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통로Ⅱ,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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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6,813회 작성일 12-01-15 15:22본문
복의 통로Ⅱ, “말씀”
시1:1~6
2012. 1/15 08:00, 11:00
가장 위대한 투자
백화점의 창시자이고, 현대 비즈니스의 개척자 존 워너메이커(J. Wanamaker)는 신실한 신자요, 성공적인 사업가였다. 그의 성경 사랑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나이 84세 때, 사업가로서 60주년을 맞은 기념행사에서 기자가 물었다. ‘회장님이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무엇이었습니까?’ 질문이 끝나자마자 그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10살 때 최고의 투자를 한 적이 있지요. 그 때 나는 2달러 75센트를 주고 예쁜 가죽 성경 한 권을 구입했습니다.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러자 기자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성경만 구입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실천해야지요. 하나님을 신뢰하고 즐겁고 기쁘게 일하다보면 성공은 어느새 자신의 옆에 다가와 있게 됩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꿈을 품고 말씀의 가르침을 실천했더니 어느새 복이 자기 옆에 다가와 있었다는 것이다. 그를 명품으로 만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말씀은 그에게 복의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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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복의 통로다.
복이 따라다니는 인생이 되는 두 번째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은 복의 원천(씨앗)이고, 또한 통로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과 땅에 속한 기름진 복이 모두 말씀을 통해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본문은 복이 있는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모습인가를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는데, 이 역시 말씀과 깊은 관련이 있다. 금번에 새벽예배에서 시편을 시작하며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 복이 있는 사람은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3)는 것이다. 여기서 ‘의존성’과 ‘소속감’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나무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형통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즉 나무가 물이 마르지 않는 시냇가에 심겨져 있기에(거기에 의존되어 있고, 속해 있기에) 어떤 가뭄도 두려워하지 않고 철을 따라 푸른 잎과 꽃, 그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은 것이다. 반면 물이 없는 사막에 있는 나무는 잎도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열매도 맺을 수 없을뿐더러 생명도 유지할 수가 없다. 이는 그가 물이 없는 사막에 의존되어 있고, 거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막에도 식물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선인장이다. 그런데 사막에서 자란 식물의 특징은 온통 거친 가시로 덮여 있다. 원래는 이 가시들이 부드럽고 연한 잎이었는데, 물이 부족한 거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가시로 변한 것이다. 사막에서 살고 있는 식물이나 동물 대부분이 강한 독을 지니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누구(무엇)를 의존하고, 어디(누구)에 소속되어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결정한다. 사람은 한 그루 나무와 같다. 그런데 우리 신자는 생수(말씀)가 흐르는 은혜의 강가(교회)에 심어진 존재다. 그러니 신자는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 복이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은혜의 강가에 ‘심겨진 것’(교회에 다니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생수’(말씀)를 공급받아 더욱 든든하고 깊게 뿌리를 내려야만 한다. 아무리 극한 가뭄의 시련에도 메마르지 않고, 혹독한 폭풍의 고난에도 뽑히거나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다. 바로 그 비결이 2절 말씀이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렇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에게 생명과 안정, 형통함이 보장되고, 또한 든든하고 깊게 믿음의 뿌리를 내려서 악인의 꾀(가르침이나 교훈, 충고)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삶의 방식과 태도, 문화)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교제)에 앉지 않게 된다. 곧 말씀이 복의 원천이고, 또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의미를 확장하면 계1:3절의 말씀과 연결할 수 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1. 읽는 것
계1:3절의 말씀은 당시 유대교 회당과 초대교회 예배의 특징을 반영한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성경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개인들이 소지할 수도 없었다. 단지 회당이나 교회에서 양피지로 만든 두루마리 성경(그것도 구약의 일부분이나 복음서나 바울서신 등)을 소지하고 있다가 예배 때 성경 봉독자(유대교에서는 랍비)가 앞으로 나와서 성경을 읽고, 회중은 그 말씀을 들었다. 그래서 이 본문에서 ‘읽는 자’는 단수인데, ‘듣는 자’와 ‘지키는 자’는 복수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읽는 자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성경 봉독자가 아니라 성경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사람을 뜻한다. 즉 목회자와 교수(사), 전도자(선교사)를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열심히 가르치고 전파하는 사람에게 말씀은 복의 통로가 된다.
예기(禮記)에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함께 성장한다는 뜻’으로, 스승은 가르침을 통해 성장하고, 제자는 배움을 통해 자라나는 것이다. 실은 배우는 사람보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복이 있다. 그래서 ‘가르치는 것은 두 번 배우는 것이라’(요셉 쥐베르)고 말한다. 가르치기 위해서 배우고, 또한 가르침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침을 적극적인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자격이 있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확실한 배움을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을 사모하기 바란다. 이것이 복을 받고, 복을 누리는 비결이다.
2. 듣는 것
사람은 ‘말을 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말을 듣는 존재’다. 특히 우리는 피할 수 없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산다. 그런데 우리가 말을 들을 때(글을 읽고, 체험하는 것도 듣는 행위), 우리 귀에 들려지는 말은 결코 고막이나 울리고 마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말은 우리에게 들려질 때, 어떤 신비한 힘을 가지고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긍정적이고 좋은 말, 은혜로운 말을 들으면 힘이 생기고, 위로와 격려를 받는다. 하지만 부정적이고 나쁜 말, 악한 말을 들으면 불쾌하여 마음이 상하고, 심지어는 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부모, 좋은 스승, 좋은 친구나 지도자는 말을 가려서 한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다(롬10:17). 이는 말의 중요성과 결정적 영향력을 지적한 중대한 선언이다. 바울은 여기서 말씀을 듣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가를 말하고 있다. 사람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통하여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귀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들어야할 이유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부지런히 말씀을 들어야 영적으로 살아있는 건강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듣는 행위만 의미하지 않고 귀로 듣고, 배우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을 포함한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말씀은 복의 통로가 된다.
3. 지키는 것
주님은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반석위에 기초를 세우고 집을 짓는 것에 비유를 하셨다(마7:24). 집의 중요성은 기초에 있다. 아무리 겉이 화려고 값비싼 재료들로 만들어져 있어도 기초가 든든하지 못하면 허사가 되고 만다(27).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든든하고 건강한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다.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 듣고 배우고 깨닫는 것 자체도 복이지만 순종으로 이어질 때 구체적인 말씀의 복이 드러나게 된다. 기적이란 말씀에 대한 순종(실천)의 결과다. 말씀을 지켜 순종하면 기적은 일상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서 말씀이 복의 통로가 되게 하는 길은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다. 모세가 말씀에 순종했더니 홍해가 육지처럼 열리고, 반석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여호수아가 말씀에 순종했더니 여리고성이 저절로 무너져 내렸고, 나아만은 나병으로부터 치료를 받았다. 베드로는 만선의 기쁨을 경험했다. 이 모두가 말씀을 지켜 순종한 사람들이 경험했던 복이다.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말씀은 복의 통로로 역사하고, 그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저와 여러분도 그 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성경이 만든 사람
앞에서 소개한 워너메이커는 성공한 실업가였고 자선 사업가였다. 체신부 장관을 역임했고, 또한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세워 6천명이 넘는 부흥을 이루며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를 만든 장본인이다. 이와 같은 그의 삶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말씀이다. 그래서 그의 삶의 1번은 항상 하나님이었고, 단 한 번도 이 말씀을 떠난 적이 없었다. 이런 그의 삶을 반증해 준 사건이 장관직을 제의받았을 때다. 그 때 그는 매주일 자기 교회 주일학교를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면 장관직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4년 동안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워싱턴에서 교회가 있는 필라델피아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주일을 지켰다. 한번은 기자에게 ‘장관직이 주일학교교사직만도 못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장관직과 사업은 부업이지만 주일학교교사는 평생 해야 할 본업’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19살 때부터 교사가 되어 세상을 떠나는 85세 때까지, 무려 67년 동안 충성스럽게 교사직을 감당했다. 그 중 두 달을 제외하고는 주일학교 부장으로 봉사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필라델피아 시에 있는 모든 공공기관이 조기를 달았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대통령들이 조문을 보내왔고, 시의 모든 상점, 회사, 공장, 심지어 술집이나 영화관까지 모두 다 문을 닫았다. 1만 5천명이 넘는 조문객이 장례식장인 교회로 몰려들었다. 그는 너무 가난해서 학교라고는 겨우 2년 동안 다녔는데, 말씀을 붙잡고 실천했더니 이런 엄청난 성공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를 가리켜 ‘성경이 만든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없고 바빠서 못하고, 아는 것이 없어서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워너메이커만큼 바쁜 사람은 없고, 그보다 못 배운 사람도 없다. 단지 말씀에 대한 헌신과 말씀이 복의 통로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때문에 상황은 그보다 나으나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한 것이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아름다운 별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며, 잘 듣고 지켜서 순종하는 삶이 되자. 말씀이 복의 통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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