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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린 대로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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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447회 작성일 24-09-1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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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린 대로 행하리라.

14:26~35

2024. 9/15(성령강림 열여덟 번째 주일)

말대로 된다.

어느 주부의 간증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유일한 즐거움은 아이와 함께 주일, 수요일, 구역예배를 드리며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었다. 날로 믿음의 성장을 경험하며 잔잔한 평화를 누리던 중 우연히 여고동창을 만났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시부모에게 물려받은 빌딩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는 그녀를 반기며 각종 맛있는 요리를 파출부에게 만들어오게 했고, 늘 파출부의 손에 해주는 밥을 먹으며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집에 돌아온 후, 언제 친구처럼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사는 편안한 신세가 되어보냐고 남편에게 불평을 터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열이 나고 기침이 멎지 않아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다 결국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와 함께 병실에 있는데, 보호자 밥이 나왔다. 수저를 드는 순간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원하던 남이 해주는 밥을 이렇게 먹게 되는구나!’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병실을 감돌았다.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시행하리라.그녀는 깜짝 놀라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남과 비교하거나 불평의 말을 하지 않기로 주님께 약속했다.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말대로 된다. 평소 입버릇대로 된다. 그러니 그 사람의 입이 그의 미래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칭찬과 축복과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다. 좋은 말 은혜로운 말을 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지고,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행복해진다. 그러면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모두가 좋아진다. 말은 에너지. 좋은 말은 좋은에너지이고, 나쁜 말은 나쁜에너지이다. 좋은 에너지가 넘치면 나도 좋고, 남도 좋다. 은혜로운 말은 나에게도 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복이 된다. 나를 복되게, 이웃을 복되게 하는 것이 말에 있다. 복된 인생은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은 나쁜 말 악한 말 더러운 말을 일삼는 사람이다. 잘못된 말에 길들여진 사람이다.

 

우리를 지배하는 말

뇌 전문학자의 연구보고에 따르면 사람의 뇌세포는 230억 개인데, 98%가 말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의학계에서는 뇌 속에 있는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다스린다.’는 학설이 정설이 되었다. 한 마디로 말이 우리의 온 몸과 행동, 삶까지도 지배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신경과학자 움베르트 마트라는 우리가 말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우리의 인생을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아프다는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나았다는 긍정적인 말을 하면 몸이 말의 방향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어느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암환자에게 하루에 세 번 나는 깨끗하게 치료되었다. 난 다 나았다.’고 말하는 언어치료법을 권했다. 그랬더니 그 환자가 놀랍게도 3주 후에 완치되어 병원에서 퇴원했다.

 

어느 병원에서 죽어가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사람마다 죽기 전에 내는 숨소리가 있는데, 이 할아버지에게서 그 소리를 듣고 담당의사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들어보라고 하며 나갔다. 그러자 학생들이 청진기를 할아버지 가슴에 대고 들린다. 들린다.’고 한 마디씩 했다. 그런데 곧 죽으리라 여겼던 그 할아버지가 죽지 않고 도리어 회복되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의사가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할아버지가 대답하기를 자기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들린다. 들린다.’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삶의 의욕이 생겼다고 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 심지어 물이나 밥까지도 말의 영향을 받는다는 실험결과가 있다. 그러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18:21) 라는 말씀이 실감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잘못된 행동이나 삶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 말부터 바꿔야 한다. 말이 바뀌면 온 몸과 행동, 삶까지도 바뀌게 된다. 이는 야고보가 특히 강조한 내용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시행하리니(28)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복된 인생, 복을 나누는 인생이 되는 것은 우리의 말에 있다. 이를 본문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본문은 출애굽기에 나온 황금송아지 사건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약 12개월 정도 머물다 11일 만에 바란 광야에 있는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다. 그곳은 가나안의 문턱이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하기보다 자신들이 먼저 그 땅을 정탐해보기를 원했다.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였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도전이고, 약속의 땅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셨고, 열두 지파에서 대표 한 명씩 12명을 뽑아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탐지하도록 하셨다. 이렇게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두 가지 상반된 보고를 했다.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7,8). 그들은 신앙적이고 긍정적인 보고를 하였다.

 

그렇지만 나머지 10명은 달랐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내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13:31~33). 그들의 보고는 부정적이고, 불 신앙적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보고를 듣고 백성이 크게 낙담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집트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원망하며 분노를 터뜨렸다(2). 그러면서 지휘관을 새로 세워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자고 했다(4). 본문은 10명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28).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20세 이상은 그들의 말대로 40년 동안 광야를 배회하다가 그곳에서 소멸되어 죽으리라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 본서다(13~19장까지 내용).

 

말의 중생, 말의 회개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말은 신앙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말한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말은 곧 기도다. 축복이 되거나 저주가 된다. 내가 하는 말이 내 운명을 좌우한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들린 대로 행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12:36). 또한 영원히 사함 받지 못하는 죄가 있다고 하셨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다.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12:32). 이 죄는 결국 말로써 짓는 죄다. 깨끗하고 거룩한 입을 가져야 한다. 성경은 도처에서 악한 말을 금하고 있다. 더러운 말, 어리석은 말, 아첨하는 말, 망령되고 허탄한 말, 저주하는 말, 비방하는 말, 자랑하는 말, 다툼과 시비를 일으키는 말을 버려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을 때 입술의 부정을 탄식했다, 입이 더럽다고 통탄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스랍에게 제단의 핀 숯을 가져다 그의 입술에 대라고 명하셨다. 입을 지저라는 것이다. 그래서 입을 지진 것이다. 그러면서 선언하셨다.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6:7).

 

우리의 입을 지저야 한다. 말씀의 불, 기도의 불, 성령의 불로 지저야 한다.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야 한다. 말씀의 파수꾼, 기도의 파수꾼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다시는 부정한 말이나 악한 말, 무책임한 말, 불 신앙적인 말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도는 마음의 중생뿐 아니라 의 중생도 있어야 한다. 행위의 회개뿐 아니라 의 회개가 필요하다. 감사와 찬송, 칭찬과 격려, 덕스러운 말, 살리는 말, 경건한 말, 은혜로운 말을 해야 한다. 무의식중에도 혼미한 중에도 믿음의 간증이나 고백과 같은 말을 해야 한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도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며 축복의 말을 했다. 말이 곧 그 사람이라고 한 것처럼 성도됨은 그 말에서 나타난다. 이런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모두 들으신다. 심지어 우리의 심음까지도 들으신다. 그리고 들린 대로 행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내 말에 책임을 질 때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의 말에 소금을 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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