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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마주한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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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5회 작성일 26-04-0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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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마주한 생명

37:1~10

2026. 4/5. 11:00(부활주일)

아주 말랐더라!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 또 에스겔서를 살펴보려고 하는데, 에스겔서에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1~24장까지는 유다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고, 25~48장까지는 유다의 구원과 회복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고 본문은 유다의 회복과 구원의 말씀 중에 하나다. 구원의 메시지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영이 선지자 에스겔을 어느 골짜기로 인도하셨다. 그곳은 뼈가 가득한 골짜기였다. 뼈가 얼마나 많았는지, 골짜기 전체에 가득했다.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2). 한 마디로 대량 유골 현장이었다. 참으로 섬뜩한 광경이다. 온갖 신체 부위의 뼈가 골짜기 전체를 덮고 있었는데, 그 뼈들은 얼마나 오래 햇빛을 받았는지, 바짝 말라 있었다. 그래서 본문은 골짜기의 상태 또는 뼈의 상태를 두 마디 말한다.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이 환상은 당시 유다와 에스겔 선지자자 처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전혀 소망이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한 마디로 소망 부재를 의미한다. , 웃음도 순수함도 열정도 활력도 기쁨도 감사도 의욕도 의미도 꿈도 소망도 모두 사라져 버린 상태다. 실제로 전쟁으로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고, 다윗의 혈통인 왕(시드기야)이 그들의 눈앞에서 눈알이 꼽혀 짐승처럼 끌려와 이방 왕(바벨론 느부갓네살) 앞에서 무참히 살해당했다, 심지어 그들의 자랑이자 소망의 근거가 되었던 성전마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많을 만큼 철저하게 파괴가 되었다. 그리고 이국만리까지 사로잡혀 와서 살고 있는 그들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그들이 처한 상황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이곳으로 인도하여 이 끔찍한 광경을 보게 하셨다. 이곳을 회복의 시작, 곧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끝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1절부터 3절까지는 죽음이 지배했다면, 4절부터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된다. 반전의 역사가 시작이 된다, 끔찍한 광경에 놀란 선지자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 물으셨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3). 여기서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 이 말씀은 단순히 생사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직시하게 하는 말씀이다. 동시에 이런 상황과 현실에 대한 선지자의 태도와 고백을 듣기 위해서다. 사실 골짜기의 뼈들은 그냥 뼈가 아니라 아주 마른뼈들이었다. 생물학적으로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0%인 상태였다. 사람의 힘이나 세상의 방법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물음에 선지자가 이렇게 대답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 절망적인 광경을 보여주시면서 너희는 이제 끝났다고 하시지 않고 능히 살 수 있겠냐?’라고 물으신 것은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끝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신 것이다. 이에 선지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이는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한 대답이다. 물론선지자는 근거없는 낙관론에 사로잡혀 호기롭게, 살 수 있습니다.’라고 할 수도 있었고, 눈앞의 절망에 사로잡혀 아니요,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선지자는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에서 나온 고백이다. 이 고백은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완전히 내어드리는 결단이다. 어떤 불가능한 상황도생명의 주인이신 주님께 하시면 얼마든지 그것이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많지만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 단지 하나님의 의지가 중요하다. 마른 뼈가 살아나고 그대로 있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달린 일이다. 하나님께서 살리고자 하시면 살아나는 것이고, 원하지 않으시면 그대로 방치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고백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선지자의 이 대답 직후 하나님은 구체적인 회복 명령을 내리셨다(4~6). 그래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뼈들에게 명령했더니 뼈들이 서로 연결이 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차오르고 피부가 덮였다. 사방에 널브러진 뼈들이 사람의 모습이 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다가 생기가 들어가도록 명령했더니 그들이 살아서 일어나 큰 군대가 되었다. 바짝 마른 뼈들이 강력한 용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7~10).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이렇게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일어났다. ''는 생물학적으로 생명이 돌아올 수 없는 최종적인 상태를 뜻한다. 그러니 완전한 끝에서 새로운 시작이 시작된 것이다. 죽음의 골짜기를 승리의 군대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 환상은 나라를 잃고 먼 타국으로 끌려와서 완전히 절망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회복 메시지다.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회복되리라는 소망의 메시지다. 그리고 이것이 신약시대의 부활 신앙으로 이어지게 된다.

 

생명의 리부트(Reboot)

오늘은 부활주일이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날이다. 그래서 부활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 사건이다. 절망이 소망으로 바뀐 사건이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우리에게 끝이 끝이 아니다.’라는 가장 강력한 소망을 제공해 준다. 그러니 부활 신앙은 죽어서 천국 가는 티켓이 아니라 오늘을 천국처럼 살게 하는 엔진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실재이고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그 증거가 주님이시다. 물론 주님 자신에게 부활은 당연한 일이다. 신적인 존재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신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에겐 다르다. 부활은 인간의 가능성이 0%인 곳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다. 그래서 에스겔 마른 뼈 환상과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중요하다. 우리 인생이 아무리 바싹 마른 뼈로 가득한 골짜기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리부트 버튼(부활 신앙)이 눌리는 순간, 우리는 다시 일어설 뿐만 아니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군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마른 뼈와 같은 우리를 주님의 군사로 빚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절망의 골짜기에서 주저앉지 말고, 우리를 향해 불어오는 하나님의 생기를 향해 가슴을 펴자. 마른 뼈로 가득찬 절망의 골짜기와 같은 세상과 인생에게 부활의 소망과 생명, 능력을 증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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