 시간 86(30)  

 

 

걱정과 근심하는 시간이 정확하게 3시간 6분이다. 80년 중 자는 시간 22년을 빼면 58, 그 중에 10년을 걱정(근심)으로 사니, 인생의 1/6을 근심(걱정)하며 보낸 셈이다. 특히 웃는 시간보다 걱정하는 시간이 120배나 많다성인이 하루에 평균 10번을 웃는다고 한다한 번 웃을 때 8.6초 동안 웃는 것이다하루에 한 번도 웃지 않는 사람이 조사대상 중 1.8%로 나타났다. 500명 중 9명은 하루에 한 번도 웃지 않는 것이다. 남녀를 구분했다남자는 2시간 30분 걱정(근심)을 하는데여자는 3시간 30분이었다여자가 남자보다 1시간을 더 걱정한 것이다남편과 자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령별로는 20대가 3시간 15, 30 3시간 7, 40 2시간 50분으로 나왔다이 통계를 보고 놀란 것은 40대가 제일 많을 줄 알았는데, 20대가 제일 많다는 것이다세상이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직장도 결혼도 살아갈 미래도 모두가 이들에게 걱정거리로 작용한 것 같다이런 의미에서 젊은이들에게 응원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기뻐하는 사람들

그런데 응답자 85%가 웃음과 행복의 관계가 매우 긴밀하다고 대답했다. 웃음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잘 알면서도 웃음보다 걱정이 120배가 많다는 것은 인생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장자의 말처럼태어날 때 근심(걱정)을 함께 가지고 태어나서 그럴까유대인 격언에 ‘당신이 죽었을 땐 벌레가 먹고, 살았을 땐 근심(걱정)이 먹는다.’고 했다성경에 걱정하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근심하지 마라.’는 말씀이 365회 나온다고 한다. 우리의 형편과 체질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365일 날마다 걱정거리가 생기니까 매일매일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이 말은 곧 걱정이 없는 사람걱정이 없는 시대그리고 걱정이 없는 곳이 없다는 의미다그러므로 이 세상은 걱정하는 곳이다걱정으로 눈을 뜨고, 걱정하면서 눈을 감는 곳이 이 세상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서 최고의 기쁨을 소유한 사람들이 있었다전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기뻐하는 삶을 실천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초대교회 성도다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고로마의 학정에 시달리고 있었다먹고 사는 문제조차 어려웠다게다가 그들은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고 있었기에 삶의 안전을 보장받지도 못했다. 삶 자체가 걱정 덩어리였다결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기뻐했다기쁨은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영성이었다. 이 시간 초대교회 성도가 소유한 기쁨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래서 걱정과 근심 많은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 참된 기쁨이 있기를 소원한다.

 

 

초대교회의 특징 

42절은 단편적이긴 하지만 초대교회의 모습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본문은 이 말씀에 대한 부연설명이다. 우선, 초대교회는 모이기에 힘썼다.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서도 모이고, 각 가정에서도 모였다. 그들은 함께 모여서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모여서 서로 음식을 나누고 소유를 나누며 교제하고, 모여서 거룩한 성찬예식을 행하며 예배를 드리고, 모여서 기도했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위해 힘써서모였다(46). 여기서 힘쓰다(프로스칼테레오)는 단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떤 힘과 능력을 가지고 어떤 곳을 향하여 희미해지거나 변함없이, 그리고 계속적으로 인내하며 확고하게 붙들어 맨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이를 ‘stedfastly’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키는 것을 뜻한다.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아 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대한 확고부동한 소망에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고정시키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들은 이런 태도로 모여서 배우고, 모여서 교제하고, 모여서 예배하고, 모여서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 성령의 능력에 의해 모이는 일, 배우고, 교제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에 붙잡혀 살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그랬더니 그들 가운데서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고(43), 또한 큰 기쁨이 있었다(46). 바로 그 구체적인 예가 3장에 나온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아온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 치유된 사건이다. 이 일로 주변에 경건한 두려움과 감동을 주어, 존경과 칭송을 받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선한 영향력은 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졌다(47). 그래서 날마다 성장하는 교회가 되었다.

 

 

성도의 기쁨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초대교회는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모함을 받아 로마제국에 의해 정치범으로 극형을 당했다. 그러니 그들의 신변 또한 몹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공개적으로 성전에서도 모이고, 수시로 가정에서 모였다. 모여서 배우고 교제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에 힘썼다. 그들에게서 때놓을 수 없는 것 한 가지는 그들에게 기쁨이 충만했다는 것이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46). 여기 기쁨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아갈리아시스(γαλλίασις)인데, 이는 ‘환희’ 또는 ‘넘치는 기쁨이라는 뜻이다너무 기뻐 주체할 수 없는, 너무 기뻐 미칠 지경인, 기뻐서 뛰고 소리치는 것을 뜻한다. 이 기쁨은 말과 몸의 움직임까지 동원하는 큰 기쁨이고속에서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기쁨이다기쁨의 최고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을지 이 단어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줄 수도, 가질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영원한 기쁨이다. 세상이 알지도 못한 신령한 기쁨이다. 이 기쁨은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주신 것이다. 이 기쁨은 성령의 능력으로 모인 곳에, 모인 사람에게 충만하게 부어진다. 성령 안에서 배우고, 성령 안에서 교제하고, 성령 안에서 거룩한 떡을 떼며 예배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곳과 사람들에게 주어지게 된다. 초대교회와 성도들은 이와 같은 기쁨을 가졌고, 이 기쁨이 그들의 영성이고, 중요한 드레이드 마크였다. 그렇다면 성도의 기쁨은 자명하다. 성도의 기쁨은 주님을 가까이 하는 기쁨, 주님께 예배드리는 기쁨, 주님의 몸인 교회에 모이는 기쁨, 몸의 지체인 성도와 교제의 기쁨, 기도하고 찬양하는 기쁨, 말씀을 듣고 배우고 묵상하는 기쁨, 곧 영적인 기쁨이다.이것은 누구도 줄 수 없는 기쁨, 어디에서도 누릴 수 없는 기쁨이다. 있다가도 없는 기쁨이 아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리는 기쁨이다. 이 기쁨은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이 기쁨이 참 기쁨이다. 나는 어려서 교회에 가는 것이 즐겁고 기뻤다. 학교에 다닐 때는 매일 집-교회-학교, 학교-교회-집을 반복했고, 방학이면 교회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교회가면 너무 기쁘고, 너무 행복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기쁘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이 기쁘고, 지체들을 만나 교제하는 것이 기쁘고, 함께 섬기는 것이 기뻤다. 딱 한 번 교회를 못가는 날이 있었는데, 너무 서럽게 우니까 그 후로 집안에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교회 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아무튼 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다. 시켜서 그런 것은 더욱 아니다. 그냥 좋으니까 기쁘니까 행복하니까 그렇게 한 것이다. 성도의 기쁨은 주님으로부터 온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 주님의 몸인 교회를 가까이 하고, 지체인 성도를 가까이 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사모하여 배우기를 좋아하고, 예배를 사모하고, 기도에 집중하는 사람에게 부어지는 선물이다.

 

 

기쁨은 성도의 표지다!  

미국 서부개척 시대 때의 일이다캘리포니아에서  사람이 엄청난 금광을 발견했다그들은 관계기관의 허락을 받아 금을 캐낼 때까지  일을 비밀로 하자고 약속하고 사람은 허가를 받으러가고  사람은 생필품을 사러가고나머지 한사람은 장비를 준비하러갔다그리고  사람이 다시 모여 금을 캐러 가는데  마을사람이  따라왔다.  사람은 누가 정보를 말했는지 서로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그래서 마을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당신들은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았지요누가 당신들에게 말해 주었나요?’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우리는 누구에게서 들은 것이 아닙니다당신들의 얼굴에 기쁨과 희망과 웃음이 가득한 것을 보고 당신들이 금광을 발견한 사실을 알았지요.’ 기쁨은 감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얼굴로 표정으로 행동으로 드러나게 된다.

 

 

흔히 기쁨을 깃발과 같다고 말한다. 지금도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을 가보면 왕궁에 왕의 존재여부를 깃발로 알린다. 왕이 궁에서 집무하고 있으면 깃발이 걸려 있고, 외출 중이면 깃발이 없다. 이에 비유하여 기뻐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기쁨을 깃발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기쁨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있다는 표지이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표지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쁨은 천국이라는 복음이라는 값진 보물을 발견하여 감출 수 없는 행복과 소망 가운데 사는 사람이란 뜻이기도 하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은 기쁨이라고 한다. 서울시민의 70%가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90%가 정신적으로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시대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을 마음에 모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계시지 않으니까 기쁨이 없고, 기쁨이 없으니까 불안 염려 우울감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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