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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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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7,401회 작성일 23-01-0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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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마음

3:14~19

2023. 1/8. 11:00

마인드 세이프(Mind-safe)  

흔히 일상에서 마음이 다쳤다.’, 마음을 준다.’는 등의 표현을 한다신체는 아니지만 마음이 상한 것을 다치다.’고 말하고, 물건은 아니지만 마음을 열 때 ‘주다.’고 말한다. 탈무드는 ‘마음의 문은 입, 마음의 창은 귀라고 한다. 이러한 표현을 보면, 마음은 몸과 같이 사람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약사이자 심리학자 에밀쿠에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두 그룹으로 나눠 약을 줬다. A그룹은 통증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하는 약을, B그룹은 강한 진통제를 주었다. 시간이 흐른 뒤두 그룹에 통증을 느끼는 강도를 물었다통증을 더 강하게 느끼는 약을 먹은 A그룹은 낮은 수치에서도 통증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왔고, B그룹은 현저한 통증완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두 그룹이 먹은 것은 똑같은 비타민이었다. 실험결과 의학적 기능이 전혀 없는 약품을 복용했는데도 약의 효력을 경험한 것이다. 이런 현상을 하버드 의대 하버트 벤슨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약의 효과 때문이 아니라 약의 효과에 대한 믿음 때문에 치료가 된 것이다.’ 이를 가리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고 한다.

 

 

긍정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긍정심리학이란 3년 이상 우울증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해왔던 유대인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 Seligman)이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다. 프로이드 이후 그 동안 심리학이 부정적인 측면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점을 반성하면서 긍정심리학이 탄생했다, 마틴 셀리그먼은 부정적 감정보다 긍정적인 감정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파악하고자 했다우리는 흔히 반복된 좌절경험으로 무기력에 빠진다.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나는 무엇을 해도 안 돼, 지금까지 내 삶이 그랬거든!’ 하고 말하면서 좌절하고 낙심한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도 긍정적 경험을 반복하면 무기력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높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긍정적인 감정, 긍정적인 태도, 긍정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실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활기찬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수녀들은 90%85세까지 장수한 반면 무미건조한 수도원에서 지낸 수녀들 중 85세까지 산 사람은 34%에 불과했다. 긍정적인 조건(환경)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이처럼 플라시보 효과나 긍정심리학의 공통점은 바로 마음가짐 중요성이다.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부정적인 마음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의 단점보다 장점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뿐만 아니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항상 긍정적인 마음과 태도로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그것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마음생긴 대로

참으로 마음이 중요하다. 마음생긴 대로 생각하고마음생긴 대로 남을 본다마음생긴 대로 행동도 한다사실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들리는 것이 없다이 자리에 여러분이 앉아있지만 마음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들리기도 하고 들리지 않기도 하고, 이렇게 듣기도 하고, 저렇게 듣기도 하고, 이렇게 깨닫기도 하고, 정반대로 깨닫기도 한다마음가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그러니 중요한 것이 마음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다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16:).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느 용사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이다그렇다문제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mind control). 그렇다면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느냐? 이에 대한 대답에 따라 기독교와 현대 심리학, 혹은 기독교와 타종교가 갈린다. 기독교를 제외한 심리학이나 타종교의 공통점은 마음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무척 강조한다.

 

 

마음대로 안 되는 마음

그렇지만 우리 기독교의 대답은, 내 마음 내가 다스릴 수 없다.’ 흔히 우리는 내 마음 나도 모른다고 말한다. 모르는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이것을 인정하면서부터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가 있다이것을 모르니까 자꾸 헛소리하고, 천지분간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성경에 그 예가 나온다.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신 후 폭탄선언을 하셨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26:31). 그러자 베드로 말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33). 베드로가 이렇게 장담을 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주님을 부인한 것도 모자라 저주까지 했다. 그것도 세 번이나!

 

 

그 후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 그리고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보고에게 주님의 심정을 말씀하시면서 깨어서 기도하라고 당부하시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도하셨다. 그리고 와서 보니 그들이 졸며 자고 있었다죽일지언정 주님과 함께 하겠다고 장담했던 자들이다. 그런데 주님과 함께 깨어서 기도도 하지 못했다. 이런 그들을 보시고 주님이 말씀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26:41).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몸이 너무 피곤해서 잠을 이기지 못해 기도하지 못한 것이라고 뜻이다. 정말 그랬을까? 그들의 마음이 기도를 원했을까정말 마음이 원했다면 어떻게 잠이 오겠는가정말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면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시는 주님을 두고 잠이 오겠는가어쩌다가 돈 몇 푼만 잃어도 잠이 안 오는데, 기분 나쁜 전화 한 통만 받아도 잠이 안와서 전전긍긍한데, 지금 잠이 올 상황인가그런데 그들은 잤다깨어서 기도하지 못했다그들에겐 원하는 마음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모습을 긍휼히 여겨서 하신 말씀이다. 사실 인간은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도 모르는 존재다. 왜 후회를 하는가? 나름 자기 원대로 살아놓고! 살고 보니 그것이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어서 후회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마땅히 빌바도 알지 못하는 존재’(8:26)라고 한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지도 못하지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존재가 인간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 누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 원함도 모르고, 원함이 있어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힘도 없는 내 마음을 누가 다스릴 수 있을까? 이 문제를 두고 가장 심각하게 고민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바울이다. 그는 로마서에서 마치 청개구리처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하여 이렇게 외친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19,24). 그리고 이어서 제시되고 있는 것이 성령님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성령을 통해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바 선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고백이고 선언이다.

 

 

본문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다. 본문은 기도의 대상(14,15), 기도의 내용(16~18), 그리고 기도의 목적(19)으로 되어 있다. 우선 기도의 목적으로,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19). 이는 모든 성도의 소망이고, 또한 궁극적인 목표다. 이를 위해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17), 영적 지식이 충실하고, 지식을 능가하는 사랑을 가진(18) 속사람이 강건해진 성숙한 성도가 되는 것(16)이다. 여기서 속사람은 곧 마음이다. 주님을 모신 마음, 영적 지식이 충실한 마음, 지식을 능가하는 사랑을 가진 마음이다. 이 마음이 강건해진 성숙한 성도, 이것이 기도의 내용이다. 그러면 어떻게, 무엇으로 마음의 강건을 이룰 수 있을까?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아’(16a).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마음에 모시게 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 지식이 마음에 충실해지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식을 능가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이 관건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길은 오직 성령으로,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마음을 주장할 때,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성령의 소욕에 따라 심령이 거룩하게 된다. 열매를 맺게 된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어두운 과거, 나약함, 켜켜이 쌓인 삶의 문제를 이기고 오직 주님의 사랑과 그 은혜에 매여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다.

 

 

애타게 부르짖어야 할 그것

워치만 니(Watchman Nee)라는 중국의 유명한 신앙인의 간증이다. 그는 20대에 중한 병을 얻어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 심각한 문제를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던 중 깜박 잠이 들었는데, 그동안 꿈을 꾸었다고 한다. 자신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난데없이 큰 바위가 강 중앙에 나타나 배가 지나갈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답답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서 바위가 강물에 잠기고 그 위로 무사히 배가 지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그는 자신의 무릎을 쳤다. 문제가 아무리 바위처럼 산처럼 크고 많아도 주님의 은혜에 잠기면 거뜬히 넘어설 수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것이다.

 

 

살다보면 인생이란 항로에서 뜻하지 않는 바위들을 만나고, 험준한 산과 깊은 골짜기를 만나게 된다. 이 모든 장애물을 안전하게 넘어서려면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부어지는 충만한 은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능하다. 지난 송구영신 예배에서 활동으로 신년도에 가지고 싶은 3개의 수식어를 선택하고, 선택 이유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3개를 신년도에 애타게 부르짖어야 할 것 기도제목으로 삼자고 했다. 그런데 모든 지체들이 선택한 3개는 결국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성령충만이다. 성령충만이 모든 수식어를 다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신앙생활도, 지혜로운 직장생활도, 낭만적인 가정생활도 성령충만으로 가능하다. 함께, 다시 새롭게주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소망하며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도, 다시 새롭게 사랑하고, 섬기고, 예배하는 것도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애타게, 간절하고 절박하게, 절실하게 부르짖어야 할 것은 성령으로 충만함이다. 성령의 충만을 위해 간절히 절실하고 절박하게 애가 타도록 부르짖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성령님을 인정하고, 성령님을 환영하고, 사랑하고, 경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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