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같은 제자, 막달라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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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3,756회 작성일 14-04-20 13:06본문
그림자 같은 제자, 막달라 마리아
막16:1~11
2014. 4/20. 11:00(부활주일)
여성으로 산다는 것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였지만 유대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은 존중받지 못했다. 여성에겐 공적 활동이 제한되었고, 가정에만 머물러야 했다. 율법을 공부할 수도, 가르칠 수도 없었고, 회당에서도 한쪽 구석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야했다. 기도회를 개최하는 데 필요한 최소인원 10사람을 헤아릴 때도 낄 수 없었다. 식사 때 가족을 대표하여 감사기도를 드릴 수도 없었으며, 거짓말쟁이로 여겨졌기 때문에 법정에서 증인이 될 수도 없었다. 사소한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배울 것이 없다고 여겨 남성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또 여성은 성적인 욕망이 넘치는 요부로 간주되었고, 여성의 목소리 머리카락 다리 등은 아주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남자들은 회당예배 때마다 ‘저를 여자로 만들지 않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기도했다.
예수님 사역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여성을 제자로 인정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추문거리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복음서는 여러 여인이 동행하며 주님 일행을 섬겼다고 보도하고 있다(눅8:2,3). 게다가 주님은 당신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경청하는 베다니 마리아를 칭찬하셨고, 그녀가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머리에 붙고 머리털로 발을 닦아주어도 만류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크게 칭찬하며 축복하셨다(막14:9). 또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기도 하셨다. 이런 전통은 바울의 사역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바울서신에 많은 여성이 등장하고(브리스길라, 뵈뵈, 루디아 등), 그는 여성을 주님의 일꾼으로 혹은 동역자로 소개하였다. 하지만 교회가 제도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여성의 지도력은 약화되거나 차단되었고, 남성 중심적인 교회질서가 수립되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성의 이야기는 교회사의 한 구석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에 가장 큰 희생자가 본문에 나온 ‘막달라 마리아’다.
덧씌워진 이미지
막달라 마리아는 막달라 출신의 마리아란 말이다. 유대인에게 마리아는 흔한 이름이다. 성경에도 여러 마리아가 나온다(성모 마리아를 비롯하여 베다니 마리아,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 등). 서로 구별하기 위해서 이름 앞에 지명을 붙여 부른 것이다. 본문은 그녀를 ‘일곱 귀신에 붙잡혔던’(참고, 눅8:2)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그녀를 행실에 문제가 있었던 여인, 즉 ‘일곱 귀신에 붙잡힌 창녀’로 생각을 한다.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에도 그녀는 예루살렘의 유명한 창녀로 소개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자 위기의식을 느낀 종교 지도자들이 주님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녀를 보낸다. 그들은 그녀에게 주님을 유혹해서 무너뜨리면 그 지긋지긋한 창녀굴에서 빼내 로마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그녀는 주님을 유혹하기는커녕 오히려 주님의 거룩하심 앞에 무너지고 만다. 제작자의 의도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결국 그녀가 ‘창녀’였다는 편견을 관객에게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사실 그녀가 창녀였다는 이야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그렇다. 일곱 귀신에 사로잡힌 여인이 어떻게 일상(창녀)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학자들은 남성중심의 교회질서가 수립되면서 여성의 역할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그녀에게 이런 도덕적 이미지를 덧씌운 것이라고 말한다.
상처가 깊은 여인,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는 갈릴리 호수의 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주민은 주로 직물업과 염색업에 종사했고, 갈릴리에서 잡은 물고기를 염장(鹽藏) 처리하는 공장도 그곳에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비극의 땅이기도 했다. 로마군의 주둔지였기 때문이다. 로마군은 종종 정복민에게 치욕감을 안겨주었다. 그 때문에 분노한 사람들이 집단행동을 하면 질서유지 명목으로 잔인하게 진압하곤 했다. 갈릴리 여러 마을이 로마군에 의해 참혹하게 유린당했는데, 막달라도 그런 곳 중 하나다. 마리아는 그곳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어쩌면 가까운 사람들이 로마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하는 광경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이화대학의 백소영 교수는 로마군의 학살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상처를 그녀를 괴롭힌 ‘일곱 귀신’으로 해석하였다. 즉 그 끔찍한 사건으로 인한 마음속에 일고 있는 분노와 두려움으로 해석하였다.
아무튼 그 내용이 무엇이든 ‘일곱 귀신’에 들렸다는 것은 그녀의 상태가 끔찍하고 비참했다는 뜻이다. 귀신이 하나만 들어가도 심각한데, 일곱이니 두 말이 필요 없다. 그리고 이 7은 완전수다. 이는 그녀의 정신과 육체가 철저하게 망가진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처참하게 망가진 그녀가 주님을 만나 완전히 치유되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안아주신 주님, 고통에 몸부림치며 땅바닥을 기듯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땅 바닥을 기어 마침내 하늘로 비상하도록 해주신 주님, 그분과의 만남이 그녀의 삶을 뒤바꿔놓았다. 그래서 일곱 귀신에 붙잡혀 고통의 심연에서 몸부림치던 그녀는 주님과 더불어 ‘일어선 사람’, 즉 부활의 사람이 되었다. 벌레 같은 인생이 나방처럼 빛나는 인생이 된 것이다. 그런 그녀가 부활의 첫 목격자, 첫 증인이 된 것은 당연하다. 이런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부활이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고백
차동엽 신부의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의아심으로, 의구심으로, 약간은 질투심으로 ‘예수님께서 왜 그러셨을까?’ ‘왜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녀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셨고, 그녀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셨을까?’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까닭을 알고 싶은가요? 왜냐하면 내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답니다. 주님이 머리 둘 곳조차 없이 고생하며 돌아다니실 때 나는 그곳에 함께 있었지요(눅8:3).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나는 그곳에 있었고(막15:40), 요셉이 주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릴 때에도(막15:47), 요셉이 주님을 무덤에 안치할 때에도 나는 그곳에 있었답니다(마27:61).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도 나는 다른 여인들과 함께 빈 무덤, 그곳에 가 있었습니다(막16:1-2). 물론 베드로와 요한이 다시 숙소로 돌아간 후에도 나는 무덤 밖, 그곳에서 여전히 울면서 서 있었답니다(요20:11).
까닭을 알고 싶은가요? 왜냐하면 나에게는 그분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이 향할 데도 그분이었고, 내 관심이 쏠릴 데도 그분이었고, 내 시간이 바쳐질 데도 그분이었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그분이 체포되었던 그 순간에도, 이어 철저한 실패자로 종을 친 그 비통의 순간에도, 끝내는 모든 꿈이 날아간 듯이 보였던 그 절망의 순간에도, 여전히 그분은 나의 하늘이었답니다. 까닭을 알고 싶은가요? 왜냐하면 그분은 내 일생의 유일한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에서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항상 주님 ‘가까이’, 주님과 ‘함께’ 있는 삶의 중요성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 함께 있는 사람이 가장 먼저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본문설명).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는 비례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이웃사촌이란 말이 생긴 것이다.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주님을 가까이 하는 비결은 주님을 나의 전부, 나의 유일한 의미로 여기며 사랑하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유명한 남자 제자들, 베드로나 요한보다 먼저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되고, 첫 증인이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는 일곱 귀신에 붙잡혀 고통의 심연에서 몸부림치며 땅 바닥을 기듯 살고 있었다. 살아있었지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자신을 주님이 구원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결심했다. 주님을 자신의 전부로, 유일한 의미로 삼고 사랑하기로! 그 사랑이 주님과의 간격을 좁혀준 것이다. 사랑은 자력과 같다.
영적 프로가 되라!
1800년경 일본의 대표적인 화가 호쿠사이에 대한 감동적인 일화다. 어느 날, 잘 아는 지인이 그를 찾아와 수탉그림 그려주기를 부탁하자 그는 일주일 후에 오라고 말했다. 일주일 후에 그가 찾아왔을 때, 그는 약속을 2주일 연기해 줄 것을 청했다. 2주일 후에 그가 다시 찾아왔을 때, 그는 이번에는 두 달,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반년을 연기했다. 그런 식으로 3년이 흘러가자 그림을 부탁했던 사람은 몹시 불쾌하게 여기며 크게 화를 냈다. 그러자 그는 알겠다면서 그 자리에서 붓과 종이를 꺼내어 순식간에 수탉을 그려주었다. 그것은 훌륭한 명화였다. 그림을 부탁했던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더욱 화를 내면서 말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그려 줄 수 있는 것을 왜 3년씩이나 기다리게 했소?’
그때 그는 말없이 그 사람을 자신의 화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놀랍게도 그 화실의 벽은 그가 지난 3년 동안 밤낮으로 습작한 수탉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명화는 밤낮 없는 훈련의 결과다. 이것은 비단 그림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훈련 없이 참다운 프로란 어떤 분야에도 존재할 수가 없다. 믿음의 세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기도를 잘하고, 전도를 잘하고, 성경에 능통할 수 없다. 무릎이 닳도록 기도하고, 틈나는 대로 전도하고, 책장이 떨어져 나가도록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가능하다. 그래서 바울은 ‘경건에의 훈련’(딤전4:7)을 강조한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왕 주님을 믿을 바에야 어설픈 신자가 아니라 ‘프로’ 신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막달라 마리아처럼 밤낮 없이 주님께 나의 중심을, 나의 전 인생을 걸어야한다. 주님을 나의 전부로, 유일한 의미로 삼고 사랑해야 한다. 이것만이 일곱 귀신에 붙잡혀 비참한 인생을 살았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영광스런 첫 목격자, 첫 증인이 된 것처럼 주님 안에서 영광스러운 삶을 사는 길이다. 부활의 영광과 복이 여러분의 삶과 가정, 일터 위에, 그리고 섬기는 우리 교회 위에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아울러 진도해역에서 큰 슬픔을 당한 모든 이들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의 위로와 복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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