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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세대를 향한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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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4회 작성일 26-03-1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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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세대를 향한 눈물

8:18~9:1

2026. 3/15. 11:00(사순절 넷째 주일)

함께 앉아 있어 주는 것

한 마을에 자식이 없는 늙은 부부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죽었다. 홀로된 남편은 깊은 슬픔에 빠졌고, 마을 사람들은 이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옆집에 사는 아이가 노인의 집 마당으로 쑥 들어가더니, 그의 무릎에 앉았다. 잠시 후 노인의 눈에서 눈물이 그치고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한참을 머물다 아이는 자기 집으로 돌아왔고, 이를 본 아이의 엄마가 물었다. ‘얘야, 할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해드렸니?’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냥 할아버지가 울고 계시길래 같이 있어 주려고 무릎에 앉아 있었어요.’ 위로는 화려한 말에 있지 않다. 상대방이 느끼는 고통의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주는 것, 마음껏 울 수 있도록 품을 내어주는 것, 마음을 다 토로할 수 있도록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다. 이 자체가 위로다. 이를 공감(共感)이라고 한다.

 

서양 속담에 나온 말이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평가하지 말라는 뜻이다. 과거 영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병에 걸려 대머리가 된 친구를 반 아이들이 놀렸다. 그때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을 혼내는 대신, 다음 날 본인의 머리를 다 밀고 대머리로 나타났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제 너희 친구는 혼자가 아니란다. 나도 똑같은 모습이니까!’ 그날 이후, 아이들은 그 친구를 놀리지 않았고, 오히려 친구의 아픔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었다. 악기 중에 거문고나 가야금은 옆에 있는 다른 악기가 특정 음을 내면,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미세하게 떨린다고 한다. 이를 공명현상이라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정서적 공명이라 부른다. 누군가 울고 있을 때 내 마음도 함께 우는 것, 내 영혼의 줄이 상대방의 슬픔과 같은 주파수에서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도 이렇게 공감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나온다.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21)

본문은 동족의 비극을 예견하고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이야기다. 예레미야는 기원전 7세기 초부터 6세기 말까지 활동했던 선지자다그때는 그의 조국 유다가 매우 위태로운 시절이었다2의 다윗이란 불렸던 선군 요시야가 갑자기 죽고 나라가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요시야가 죽고 불과 24만에 바벨론에게 망하여 성전은 파괴되고, 백성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국의 비참한 앞날을 예견한 그는 슬퍼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이런 그를 가리켜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른다. 본문도 그중 하나다.

 

2장부터 25장은 당시 유다의 죄와 그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내용인데, 12편의 설교로 되어 있다. 본문은 7장부터 시작된 유명한 성전설교 일부분이다. 바벨론 침략으로 유다가 멸망 직전에 이른 상황에서, 선지자는 다가올 참혹한 파멸을 예견하며 겪는 극심한 심적 고통과 탄식을 그린 애가’(Lament). 여기서 선지자는 하나님을 떠난 백성을 향한 애절한 슬픔을 고백하고 있다자기 동족이 당할 고통과 슬픔을 마치 자신의 고통과 슬픔처럼 야긴 것이다. 이를 가리켜 공감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기서 선지자가 흘린 눈물은 공감의 눈물이고, 그의 고통은 공감의 고통인 것이다. 물론 이는 예레미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예언자가 그랬다. 특별했던 사람이 예레미야였다. 그는 18절에서 슬프다.’라고 호소한다. 그 슬픔이 지나쳐서 자신의 마음이 병들었다고 했다. 그는 유다의 죄와 그 죄로 인한 심판을 신랄하게 외쳤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심판을 당할 백성보다 더 아파했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21). 백성의 고통을 구경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함께 아파하는 눈물 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영적 언어. 상처 입은 사람을 향한 첫걸음은 그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깊은 공감에서 시작된다.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22)

세상은 강한 힘이나 논리가 변화를 만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은 ‘함께 우는 한 사람의 힘을 보여준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당장 멸망을 막지는 못했지만, 훗날 포로로 끌려간 백성이 절망 속에서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소중한 회복의 씨앗이 되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눈물은 공감뿐만 아니라 또한 안타까움의 눈물이었다. 사실 유다는 이와 같은 비극을 얼마든지 막을 수가 있었다. 하나님은 유다가 망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수많은 예언자를 보내 회복의 길을 제시했었다. 그런데도 유다는 고집스럽게 하나님이 아닌 다른 나라를 의지했다. 하나님께서 극도로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고 따랐다. 그러다가 결국 골든타임을 놓쳐이런 비극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비극을 고집스럽게 불순종의 길을 걷다가 자초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선지자는 너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돌이키라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그것은 무력한 사랑의 절규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매국노라 비난하고 조롱하며 죽이려고 했다. 때문에 안타까움의 눈물을 쏟아내게 된 것이다.

 

22절에 이와 같은 선지자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상처를 고칠 약도 있고, 치료할 의사도 있는데, 왜 치료를 받지 못하냐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외침이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 고산지대에 위치한 갓 지파의 성읍으로 유향(乳香, balm)의 주산지다. 유향은 유향나무에서 진액을 짜서 만든 것으로, 진통제나 치료제로 사용되는 약재다. 길르앗의 유향(Balm of Gilead)은 매우 유명해서 이집트 등 주변 나라로 수출할 정도였다. 또한 길르앗에는 유향을 잘 사용해서 질병을 치료하는 용한 의사도 많이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병이 들면 길르앗을 찾았다. 선지자는 이를 통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이 영적 질병을 치료할 약과 방법을 다 가지고 계신 참 길르앗이신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 그래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을 탄식한 것이다. 살길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 생명의 길을 거부하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백성의 어리석음을 보며 선지자는 가슴을 치며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라.’(9:1)

예레미야의 눈물은 우리에게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사실 비판하고 돌아서면 그만이지만, 공감의 사람은 끝까지 안타까워하며 그 곁을 지킨다. 이런 공감과 안타까움은 결국 중보기도의 동력이 되고, 사명이 된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9:1). 성경 전체를 통틀어 슬픔의 극치를 가장 문학적이고도 처절하게 묘사한 구절 중 하나다. 여기서 선지자는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라고 말한다. 이는 쏟아낼 눈물이 부족해서 슬픔을 다 표현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 온몸이 눈물이 되어 녹아내려도 부족하다는 무한한 슬픔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슬퍼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백성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며 밤낮으로 울며 기도하겠다고 결심한다. 기도가 멈추지 않는 눈물의 샘이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백성을 위한 간절한 중보기도를 다짐한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눈물밖에 없을 때, 그 눈물은 하나님을 움직이는 가장 큰 호소가 된다. 천국문은 기도에 대해선 닫혀 있어도 눈물에 대해선 열린다는 말이 있다. 기도보다 더 센 것이 눈물이라 말인데, 눈물의 기도는 얼마나 강력할까! 아무튼 울지 않고 주님을 사랑한 사람, 주님이 맡기신 사역을 감당한 사람은 없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예레미야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인 자기 동족을 위해 염려하고 책임을 느끼며 심지어 밤낮으로 울었다. 그들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하였다. 혹시 지금 여러분 주변에 이런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다. 예레미야처럼 공감과 안타까움의 눈물, 특히 눈물의 기도를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 땅으로 흐르게 하는 회복의 통로. 성도는 바로 눈물의 사람이다. 이런 우리의 눈물은 상처 입은 세대를 살리는 마중물이 될 것이고 회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상처 입은 세대를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울어줄 중보자 한 사람이 필요한 시대다. 저와 여러분이 그 한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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