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땅에서 피어난 소망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고난의 땅에서 피어난 소망

페이지 정보

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8회 작성일 26-03-22 15:12

본문

고난의 땅에서 피어난 소망

29:4~14

2026. 3/22. 11:00(사순절 다섯째 주일)

근거 없는 낙관주의

흔히 우리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중요한 맞는 말이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은 정신적·신체적 건강과 삶의 질 전반에 좋은 영향을 미친. 하지만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지 못한 이런 생각은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해가 된다. 이를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라고 한다. 이 말은 경영학자 짐 콜린스(Jim Collins)가 그의 책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제임스 스톡데일의 일화를 소개하며 널리 알려졌다.

 

미 해군 중령 제임스 스톡데일(James B. Stockdale)은 베트남 전쟁 중 포로가 되어 악명 높은 포로수용소에서 7년 반(1965~1973) 동안 생활하다가 석방이 되었다. 그곳에서 온갖 심리적 육체적 고문을 받으며, 말 그대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런 그가 끝까지 살아남아 석방이 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석방된 후,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회고했다. ‘곧 풀려날 거라고 섣불리 낙관한 동료들은 금세 좌절해 죽었다. 하지만 나는 쉽게 풀려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장기간 버텨야 한다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덕분에 이렇게 돌아올 수 있었다.’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며 버틴 그는 살아났지만 막연하게 상황을 낙관적으로 기대한 동료들은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전에는 석방될 거라 믿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부활절이 되면 석방될 거라, 부활절이 지나면 추수감사절 되기 전에 풀려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고 다시 크리스마스, 부활절, 추수감사절이 지나가자 반복되는 상실감에 결국 무너졌다. 이런 것을 희망고문이라 한다. 스톡데일은 냉정한 현실 인식을 강조했다. 짐 콜린스는 이를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했다. 막연히 잘 되겠지!’라는 식의 낙관론보다 눈앞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 낙관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일상을 살아내라(4~7).

본문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기 동족에게 보낸 선지자 예레미야의 편지다. 예레미야는 양방향으로 사역했다.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면 사역을 하고,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에게는 편지를 보내 문서로 사역했다. 아마 최초로 문서 사역을 한 사람이 예레미야일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은 물론 포로지에도 많은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 백성에게 거짓 평안과 거짓 희망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들은 유다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과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속히 돌아올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을 퍼뜨렸다. 예레미야가 선포한 내용과 완전히 반대다. 문제는 백성이 거짓 선지자의 말을 더 좋아했다는 점이다.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 자기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거도 없는 거짓 평안과 희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포로지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곧 돌아갈 것이란 희망에 부풀어 현실에 적응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막연히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예레미야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편지를 써서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게 보낸 사신들(엘라사와 그마랴) 편에 보냈다. 본문은 그 편지 일부분이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그들이 곧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10). 70년이 지나야 회복된다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의 주장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그곳에서 잘 적응하라는 것이다. , 집을 짓고, (전원)을 만들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번성하라고 했다.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5-6).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에 깊이 뿌리를 내리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7). 심지어 원수의 땅인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주변이 평안해야 나도 평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있는 그곳에서 복의 통로가 되라는 의미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을 부정하며 현실을 도피하기보다 그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일상을 성공적으로 살아가길 원하신다. 더 나아가 비록 적대적인 사람까지도 잘 되게 하는 복의 통로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심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다(11).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자기 동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소개한다. 포로 생활이 재앙처럼 보이지만 재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11). 고난은 재앙이 아니라 징계라는 포장지에 쌓인 선물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포장지에 쌓인 선물은 보지 못하고 징계라는 포장지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고난의 유익은 보지 못하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당시 유다 백성이 그랬다. 그러다 보니 고난이 없다는, 혹은 받아도 잠시라는 거짓 선지자의 거짓 평안과 희망에 솔깃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여기서 생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하샤바(מַחֲשָׁבָה)는 단순히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생각이 아니라 치밀한 설계’, ‘의도’, ‘목적’, ‘계획을 뜻한다. 그러므로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란 말씀은 너희를 향해 내가 세워둔 완벽한 마스터플랜이 있다.’라는 뜻이다.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다. 포로 생활 70년은 그들에게 징계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우상 숭배에서 돌이키고 정결하게 만드는 수술시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 속에 방치하시는 분이 아니다. 지금 겪는 어려움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재앙이 아니라 더 견고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공사기간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닿지 않을 당근을 흔드시는 분이 아니다. 이미 평안과 미래라는 목적지를 정해두고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는 분이시다.세상은 줄 마음도 없으면서 기대감만 부풀리지만,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의 평안(שָׁלוֹם)에 있다. , 온전한 회복과 완성에 있다.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에게 고생이나 근심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자와 긍휼로 선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 그래서 궁극적으로 샬롬에 이르게 한다. 고난 속에서도 멸망하지 않고 소망을 갖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고, 믿음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쓴 약을 먹이는 이유가 병을 고치기 위함인 것처럼, 하나님도 때로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 온전(샬롬)하게 만드시려는 거룩한 고집을 가지고 계신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고, 아는 사람이 성도다. 신앙생활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훈련 과정이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자!

철들다.’ 혹은 ‘철나다.’라는 말이 있다.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수 있는 힘 철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철이 들었다는 것은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식도 철없는 자식이 있고, 철든 자식이 있다. 철없는 자식은 늘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힘들게 하지만 철든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시원케 한다. 성도도 철든 성도가 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그 심정을 이해하고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나도 좋아하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나도 싫어하며,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나도 사랑하고,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것을 나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을 두는 것이 철난 성도의 태도이다. 유다는 이에 실패해서 바벨론에게 망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본심을 알려주며, 포로 생활이라는 고난의 시간을 하나님을 더 깊이, 가까이 만나는 기회로 삼아 고난의 땅에서 소망을 꽃을 피우라고 촉구한 것이다. 여러분 중에 막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막막한 상황은 끝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곳에서 일상을 회복하고, 더 깊이 기도하며, 예비하신 평안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철든 성도가 되기를 원하신다. 오늘도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내가 서 있는 이 자리, 여기가 곧 유배지일지라도 묵묵히 소망의 씨를 심어 낙원으로 만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930 / 1 page

설교말씀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