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의 섬이 아닌 다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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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2회 작성일 26-05-17 12:38본문
세상 속의 섬이 아닌 다리가 되자!
엡2:13~19
2026. 5/17. 11:00(청년 주일)
어느 은퇴 교사의 이야기
어느 교사가 은퇴한 후, 시골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는 작은 마당이 딸린 집을 구입하여 깨끗하게 수리한 다음 담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작은 벤치를 놓았다. 이를 본 이웃마다 처음엔 의아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가는 아이들이 그곳에 앉아 쉬고, 동네 사람도 잠시 다리를 쉬어갔다. 그는 그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렇게 담장(벽)을 허물고 벤치(다리)를 놓은 작은 선택이, 서먹했던 이웃을 하나로 묶는 사랑방이 되었다. 그는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담장을 세우면 내 앞마당만 보이지만, 다리를 놓으면 세상의 풍경이 들어온다.’ 담장은 ‘내 것’을 보호하기 위한 경계선이다. 그 경계가 높아질수록 내가 볼 수 있는 세계는 내가 가꾼 작은 정원에 갇히게 된다. 반면, 그것을 허물고 다리를 놓으면 타인의 세계와 연결되는 통로가 생긴다. 그때 비로소 ‘내 정원’ 너머에 있는 산과 강, 그리고 이웃의 삶이라는 장엄한 ‘세상의 풍경’이 나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나를 고립시키는 담장을 허물고 타인을 향해 작은 의자(다리) 하나를 놓을 때, 우리 삶은 비로소 메마른 섬에서 풍요로운 대륙으로 바뀌게 된다. 철강왕이라 불렸던 앤드류 카네기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연결’에서 찾았다. 그의 묘비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자기보다 더 탁월한 사람들을 곁에 모으는 법을 알았던 사람이 여기 잠들다.’ 그는 스스로 모든 일을 해내는 섬(독불장군)이 아니라, 재능 있는 사람을 서로 연결하고 그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통로(다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도 사업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많은 사람의 지혜를 잇는 다리가 되었기에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서로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는 삶’은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아름답고도 실천적인 소명이다. 신앙적 관점에서 다리는 단절된 곳을 잇고, 막힌 담을 허물고, 사람을 하나님과 이웃에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이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시다.
단절을 해결하신 ‘화목의 다리’
‘다리가 되어주신 예수님’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자 가장 감동적인 은유다.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께 도저히 다가갈 수 없었던 인류를 위해,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려 ‘생명의 다리’가 되어 주셨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고, 또한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그런데 죄가 들어와 그 관계를 깨뜨려 어떤 노력으로도 건널 수 없는 깊은 협곡이 생겼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59:2). 여기서 단절을 뜻하는 표현이 3번이나 나온다. 첫째가 ‘갈라놓았고.’ 이는 단순히 거리가 멀어진 것이 아니라 깊은 심연이 생겨 서로 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가 ‘얼굴을 가리어서.’ 이는 외면을 뜻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은 은혜와 복의 상징인데, 하나님께서 외면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차단된 영적인 고립을 의미한다. 셋째가 ‘듣지 않으시게.’ 이는 소통의 단절로,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공급이 끊긴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죄가 얼마나 심각하고 치명적인지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 심각한 문제를 단박에 해결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다. 본문은 이와 같은 주님의 삶을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주님은 우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의 다리가 되셨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13,14). ‘멀리 있던 존재’가 이전의 우리 모습이다(12). 이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담이 있어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였다. 이를 해결해 주신 분이 주님이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렇다면 주님께서 어떻게 이 일을 이루셨을까? ‘자기 육체로 허시고’,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이루셨다. 자신을 희생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가 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다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목의 다리가 되셨다. 죄는 하나님과의 사이만 멀어지게 한 것이 아니다. 사람과의 사이도 멀어지게 만들었다. 죄는 단순히 도덕적인 판단을 넘어, 관계의 역학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든다. 죄가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방식은 매우 정교하다. 먼저 내 안의 죄책감이 벽을 세운다. 스스로 상대의 눈을 피하게 되고, 진심 어린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관계에서 뒷걸음질 치게 만든다(내면적 단절). 그리고 다음으로 관계를 지탱하던 신뢰가 무너진다. 그 자리에 의심이 자리를 잡게 되고, 이 의심이 서로 사이의 거리를 무한정 넓혀 놓는다(관계적 단절). 마지막으로 사람들 곁에 머무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된다. 그들의 시선이 비난처럼 느껴져, 결국 스스로 관계를 끊고 고립을 선택하게 된다(사회적 단절). 그래서 모든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 역시 회복시켜 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이런 시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있을 때
예수님은 다리가 되시고
마음과 마음 사이에
거리가 있을 때
예수님은 길이 되시네.
화목의 다리로 부름받은 우리
주님은 우리의 화평이시다. 둘을 하나로 만들어 원수 된 것, 곧 막힌 담을 당신의 몸으로 무너뜨리셨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우리와 우리 사이에 화목이 일어나도록 다리가 되시고 길이 되셨다. 이런 은혜와 복을 먼저 받은 사람이 성도다. 그러므로 성도의 사명은 주님처럼 ‘화목의 다리’가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8,19).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주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직분이라는 말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우리가 머무는 가정, 직장, 공동체 속에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사명이라는 뜻이다. 보통 화목은 쌍방의 노력으로 이뤄지지만, 여기서 ‘화목’(카탈라게καταλλαγή)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먼저 손을 내밀어 이루신 사건으로, 예수님의 희생이라는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원수 관계를 화목의 관계로 완전히 되돌려 놓은 상태를 의미한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은 바로 이 놀라운 관계 회복의 소식을 세상에 전하고 연결하는 막중한 임무다. '화목의 다리'로 부름받은 우리의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단절된 세상에서 유일하게 건너갈 수 있는 소망의 길이 될 것을 기대하며 이 일에 더욱 정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섬이 아닌 다리가 되는 구체적인 실천적 태도
오늘은 청년 주일이다. 우리 청년들이 세상 속의 ‘섬’이 아니라 섬과 섬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설교를 준비하였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단절된 것들을 연결하는 화목의 다리, 곧 ‘피스메이커’(Peacemaker, εἰρηνοποιός)가 되는 것이다. 섬이 아닌 다리가 되기 위해 몇 가지 실천적인 내용을 소개하면, 우선, 잘 들어주는 것이다(경청).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 상대의 삶의 궤적을 들어줄 때, 고립된 ‘섬’ 사이에는 이해라는 소통의 통로가 생긴다. 다음은,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기다.어색함의 벽을 허무는 가장 쉬운 벽돌 한 장이 인사다. 인사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인사를 나누면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Oxytocin)이 분비되어 상대에 대한 경계심이 허물어진다. 그리고, 좋은 점을 말하는 것이다. 칭찬은 비판의 강물에 놓인 징검다리다. 비판과 정죄는 담장을 높이지만, 칭찬과 인사는 다리의 기초가 된다. 마지막으로, 기다려 주는 것이다. 관계에서 조급함보다 기다림이 진심을 끌어내는 방법으로, 신뢰와 배려를 키우는 핵심 요소다. 그래서 기다려 주는 것을 한 사람의 ‘미래’를 열어주는 마법이라고 말한다. 다리는 서두르지 않는다. 상대가 준비가 될 때까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그 과정에서 사랑과 신뢰의 다리가 만들어진다. 내가오늘 놓은 따뜻한 말 한마디의 다리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소망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성도는 담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특히 다음 세대인 청년은 섬이 아닌 다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은 물론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소망이 있고, 또한 소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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