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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Ⅵ, ‘새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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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6,791회 작성일 12-03-04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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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통로Ⅵ, ‘새벽기도’

수6:12~21

2012. 3/4   08:00, 11:00

딸아, 너는 반드시 새벽에 기도하는 남자와 결혼해라!

어떤 아버지가 자기 딸에게 새벽 기도하는 남자와 결혼하라고 당부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 놓은 글이다(아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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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자기통제’가 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새벽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다 스릴 수 있고, 시간과 잠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인생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니 새벽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통제력이 검증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인생의 힘든 시기에 포기하거나 무책임하게 망가질 위험이 적다.

 

둘째,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새벽기도는 삶의 우선순위가 주님이고, 또한 주님이 삶의 우선순위인 것을 실천해 보이는 것이다.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은 삶의 지혜와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상대의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예민하다.

 

셋째,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받아보고 해봐야할 수가 있다. 새벽 기도하는 사람은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고, 또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인지 경험하여 아는 사람이다. 때문에 아내도 뜨겁게 사랑할 수가 있다.

 

넷째,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분명 말꾼은 아니기 때문이다. 말꾼은 말만 해놓고 행동은 하지 않는 무능력자, 말만 잘하지 책임지지 않는 허풍쟁이다. 하지만 새벽 기도하는 사람은 말보다 행동이 빠른 실천적인 사람이다.

 

다섯,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꿈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꿈이 없는 사람은 기도할 제목도 없다. 인생과 사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으니 기도의 필요성을 모른 것이다. 오직 꿈이 있는 사람만이 깨어서 기도한다. 새벽보다 더 어려운 시간이라도 그 꿈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섯,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무서운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산에는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이 있다. 그런데 유형자산의 가치와 미래를 결정한 것이 무형자산이다. 새벽기도는 가장 소중한 무형자산이다.

 

일곱, 새벽 기도하는 남자는 ‘부지런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새벽 기도하는 사람은 적어도 게으른 사람은 아니다. 성실하고, 신실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딸을 평생 자기 곁에 두고 처녀로 늙게 하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딸에게 좋은 배필을 마련해 주는 것은 부모의 사명, 딸을 가진 부모로서 딸의 일생을 위해서 이보다 더 지혜롭고 훌륭한 충고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제가 이 이야기에서 주목한 것은 새벽기도의 중요성이다. 이 글은 딸을 위한 아버지의 충고이기 전에 새벽기도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즉 새벽기도를 통해 누리게 되는 복에 대한 내용이다. 그래서 이 시간은 복의 통로 여섯 번째 시간으로 ‘새벽기도’에 대하여 은혜를 나고자 한다.

 

기도하라. 새벽에 기도하라. 

사실 기도는 강조해야 할 일도, 강조해서 할 일도 아니다. 기도가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숨 쉬는 일을 해야한다고 강조해서 하는 사람은 없다. 영혼이 건강하고, 건강한 영혼을 원한다면 기도는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실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것이 기도이고, 신앙생활에서 놓치고 있는 것도 기도다. 그래서 기도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사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종교활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기도의 계절 사순절에 다시 한 번 기도생활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도전을 주고 싶다. 특히 새벽기도에 대하여 도전을 주고 싶다.

 

히브리어에 새벽이란 단어가 여럿 있는데, 그 중에 ‘보케르’(boqer), ‘샤하르’(shahar), ‘샤캄’(shakam)이란 단어들이 있다. 명사로는 ‘아침’, ‘여명’, ‘아침 일찍 일어남’이라는 뜻이고, 동사로는 ‘구하다’, ‘부지런히(간절히, 지속적으로) 일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새벽이란 시간적인 의미를 넘어 태도와 자세를 의미한다. 새벽기도 역시 문자적으로는 하루의 첫 시간(이른 시간)을 드리는 것이지만, 나아가서 주님과 주님의 뜻을 부지런히, 간절히, 지속적으로 구하는 신앙의 태도와 자세를 뜻한다(잠8:17). 그러므로 새벽기도, 새벽신앙, 새벽인생은 신앙의 태도, 삶의 자세다. 또한 새벽을 ‘오르’(or)라고도 한다. ‘빛나다’는 뜻이다. 새벽은 ‘햇빛’이 빛나고, ‘이슬’이 빛나고, ‘총명’이 빛나는 시간이다. ‘영성’이 빛을 발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새벽을 선용한 사람들, 이런 삶의 태도와 자세를 가졌던 사람들 모두 햇빛처럼, 이슬처럼 빛나는 인생을 살았다. 영성이 빛나는 삶을 살았다. 주님은 늘 새벽을 깨웠다. 아브라함은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삭과 함께 순례의 길을 시작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 아침 일찍 싯딤 골짜기를 떠났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새벽에 두 시간 이상을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나에게는 너무나 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날마다 세 시간 이상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었다. 그 기도가 모든 일을 지탱해 나가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다.’ 깨어있지 않고, 부지런하고 간절하지 않으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 새벽에 잠자는 자는 결코 세상을 주도할 수 없다. 새벽을 깨우는 신자라야 자신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이 세상의 주관자인 마귀를 이길 수 있다. 새벽을 깨우는 신자,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의 은혜, 주님의 능력, 주님의 역사하심이 임하기 때문이다. 모쪼록 우리 모두 새벽에 일어나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간절하게 주어진 삶을 살자. 복은 이런 사람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들이 좋아 하는 것들/ 애완동물은 ‘거북이’, 식품은 ‘컵라면’, 스포츠는 ‘낚시’, 즐겨하는 말은 ‘하면 되잖아’, 가전제품은 ‘TV’, 노래는 ‘예스터데이’, 옷은 ‘잠옷’, 책은 ‘주간지’, 미술품은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만 새벽기도에 나오라. 

본장은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관문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 장면이다. 물론 모든 과정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졌고, 이스라엘은 그저 순종만 했다. 그것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12,15) 언약궤를 맨 제사장을 따라 침묵으로 하루에 여리고 성을 한 바퀴씩 도는 것이고, 제 칠일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제사장들의 신호에 따라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어디서든지 첫 번째 사건이 중요하다. 다음을 위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리고 전투는 장차 가나안 정복의 모델이다. 이와 같이만 하면 가나안 정복의 꿈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즉 가나안 정복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방법은 ‘새벽정신’이다. 새벽정신이 무엇인가? (이미 새벽이란 단어에서 확인했듯이)①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고, ②간절히, 열심히, 지속적으로 구하고 일하는 것이다. 여리고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준 태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12).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 뿐이었더라.”(15).

 

새벽은 기적의 시간이고, 승리의 시간이다. 요단강을 건넌 것도 새벽이고(수3:1),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철옹성 여리고를 무너뜨린 것도 새벽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것도 새벽이다. 광야에서 만나가 내린 시간도 새벽이다. 새벽에 일어나지 못한 사람은 만나를 먹을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아남았던 것은 새벽을 깨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삶의 기적을 경험하고, 인생의 승리를 경험하기 원하는 사람은 새벽기도에 나오라! 주님이 주신 하늘의 양식 만나를 먹고 영혼이 풍성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새벽기도에 나오라! 주님의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은 새벽기도에 나오라!

 

바울은 인생을 사방이 막힌 존재, 비상구가 없는 존재라고 했다. 수많은 문제의 담에 쌓이고, 문제의 사슬에 묶인 갇힌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새벽은 문제의 담을 뛰어넘는 시간이고, 묶인 사슬이 풀어지고, 닫친 문이 활짝 열리는 시간이다. 새벽은 얍복 강가의 야곱처럼 가족의 구원을 위해 몸부림치는 시간이다.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 내 가족의 문제를 부둥켜안고 주님과 씨름하는 시간이다. 새벽은 홍해와 같은 인생의 난관이 갈라지는 시간이고, 다니엘처럼 절망의 굴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다. 새벽은 문제의 여리고가 무너지는 시간이다. 사실 인생은 치열한 영적 전쟁터다.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가 갈라지는 시간이 새벽이다. 기적도 새벽에 일어났지만 시험과 음모도 새벽에 벌어졌다. 기도로 맞이하는 사람에게 새벽은 기적과 승리의 시간이 되지만 잠만 자는 사람에게 새벽은 마귀의 시험과 공격 앞에 맨몸으로 맞서게 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망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부활도 새벽에 일어났음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문제의 담이 무너지고, 문제의 사슬이 풀어지고, 문제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은 새벽기도에 나오라! 영적 전투에서의 승리를 보장받고 싶은 사람들은 새벽기도에 나오라! 주님 안에서 크게 성공하는 인생, 건강하고 힘 있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는가? 새벽을 깨우자!

 

 

 

※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깨달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2. 오늘 말씀 중에 당신에게 도전이 되었던 내용이 있다면 어떤 부분입니까?

 

3. 당신에게 있어서 새벽기도의 장애가 무엇입니까?(새벽기도를 못하고 있는 경우)

 

4. 당신에게 있어서 새벽기도의 유익은 무엇입니까?(새벽기도를 하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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