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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 마디를 만드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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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6회 작성일 26-06-1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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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 마디를 만드는 시간

19:2

2026. 6/14(성령강림 후 셋째 주일)

지금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가?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타고난 체력과 넘치는 열정이 있었다. 그는 가만히 있으면 뭐 하냐며 어디로든 열심히 뛰다 보면 길이 나온다면서 앞으로 맹렬하게 뛰어갔다. 반면 다른 한 사람은 그 자리에 잠시 멈추어 섰다. 그리고 배낭을 뒤져 나침반을 찾고, 높은 바위에 올라가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선을 살피며 방향을 잡고, 성공적으로 숲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무작정 뛰어갔던 첫 번째 사람은 숲을 빠져나오기는커녕, 맹수들이 사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식 없는 열정이 불러온 비극이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 트렌드도, 기술도, 정보도, 업무 처리도 속도가 곧 경쟁력인 시대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무엇이든 빨라야 인정받고, 남보다 뒤처지면 큰일 날 것 같은 불안감 속에 살아간다. 이를 심리학에선 포모 증후군’(FOMO Syndrome)이라고 부른다(자신만 흐름을 놓치고 있거나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는 두려움). 그러다 보니 많은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보다 얼마나 빨리 가는지에 정신을 쏟아붓는다. 물론 삶에서 열정도 속도도 중요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방향이다. 방향이 정확하면 신중하고 천천히 가도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러나 방향이 올바르지 않으면 빨리 열정적으로 달릴수록 목적지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본문은 이렇게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브레이크를 밟으시는 말씀이다.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무모한 열정과 조급함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다. 인생의 진정한 성공과 안전은 속도에 있지 않다. 바른 지식과 분별력에 있다.

 

무모한 열정은 화를 부른다.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여기서 소원은 인간의 열망, 열정,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고, ‘지식 없는 소원올바른 분별력이나 방향성이 결여된 채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원하는 맹목적이고 무모한 열정을 뜻한다. 물론 열정은 인생을 움직이는 좋은 에너지다. 주변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열정이다. 남다른 삶에 대한 열정과 일에 대한 열정,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이 삶의 성취 일의 성공을 이뤄낸다. 하지만 성경은 열정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고 말씀한다. ‘지식 없는 소원’(맹목적이고 무모한 열정)은 선하지 못하다고 말씀한다.

 

사실이 그렇다. 올바른 분별력이나 방향성이 결여된 채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원하는 무모한 열정은 오히려 독이 될 수가 있다. 한 페인트공이 건물 벽면에 페인트 작업을 맡았다. 그는 성실하고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어서, 무서운 속도로 페인트를 칠해 나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반나절 만에 건물 한 면을 완벽하게 칠한 그는 뿌듯한 마음으로 페인트 도구를 땅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본 그는 뒤늦게 절망했다. 자신이 페인트를 칠해야 할 건물은 바로 옆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주소를 확인하지 않고 일을 빨리 끝내겠다는 열심만 앞선 결과였다. 열심히 일한 노동과 에너지는 완전히 낭비되었고, 오히려 남의 건물을 훼손했으니 변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래도 이것은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다. 잘못된 지식이나 신념을 가진 지도자의 열정은 수많은 사람을 도탄에 빠뜨리게 된다. 1958, 중국의 마오쩌둥이 농촌을 시찰하던 중 참새가 곡식을 쪼아먹는 모습을 보고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며 소탕령을 내렸다. 국민은 농작물 수확을 늘리겠다는 소원을 품고, 온 나라의 참새를 거의 멸종시키다시피 잡았다. 그런데참새가 사라지자 천적이 없어진 메뚜기와 해충이 창궐하여 중국 전역의 농작물을 초토시켰다.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대기근이 발생했다(대약진 운동의 비극). 생태계에 대한 올바른 지식 없이,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려는 무모한 열정이 재앙을 부른 것이다. 그래서 본문은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다고 말씀한 것이다.

 

신앙생활에서는 특히 그렇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채 부르짖는 간절함, 영적 분별력 없는 맹목적이고 무모한 열심은 결국 자기만족이나 탐욕으로 변질되기 쉽다. 바울 사도는 당시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었다.’(10:2). 이는 바울 자신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씀이다. 그 역시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에 그랬다. 하나님께 대한 무모하고 맹목적인 열정이 주님을 죽게 했고, 주님을 핍박한 것이다. 나의열정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고 있지는 않은지, 올바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지 늘 살펴야 한다. 열정은 불과 같아서 잘 다스리면 주위를 밝히지만, 통제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조급하면 실족하기 쉽다.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발이 급하다.’라는 것은 충분히 생각하거나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지 않고, 행동부터 앞서는 조급한 모습을 말한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시야가 좁아진다. 조급해지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딱 바로 앞의 문제만 보게 된다. 이를 터널 시야(Tunnel Vision) 현상이라고 부르는데, 주변의 상황이나 다른 대안은 보지 못하고 눈앞의 문제에만 집중하게 된다. 거기에 매몰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 분별력이나 판단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잘못 가기 쉽고, 실수나 실패하기 쉽다. 생각을 해보라! 걸어갈 때와 달릴 때, 자동차로 시속 60100를 달릴 때 시야의 차이가 확연히 다르다. 고속으로 달릴수록 사고율이 높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해지면 눈앞의 이익이나 감정에 휘둘리게 되고, 결국 가야 할 올바른 길을 이탈하여 그릇된 길(죄의 길, 실패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노자의 도덕경에 조급함에 대한 이런 말이 나온다. ‘企者不立, 跨者不行’(기자불립, 과자불행). ‘발뒤꿈치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은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보폭을 너무 크게 하여 급하게 걷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한다.’ 남들보다 더 커 보이고 싶어서 까치발로 서 있는 사람(企者)이나, 빨리 가려고 가랑이가 찢어질 듯 큰 걸음으로 걷는 사람(跨者)은 결코 오래 설 수도 멀리 갈 수도 없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조급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안 된다는 뜻이다. 성경에 이런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브라함과 사라. 후사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조급하여’(발이 급하여)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고, 이는 역사적인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사울 왕 역시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제사를 지냈다가 왕위에서 폐위되는 비극을 맞이했다. 조급함은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덫이다. 그래서 토마스 아킴퍼스는 마귀는 늘 서두르게 만든다.’라고 했다. 아무튼 발이 급해지면 실족하게 된다. 멈춰 서서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라.

앞에서도 말했지만 빨리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방향이 중요하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알려면 잠시 멈추고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빨리 문화에 익숙해지면 멈춤을 포기낙오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달리기만 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 멈춤은 포기나 낙오가 아니다. 멈춤은 점검준비의 시간이다. 다음 발걸음을 위한 쉼표이자, 나를 지키는 방어선이다. , 인생의 마디를 만드는 시간이다. 그러므로급하게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어야 한다. 대신 말씀의 등불을 켜야 한다. 주님의 말씀이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기 때문이다(119:105). 캄캄한 밤길을 갈 때 등도 없이 무작정 뛰는 사람은 넘어질 수밖에 없다. 속도를 줄이고 말씀의 등을 발 앞에 비추어야 한다. 내 계획과 소원을 내려놓고, ‘주님, 제가 가는 이 길이 맞습니까?’라고 묻는 기도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이 내 소원을 이끌어 가게 해야 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가는 영적 여유를 회복해야 한다.

 

흔히 인생을 달리기에 비유한다. 하지만 성도의 인생은 달리기가 아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거룩한 동행이다. 남보다 조금 늦어지는 것 같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께서 지향하신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이다. 지식 없는 열정을 내려놓고, 조급한 발걸음을 멈추어 서자. 내 뜻보다 주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며, 한 걸음을 걷더라도 올바른 길을 걷는 복된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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