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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두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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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483회 작성일 25-03-16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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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의 두 기둥

왕상7:13~22

2025. 3/16 11:00

하늘을 날게 된 청개구리

몽골민담에 나온 이야기다. 큰 가뭄이 들었다. 청개구리가 살던 작은 호수도 며칠 만 있으면 바짝 말라버릴 것 같았다. 이때 기러기 두 마리가 날아와 청개구리 옆에 앉았다. 청개구리는 기러기에게 큰 호수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여기 막대기를 줄 테니, 당신들이 각각 양쪽을 물고 날아가면 됩니다. 저는 중간에서 이 막대기를 물고 있을게요.’ 기러기는 청개구리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두 마리의 기러기가 막대기로 청개구리를 데리고 가자, 다른 개구리들이 이 광경을 보고 소리를 쳤다. ‘머리도 좋네! 누가 저런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지?’ 자기 자랑하기를 좋아하던 청개구리는 입이 근질거렸다. 그러자 다른 한 개구리가 말했다. ‘아마 기러기가 저런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을 거야.’ 그러자 여기저기서 기러기의 지혜를 칭찬하는 소리가 자자했다. 그때 이 청개구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개굴개굴. 이 방법은 내가 생각해 낸 것이에요.’ 순간 청개구리는 땅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랑하고 싶어 한다. 이것을 인정의 욕구라고 한다. 자랑하고 싶다는 것은 곧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과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각인을 시키고 싶은 것이다. 철학자 니체는 자랑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인간이 자신을 자랑하고, 스스로 높이려는 욕구가 결국 더 나은 존재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본 것이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자랑을 인간의 미덕에서 벗어난 행위로 여겼다. 자랑을 통해 느끼는 일시적인 만족을 덧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성경도 같은 생각이다. 자랑은 곧 교만을 부르게 되고, 그 교만은 죄로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랑은 은혜를 잊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위 민담에서 청개구리가 자신을 자랑하는 순간 막대기의 양쪽 끝을 물고 자신을 날게 한 기러기의 은혜는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자랑의 문제다. 우리는 하나님은 물론이고 주변의 많은 존재들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사실 우리는 모든 존재에게 빚지고 산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순간 이 모든 은혜는 쓸데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타락과 범죄는 은혜를 잊는 순간 시작된다. 솔로몬은 이에 대한 안전정치를 만들었다. 그것이 곧 본문이다.

 

 

성막에 없는 것

이스라엘 통일왕국 시대 마지막 왕이었던 솔로몬에게는 두 개의 트레이드 마크가 있다. 하나는 지혜이고, 다른 하나는 성전건축이다. 성전건축은 또한 그의 중요한 업적이기도 하다. 그가 이스라엘 왕으로 즉위한 4년에 시작하여 7년 반에 걸쳐 153,000명이 동원되어 완공한 거대한 사업이었다. 성전은 오랜 성경역사 동안 하나님의 지상 임재 장소요, 거룩한 통치의 핵심으로 간주되었다시내 산 언약 체결 후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졌던 성막(이동식 임시 성소)의 역사는 다윗 때까지(500년 동안) 지속되다가 솔로몬 때에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에 따라 견고한 예배처소인 성전이 건축되었다.

 

 

솔로몬 성전은 광야에서 모세에 의해 만들어졌던 성막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크기(성막은 약 17, 성전은 약 75평으로 4.5배 정도)와 사용된 재료(성막은 합판과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었으나 성전은 백향목과 대리석으로 만듬)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성전에는 성막에 없었던 것이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성전 현관(주랑) 앞에 세워진 거대한 두 개의 놋 기둥이다. 솔로몬이 두로출신 놋 기술자 히람을 통해 만든 것으로, 높이가 9m 둘레가 6m의 커다란 기둥인데, 그물과 사슬 모양을 두르고 백합 모양과 석류 이백 개를 두른 매우 인상적인 조형물이다. 원래 기둥의 쓰임은 지탱과 하중을 견디는 것이다. 하지만 이 놋으로 만든 두 기둥은 그냥 성전 현관 앞에 있었다.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고, 하중을 견디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이것은 일종의 조형물이다. 우리나라 건축법에 따르면, 대통령령으로 일정한 규모의 건축물 앞에 조형물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조형물은 건물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의 철학이나 해당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나타내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건물의 정체성을 전달한다. 독특한 조형물은 건물 자체와 함께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특히 방문객에게는 쉽게 기억되고 인지될 수 있어, 장소의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솔로몬이 성전 앞에 세운 두 놋 기둥도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야긴과 보아스

솔로몬 성전 현관 앞에 세워진 두 놋 기둥은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의 신앙고백이 담긴 조형물이다. 솔로몬이 이 조형물을 만들어 세우고, 거기에 각각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솔로몬은 오른쪽 기둥을 야긴(יָכִין)이라 하고, 왼쪽 기둥을 보아스(בֹּעַז)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이름이 가진 뜻이다. 야긴은 그가 세우신다.’(He establishes)는 뜻이고보아스는 그 안에 능력이 있다.’(In Him is strength)는 뜻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는 솔로몬의 신앙고백이 담긴 상징물이다. ‘그가 세우신다.’는 뜻을 가진 야긴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이가 하나님, 성전을 세우시는 이도 하나님(, 아버지 다윗에게도 허락하시지 않은 성전건축을 그에게 하도록 하신 이도 하나님), 왕국(나라)을 세우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다. 그리고 그 안에 능력이 있다.’는 뜻의 보아스는 능력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 능력은 상황이나 조건, 무기나 군마, 군대의 힘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이다. , 사람의 지력, 체력, 혹은 경제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삶의 주인 되심을 고백한 것이다. 이런 고백을 담아, 그리고 성전을 들고 날 때마다 이런 고백을 하기 위해, 더 나아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진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이런 조형물을 만들어 세운 것이다. ,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믿음의 고백을 담은 것이다. 한 마디로 은혜로운 삶, 감사의 삶을 잊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는 단지 솔로몬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다. 이 성전을 바라보는 사람, 그리고 이 성전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자신의 삶과 자녀와 가정과 일터를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그 세우시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다. 고백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솔로몬도 이스라엘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 고백한 대로 살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실 고백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삶이다. 말이란 삶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헛소리가 되는 것이다. 솔로몬은 이 성전을 세우고 30년도 못 되어 이런 하나님을 잊고 타락의 길을 걸었다. 그래서 그가 죽은 다음 나라가 둘로 나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다. 350년 후 두 기둥은 땅바닥에 거대한 먼지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그 영광스러운 성전은 파괴되어 잿더미가 되었고, 그 두 기둥은 바벨론으로 실려 갔다. 나라가 바벨론에게 망하고 성전도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긴과 보아스는 그들의 눈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들이 능력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잊은 결과다. 솔로몬이 이렇게까지 안전장치를 해놓고 이를 지키지 못한 것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지, 유혹과 범죄에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같은 길을 걷지 않으려면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주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늘 살펴야 한다.

 

 

우리의 야긴과 보아스

비록 우리는 성전시대를 살고 있지 않지만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는 고백으로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또한 이 사실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솔로몬 성전 현관 앞에 세워진 두 놋 기둥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동시에 굳은 각오를 해야 한다. 먼저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처럼 빚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울 수 있고, 그래서 그 능력이 담길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나를 쓰시지 않으실까? 하나님의 능력이 나에게는 언제나 임할까? 이런 탄식을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말을 하기 전에 하나님이 세우실 만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만한 사람으로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영적으로 우리를 잘 다듬어야 한다. 굳이 적용을 하자면, 우리의 야긴은 말씀이고, 우리의 보아스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두 기둥이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잘 다듬어질 때 하나님께서 그 능력으로 우리를 세워가신다. 우리 교회도 가정도 자녀도 마찬가지다.

 

이제 하는 말이지만 교회를 리모델링할 때 현관에 붙여서 두 기둥을 만들어 세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미관도 그렇고, 비용 문제도 있고 해서 생각만 하고 말았다. 대신 내 마음에 두 기둥을 세우기로 했다. 그래서 교회를 들고날 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생각날 때마다 마음으로 외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능력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음속에 이 두 기둥을 두고 야긴의 하나님을 외치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하나님이 세우신다. 남편과 아내를 세우시고, 자녀를 세우시고, 가정을 세우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다.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일을 성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다. 살다 보면 힘이 필요하고, 능력이 필요하다많은 사람은 돈이 힘이고 권력이 힘인 줄 안다. 많은 지식과 좋은 정보가 힘이고 좋은 스펙이 능력인 줄 안다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참된 힘과 능력은 하나님이시다. 사도들은 은과 금이 없다고 선언했다. 세상 힘이 힘이 아니고, 세상 능력이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힘이고, 예수님이 힘이다. 예수의 이름이 능력이다. 이것이 보아스의 하나님이다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세우심을 믿는 야긴과 같은 사람이 되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 보아스와 같은 사람이 되자이 두 기둥을 마음에 견고히 세우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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