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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본받아,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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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208회 작성일 18-08-0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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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본받아, ‘기쁨

10:17~24

2018. 8/5. 11:00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법

행동심리학에 따르면 옷을 벗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내 경우는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나는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속옷만 남겨두고 다 벗어서 일정한 곳에다 둔다. ‘이런 사람은 간편하고 격식이 없는 것을 좋아하고, 웬만하면 복잡한 생각이나 관계에 끼고 싶어 하지 않지만 한번 파고들면 그 끝장을 보고야 만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더라도 충분히 감수하고, 다른 사람 앞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팔짱을 끼고 관전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내 성격과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지 않은가?

 

이 외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격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방법이 많다. 남은 시간이나 돈을 주로 어디에 사용하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생각이나 말, 자주 만나고 있는 사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조금씩은 가지고 있지만 남의 불행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남이 잘됐다는 말을 들으면 괜히 마음이 불편하고 망했다는 말을 들으면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해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칭찬하는 일에는 인색하지만 험담하고 흉보는 일에는 신이 나는 사람이 있다. 세속적인 일에는 흥이 나서 손발을 걷어붙이면서도 영적인 일에는 흥미도 없고, 그래서 항상 뒷전인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고 찬양을 부르면 없던 힘도 생긴다는데 말씀을 읽거나 들으면 잠만 오고 찬양을 불러도 도통 기쁨이 없는 사람이 있다. 이와 같이 그가 좋아하는 것, 그가 기뻐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성도는 모름지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무엇을, 어떤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 주님의 기쁨(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통하여 이를 생각해 보자.

 

웃으시는 예수님

우리가 주변에서 접하는 예수님의 얼굴을 그린 대부분의 성화가 근엄하고 엄숙한 모습, 십자가에 달려 절규하시는 모습, 가시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시는 모습, 심각한 표정으로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기도하시는 모습 등이다. 그런데 요즈음엔 주보 전면에 나온 것처럼 활짝 웃으시는 모습의 성화도 가끔 눈에 띤다. 이런 배경에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 하나는 신학적인 문제다. 우리 기독교를 크게 두 진영으로 나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그것이다. 동방교회를 그리스 정교회라고 부르는데, 그리스 정교회의 신학은 주님의 부활에 초점이 맞춰진 영광의 신학이다. 그래서 영광스러운 주님의 부활을 강조하다보니 교회의 치장도 화려하고 예배당이나 예배분위기도 전체적으로 밝다. 반면에 서방교회는 천주교회와 우리 개혁교회인데, 주님의 죽으심에 신학의 초점이 맞춰진 고난의 신학이다. 십자가와 죽음을 강조하다보니 예배나 예배당 분위기가 무겁고 엄숙하다. 건물의 외벽도 일반적으로 피를 상징하는 붉은 벽돌을 선호하고 교회강단마다 커다란 십자가를 세워두고 날마다 묵상한다. 이것이 활짝 웃으시는 주님 모습의 성화가 드문 첫째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생애와 사역을 보여주는 복음서에 주님께서 우셨다는 말씀은 있어도 웃으셨다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들에게 소위 고뇌의 사람으로 불렸다.

 

그렇다면 주님은 평생 웃음기 없는 굳은 모습으로 사셨을까? 주님의 생애, 특히 주님의 언어를 깊이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주님을 굉장한 유머쟁이라고 했다(기독교 철학자 엘튼 트루블러드Elton Trueblood의 책 그리스도의 유머에 잘 나타남). 잘 웃으시고 많이 웃으시고, 또한 사람들을 자주 웃게 하시는 분이셨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복음서에 우셨다는 표현은 있어도 직접적으로 웃으셨다는 표현이 없다. 복음서 저자들이 주님의 울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서 저자들은 왜 주님의 울음을 강조한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살이가 그토록 팍팍하다는 것, 주님의 사역이 엄중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라고 본다. 본문은 주님의 웃음을 연상케 하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나 때문에 기뻐하시는 주님

주님은 파송훈시와 함께 70명의 제자를 둘씩 짝을 지어 각 마을로 전도여행을 보내셨다(1~16). 전도를 하면서 귀신이 굴복하는 큰 능력을 경험한 제자들이 기뻐하면서 돌아와 주님께 전도보고를 하였다(17). 기뻐하는 그들에게 주님은 귀신이 너희에게 굴복한 것도 기뻐할 일이지만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더욱 기뻐하라고 하셨다(20).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구원의 기쁨보다 더 큰 것이 없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전도를 통하여 악한 세력을 굴복시킨 것은 구원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라는 뜻이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난 귀신이 굴복하는 현상보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기뻐하라는 것이다. 현상에 마음 두지 말고 본질에 충실하고 집중하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어서 주님은 성령으로 기뻐하시며기도를 드렸다(21). 여기서 기뻐하다’(ἀγαλλιάω)는 우리 말 번역은 원문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말과 몸의 움직임까지 동원하는 큰 기쁨’,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뜻한다.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면서 기도를 드렸는지 잘 보여준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토록 기뻐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다(21,22). 주님이 이시고 진리시고 생명이신 복음의 진리를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처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처럼 어리고 약하고 어리석은 사도들과 70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내시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며 기뻐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섭리로 어린아이들과 같은 제자들의 구원을 기뻐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주님의 기쁨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고, 여러분도 포함 되어 있다. 주님께서 별 볼 일 없는 나와 여러분의 구원 때문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눅15장에 나온 세 개의 찾은’(, 동전, 아들) 비유와 연결하여 생각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주님은 나와 여러분, 곧 우리 때문에 기뻐하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기쁨은 당연히 주님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주님의 기쁨의 이유인 것처럼 주님이 우리의 기쁨의 이유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생각하면 기쁨이 분수처럼 솟아나야 한다. 주님을 생각하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듯이 기뻐야 한다.

 

그러면서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20,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것)계시(23~24, 복음이신 주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신 것)에 근거한 기뻐하는 삶을 명령하셨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무엇을 기쁨의 근거로 삼느냐가 중요하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시는데(살전5:16),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본문의 70인 제자들처럼 귀신이 굴복하는 것과 같은 어떤 특별한 체험을 기쁨의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행위나 특별한 영적 체험을 기쁨의 근거로 삼으면 항상 기뻐할 수 없다. 반면에 주님의 말씀처럼 나와 같은 것에게 복음이신 주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여 하늘에 이름이 기록되는 구원의 은혜를 기쁨의 근거로 삼으면 항상 기뻐할 수가 있다. 성도에게 구원의 은혜는 지워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억할수록 깊어지고 강해져서 기쁨의 토네이도가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우리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기쁨은 깃발과 같다.

어떤 분은 기쁨을 깃발과 같다. 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에 크렘린(kremlin)이란 웅장하고 아름다운 궁이 있다. 제정 러시아 시대의 궁이었는데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고, 붉은 광장을 비롯하여 볼거리도 많은 모스크바 관광명소다. 처음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그곳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안내인을 통해 궁 안에 대통령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알아보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깃발이다. 깃발이 걸려 있으면 궁에서 대통령이 집무하고 있고, 깃발이 없으면 대통령이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것은 왕조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라고 했다. 영국의 버킹검 궁이나 벨기에의 왕궁에 갔을 때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점에서 기쁨은 깃발과 같다는 표현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쁨이 깃발과 같다면 우리의 삶에 기쁨이 있다는 것은 왕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기쁨은 우리가 주님의 자녀, 주님의 백성인 표시다. 기쁨은 그 왕이신 주님이 지금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표시다. 영광스러운 주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본 훼퍼는 이렇게 말했다. ‘제자의 삶은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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