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은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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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3,695회 작성일 24-02-04 14:30본문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오지 않는다.
창26:23~25
2024. 2/4. 11:00
축복의 주인공이 되려면
어떤 부자가 있었다. 그는 많은 돈 덕분에 80세가 될 때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그런데도 더 살고 싶은 마음에, 어느 날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 저 돈 많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았는데, 좀 더 살고 싶어요. 재산 반을 떼어드릴 테니 좀 더 살게 해 주세요.’ 그의 말에 하나님께서 반색을 하시며 말씀하셨다. ‘만일 네가 재산 전부를 주겠다고 했다면 2천년을 살게 했을 텐데 재산 반을 주겠다고 했으니 나도 반을 잘라서 천년을 더 살게 해주마.’ 이 말을 듣고 부자는 너무 좋았다. 그래서 동네 사람을 불러모아놓고 자기가 천년을 더 살게 되었다며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그 다음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다. 이를 본 부자의 아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따졌다. ‘하나님, 하나님이면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죠. 약속을 지켜야죠. 천년을 약속해놓고 하루 만에 불러가시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웃으시면서 대답하셨다. ‘이놈아, 성경을 봐라. 내게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다.’ 인간의 헛된 야망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다. 동시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거두시면 속수무책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94년도 심한 가뭄이 우리나라를 휩쓴 적이 있다. 온 국민이 가뭄극복을 위해 일어났으나 역부족이었다. 한 해 농사 다 망친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그러자 4,500만이 해결하지 못한 일을 단 30분의 비가 해결했다. 그 다음날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어제 내린 비는 5조원의 가치가 있었다.’ 하나님은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5조원을 내리시는 분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거두시고, 하나님께서 닫으시면 우리의 어떤 노력도 물거품이 된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면 단박에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실 이보 더 큰 복, 더 중요한 복이 없다. 능력도 없고 보잘 것 없는 나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이 도우시면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의 특징
본문의 주인공 이삭의 삶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비슷한 일들을 겪게 된다(창26:1~11).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과 같은 행동을 보였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풍요의 땅 이집트로 이주를 하려고 했으나 하나님께서 막으셔서 이집트로 가는 것은 멈췄다(1,2). 대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블레셋 땅 그랄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6). 하지만 이방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은 아브라함과 똑 같다(7). 부모가 자식 앞에서 잘 살아야 하고, 본을 보이며 따라오게 하는 삶을 살아야함을 점감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의 나쁜 전철을 밟게 된다.
창26장은 이삭이 가나안 땅의 극심한 흉년으로 그랄 지역에 머물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의 노정을 보여주고 있다. 기간이 얼마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8) 힘든 여정이었다. 흉년을 겪으면서, 목축이 생업이었던 그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농사일을 해야 했고, 아내로 인하여 목숨을 잃을까 노심초사해야 했고, 그 지역 사람들의 시기로 강제추방까지 당했다(14,15).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쫓아와서 행패를 부렸다(15,18,20). 이런 많은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로와 복 또한 그에게 계속 따라다녔다.
백배의 성공
우선, 이삭이 경험했던 복은 농사를 지어 백배의 수확을 얻은 것이다(12). 농사에 대해서 일도 모르는 그가 농사로 잔뼈가 굵은 농사 전문가 그랄 지역 사람보다 백배의 수확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12b) 라는 표현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초보 농사꾼이 베타랑 농사꾼보다 백배의 수확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 일로 그가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어 그 지역 사람이 시기를 할 정도로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았다.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14,15). 사촌이 논사면 배 아픈 것은 한국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심보다. 오래 전부터 그 땅에 정착하여 농사에 이력이 난 그랄 사람이 배가 아팠다. 자기들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비를 걸고, 급기야는 추방까지 시켰다.
그랄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이 거의 이와 같다. 성도도 마찬가지다. 누가 은혜를 받고 복을 받으면 어떻게 이런 복을 받고 은혜를 받았는지를 살펴서 본받을 생각보다 시기를 한다. 이런 사람은 결코 잘 될 수가 없다. 성공한 사람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본받으려고 애를 쓴다. 로마인이 지성이나 체력, 기술과 경제력에 있어서 인류가 되지 못했지만 제국을 건설하여 천 년 동안 번영시킬 수 있었던 힘을 포용력과 수용성, 그리고 개방성이라고 한다. 특히 로마인은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면 금방 따라하는 개방성과 수용력이 무척 탁월했다고 한다. 자기 것만 고집하지 않고 남의 장점을 수용하여 내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 더욱 탁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간 시기하는 사람보다는 시기를 받는 사람이 낫고, 시기를 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욱 좋다. 이삭은 어려운 시기에게 하나님의 복을 받아 주변 사람의 시기를 받을 만큼 크게 성공했다.
넓은 곳으로 인도
다음으로, 이삭이 경험했던 복은 넓은 장소로 인도를 받은 것이다(22). 그랄 사람들은 이삭을 시기하여 추방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훼방을 놓았다. 어디에서든지 물은 사람이나 가죽이 살아가는 데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가나안은 물이 부족하여 물을 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이를 위해 우물을 파서 물을 확보했다. 그래서 창세기에서 선조들의 우물을 판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쫓겨난 이삭은 그랄 골짜기에 처소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우물을 팠다. 그런데 그곳으로 그랄 사람들이 찾아와 우물을 메워버렸다. 그래서 이삭은 물을 찾아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우물을 파고 거주했는데, 그곳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 여기서 3번이란 단순히 숫자 3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이런 일이 반복된 것을 강조한 표현이다. 그리고 도달한 곳이 ‘르호봇’이다(22). 이는 ‘넓은 장소’란 뜻으로, 그랄 사람의 행패가 그친 곳이기도 하다.
장비를 갖추지 않고 우물을 파는 일은 오늘날도 쉽지 않는 일이다. 겨우 돌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땅을 파서 물을 구했던 이삭의 시대에는 우물파기는 대공사였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물이 흔하여 아무 곳이 파면 물이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힘들었다. 그런 우물을 파놓으면 메워버리고 파놓으면 메워버리고를 반복하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 게다가 힘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시비에 휘말려 다투지 않고 양보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을 반복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툴 필요가 없는 넓은 장소로 인도해주셨다. 여기서 넓은 곳이란 단순히 장소가 넓다는 의미를 넘어 시비와 다툼이 사라진 ‘안전지대’를 의미한다. 즉, 그랄 사람이 더 이상 넘볼 수 없는 안전지대로 인도하셨고, 그 안전지대에 두셨다는 것이다. 싸우자고 덤벼드는 사람들로부터 지켜주시고, 위험요소까지 제거해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려면
이삭은 위기의 시대를 지나면서도 하나님의 복을 경험했다. 그것도 백배나 받고, 안전지대까지 확보하였다. 물론 이 모든 일이 한꺼번에 되지는 않았다. 여러 위험한 상황을 겪으면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오지는 않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무튼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삭은 좋은 본보기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이삭처럼 복을 누릴 수 있을까? 그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이 복을 주셨기 때문이고(12), 하나님이 이런 복을 주신 것은 그랄 왕 아비멜렉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28), 곧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 대하여 깨어 있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흉년으로 이삭이 이집트로 내려가고자 그 길목인 그랄 지역에 도착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이에 순종하여 그랄 지역에 머물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께 대하여 깨어있었기 때문이다. 즉,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종이 신부감을 구하러갔을 때 빈들에서 홀로 기도하였고(24:63),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했을 때도 기도했다(25:21). 또한, 그는 ‘예배의 사람’이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먼저 재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장막을 치고, 우물을 팠다. ‘이삭이 그곳에서 재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25). 그의 삶에서 1번은 하나님이시고, 예배였다는 뜻이다. 이 말은 그가 하나님을 그만큼 존중히 여겼다는 뜻이고, 동시에 하나님께 대하여 늘 깨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다들 힘들고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그는 백배의 수확을 얻어 거부가 되었다. 적이 더 이상 넘볼 수 없는 안전지대를 확보하였다. 심지어는 그를 추방하여 괴롭혔던 사람들이 먼저 찾아와 화해를 요청하여 평화의 언약을 맺었다. 모두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얻게 된 복이다. 우리도 이삭처럼 이런 복의 주인공이 되자! 그러기 위해선 항상 기도에 깨어있고, 예배에 깨어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과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M_RF7_Xe0Sc 1264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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