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시간이 변화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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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1,170회 작성일 21-12-11 09:39본문
불편한 시간이 변화의 시간입니다.
태아는 엄마의 배 속에서 인생에서 가장 평온한 시간을 보내면서 춥지도 뜨겁지도 않은 알맞은 온도에서 포근히 떠 있습니다. 게다가 먹을 것도 걱정이 없습니다. 엄마의 탯줄을 통하여 알맞게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아는 아마도 그곳에서 오래오래 살기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열 달이 되면 태아는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드디어 그 시간이 찾아오고, 온 힘을 다해 어둠의 터널을 지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낯선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또다시 유일한 영양공급원이던 탯줄마저 끊겨버립니다. 뱃속에서 누리던 모든 것이 사라졌으니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죽음의 경험을 통해 더 넓고,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즉, 죽음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탄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새로운 변화를 원한다면 스스로 안락하게 만들어놓은 기존의 생각이나 습관, 혹은 삶의 태도를 깨트려야 함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습관을 깨는 것, 편안한 안전지대를 넘어 위험을 감수하는 것, 안락을 포기하고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변화와 성장의 필수입니다. 편안함과 안전함의 유혹을 떨치고 엄습하는 불안을 견뎌야 변화와 성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불편한 시간이 변화의 시간이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우리를 가장 성장시켜주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불편하고 힘든 지금의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 상황도 결국은 우리에게 선한 결과를 안겨주리라 기대해 봅니다. 신앙생활도 다르지 않습니다. 현실의 안주는 편할지는 모르나 영적성장과 성숙의 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은 불편과 불안을 감수하는 끊임없는 자아파괴이고, 나아가 자기에 대한 사망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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