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적 스승, ‘에스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25,132회 작성일 14-05-18 13:20본문
민족의 영적 스승, ‘에스라’
스7:6~10
2014. 5/18. 08:00, 11:00
두 천사
세월호 참사의 사회적 파장이 심각하다. 무엇보다도 어린 학생들에게 그 영향이 더욱 큰 것 같다. 총체적인 부실과 무능, 무책임, 그 결과 끔찍한 죽음을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피해학생들을 상담하고 있는 의사들에 의하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배안에 갇힌 친구들과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른들이 죽인 사건으로, 더 나아가 국가가 죽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이런 생각이 학교현장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아주 비근한 예긴 하지만 평소 모범생에 단정한 학생인데, 머리도 풀고 짧은 치마를 입고 등교를 했다. 선생님이 그 학생에게 ‘너 복장이 왜 그래?’ 하고 물었더니, ‘어른들 말 들으면 안돼잖아요!’ 하더란 것이다. 그리고 학급에서 선생님들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담임은 목숨을 걸고 우리를 구해줄까?’ ‘아마 00과목 선생님은 우리를 끝까지 구해줄거야!’ ‘그런데 00과목 선생님은 구한 척하다고 도망칠 거고, 00과목은 처음부터 혼자 살겠다고 도망칠거야!’ 이렇게 자기들끼리 말하면서 키득거린다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서 아이들의 충격이 해소되었으면 좋겠고, 그냥 유머로만 그치고 더 이상 교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대인의 민담(民譚)이다. 하나님께서 아기를 만드셔서 세상으로 보내려고 하시는데, 이 아기가 세상을 보니 온갖 위험과 다툼과 사건사고, 질병으로 가득하여 두려워서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저히 세상으로 갈 수 없다고 이야기하자 하나님께서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아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네가 힘들고 어려울 때 너를 지켜주고 보호해줄 천사를 내가 함께 보내주마! 첫째 천사는 어머니요, 둘째 천사는 선생님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위로는 부모다. 그리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이는 선생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도 이런 고마운 천사들을 많이 보내주셨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학교 선생님들이다. 우리 선생님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기 바란다. 이들에게 우리 교회와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 있다.
최초의 랍비, 에스라
교육의 힘을 보여준 민족이 유대인이다. 그들은 교육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특히 교육을 담당하는 랍비를 존중하였다. 랍비라는 말은 ‘나의 크신 분’, ‘내 주’라는 뜻이다. 랍비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분이라는 뜻이다. 탈무드는 아버지와 랍비가 함께 노예시장에 나왔는데, 한 사람밖에 구할 수 없다면 랍비를 구해야한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또한 책을 소중히 여긴 민족이다. ‘넘어져 책과 옷이 더렵혀지면 옷보다 책부터 먼저 닦아라.’ ‘생활이 어려워 집에 있는 물건을 팔아 생활해야 한다면 금 은 보석, 땅을 팔아라. 그러나 마지막까지 팔아서 안 되는 것은 책이다.’고 가르친다. 다른 민족은 왕족, 귀족, 사제, 무사를 귀하게 여겼지만 그들은 학자(랍비)를 존경했다. 가르치는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 그런 정신을 가진 민족이 잘되는 것은 당연하다.
주전 5세기 말에 일어난 바벨론 포로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백성이 바벨론 제국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의 심각한 위기를 맞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앙의 구심점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안이 ‘회당과 랍비제도’다. 제국의 각 지역으로 흩어진 그들은 더 이상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들릴 수 없게 되자 회당을 중심으로 철저한 율법(말씀)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즉 성전중심에서 율법중심의 종교로, 제사중심에서 말씀중심의 종교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보다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랍비)가 중요하게 되었다. 바로 그 최초의 랍비가 본문에 나온 ‘에스라’다. 그는 제사장 겸 율법학자였다(7:11). 그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귀환공동체)을 중심으로 나라를 재건하는데 앞장섰던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특히 철저한 율법(말씀)교육을 통해서 백성들의 신앙개혁을 실현한 사람으로, 당시 유대민족의 영적 스승이다. 그를 통하여 영적 스승의 자질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부모야말로 진정한 영적 스승이다!).
1. 율법에 익숙한 사람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손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두 번째로 귀환하는 사람들(약 1,800여 명)을 이끌고 온 지도자다. 그는 고국에 돌아와서 백성들의 신앙을 바로잡기 위해 율법에 기초한 신앙개혁을 주도했다. 그가 이 일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율법에 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붙여진 이름이 “율법에 익숙한 학자”(6)였다. 이는 그가 말씀을 잘 아는 사람이란 뜻이지만 동시에 말씀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말씀을 사랑하지 않고 말씀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말씀에 익숙한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시119편이 그의 시로 알려져 있는데, 이 시를 보면 그가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며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 몇 구절을 소개하면,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20).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55).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은보다 좋으니이다.”(72).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05).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127).
그가 이토록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귀하게 여겼기에 말씀에 익숙한 학자가 된 것이고, 신앙개혁의 주역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이다. 모두가 말씀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사도 바울이 그랬고, 어거스틴이 그랬고, 종교개혁을 완성한 칼빈이 그랬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신앙과 신앙교육을 위한 ‘유일한’ 교재이기 때문이다. 말씀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성숙한 신앙을 기대할 수 있고, 또한 다른 사람을 바르게 인도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영적인 부모, 영적 스승이 되기 위해선 먼저 말씀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 말씀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 모두가 에스라나 바울처럼, 어거스틴이나 칼빈처럼 말씀에 익숙한 학자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은 가능하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2. 영향력이 탁월한 사람
에스라는 또한 왕으로부터 깊은 신임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페르시아 제국에서 어떤 직책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6하). 여기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은 자더니’ 라는 말씀은 그가 왕에게 얼마나 신임을 받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 이유를 본문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으로’ 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그가 말씀에 익숙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헌신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처럼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헌신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부터도 신임을 받고,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요셉의 생애). 그래서 그가 페르시아 왕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아 백성들을 이끌고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적극적으로 신앙개혁을 추진할 수가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백성들로부터도 두터운 신임과 지지를 받았다. 그가 백성의 죄악된 생활을 보고 너무 기가 막혀서 겉옷을 찢고 무릎을 꿇고 성전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울며 기도를 드렸다. 그 때 남녀노소 모든 백성이 통곡하며 그 앞에 모였다(9:5~10:1). 그러면서 그들이 이렇게 말했다.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10:4). 백성들이 그에게 깊은 신뢰와 지지를 보낸 것이다. 개혁이란 한 사람의 계획과 헌신, 한 사람의 결심, 구호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사람들의 신뢰와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야 가능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그의 뜨거운 열정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와 같이 에스라는 자신이 섬긴 이방 왕과 백성들에게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개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신뢰와 지지를 얻지 못하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리고 영향력을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자녀를 교육하고,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아야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여 은혜를 입는 것이고, 아이들을 주님의 사랑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탁월한 영향력을 가진 부모, 탁월한 영향력을 가진 교사가 될 수 있다. 바로 이런 부모, 이런 교사에게서 영적 거인이 탄생하게 된다.
교사의 영광
이렇게 말씀에 익숙하고, 탁월한 영향력을 가진 에스라는 이런 결단을 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10). 그것은 ➀말씀을 연구하는 것, ➁말씀을 실천하는 것, ➂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말씀을 연구하고 스스로 실천하면서 가르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 결과 무너진 민족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선전중심 제의중심의 종교를 회당중심 율법(말씀)중심의 종교로 바꾸는 민족의 영적 스승이 되었다. 나아가 장차 기독교 복음시대를 준비한 복음의 선구자가 되었다.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은 결단이 있기를 바란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어느 교회에 평생 주일학교교사로 수고한 ‘니틴스’라는 교사 이야기다. 그의 직업은 목수였다. 그가 그곳으로 이사를 와서 출석하게 된 교회에 주일학교 교사를 하겠다고 신청했다. 담당 목회자는 그의 학벌 때문인지 아니면 직업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맡길 반이 없으니 스스로 전도해서 반을 만들어보라.’는 말로 거절 비슷한 표현을 했다. 그러나 교사가 하고 싶었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집안이 가난하고 어려워서 길에서 놀고 있는 세 명의 아이에게 다가가 주일학교에 출석하여 자기반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는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그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심어주었다. 이를 시작으로 그는 평생 주일학교 교사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 세 아이가 성인이 된 후에도 선생님의 생일이 되면 축하편지를 보내왔다. 그 중 한 사람은 인도 선교사 챨스 콘웨이고, 또 한 사람은 미국의 제29대 대통령 하딩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다. 그냥 버려두었으면 불량자가 되었을 아이들을 잘 가르쳐 선교사로, 대통령으로, 대통령 비서관으로 세운 것이다. 이것이 교육이다. 특히 신앙교육이다. 교사의 보람이고, 영광이다. 이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자기반 아이들을 가르치고, 또한 자기 자녀를 가르치는 영적 스승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반드시 여러분도 이런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귀하게 여기면서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실천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아이들에게 탁월한 영향을 발휘하는 영적 부모, 영적 스승이 되게 하소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