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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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8회 작성일 25-10-29 14:54본문
사랑도 기술이다!
아5:2~8
2025. 10/26, 11:00(성령강림 21번째 주일, 종교개혁 주일)
결혼의 위기를 맞은 부부
아가서는 한 남녀(솔로몬과 슬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사적인 사랑 이야기가 성경에 되고,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이면 낭독하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역사적으로는 신랑이신 하나님과 신부인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여주고, 구속사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교회의 관계를 보여준다. 특히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부인 교회의 사랑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용은 만남에서 연애로, 연애에서 결혼, 결혼의 위기,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여 사랑의 완성으로 되어 있다. 이들 부부는 왕과 목동이라는 엄청난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극적으로 만나 뜨거운 연애 시절을 보내고 결혼까지 하였는데, 이런 그들에게 뜻하지 않게 결혼의 위기가 찾아왔다.
본문 2절은 1절과 다른 새로운 시간, 새로운 장소, 새로운 장면이다. 사실 1절과 2절 사이에 시간 차이가 만은데, 그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대략 신혼 기간이 어느 정도 끝난 것으로 추정된다. 2절에서 아내가 완전히 잠들지 못하고 정신이 깨어 있을 때 밤늦게 귀가한 남편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연애 시절 아내는 남편이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 듣고도,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2:8)라고 외치며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늦은 밤에 달콤한 호칭으로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에 사소한 핑계를 대며 잠시 머뭇거렸다(3).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잠을 자는데 방해를 받았으니 귀찮은 마음이 스치는 것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반응이다. 그렇다고 쉼을 깨뜨리는 것(잠을 깨우는 것)을 원망할 정도로 애정이 식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머뭇거린 아내의 모습은 남편에 대한 애정이 예전과 같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들 부부의 위기가 여기서부터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는 점이다.
위기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본문은 이들 부부에게 위기가 닥쳤음을 아내의 행동을 통해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2,3).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고, 잠결에 문을 열어달라는 남편의 소리를 듣고 곧바로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핑계로 잠시 머뭇거렸다. 물론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나 문을 열었지만 이미 신랑은 떠났고, 그녀가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다(6). 그래서 미친 사람처럼 성안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신랑을 찾았다(7,8). 사소한 문제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는 이미 2:15절에 예고되어 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여기서 포도원은 부부생활을, 작은 여우는 사소한 문제를 뜻한다. 그리고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는 부부생활에 위기를 가져오는 요인을 뜻한다. 사소한 것을 잘 관리하라는 것이다. 위기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내의 어떤 점이 문제가 되어 위기를 초래하였을까?
방심하여 깨어 있지 못함
소극침주(小隙沈舟)라는 말이 있다. ‘작은 틈이 배를 침몰시킨다.’라는 뜻이다. 위기는 대부분 작다고 사소하다고 ‘별거 아닌 것’으로 간주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문제에 대해 깨어 있지 않은 ‘방심’에서 비롯된다. 사슴이 호랑이보다 잘 달리면서도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이유가 방심이다. 호랑이가 따라오지 못하는 안전지대까지 달아나야 하는데, 달리다가 ‘이쯤이면 되겠지!’ 하며 잠시 마음을 놓고 꼭 뒤를 돌아본다는 것이다. 그 순간 호랑이에게 붙잡혀 먹이가 된다는 것이다. 본문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2a). 남편은 밤이슬에 머리털이 젖을 만큼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내가 편안히 잠을 잘 수가 있겠는가? 마을 어귀까지 등불을 듣고 마중을 나가도 모자랄 텐데 깨어서 기다리지도 못했다. 관계의 긴장을 놓아버린 것이다. 이것이 방심(放心)이다. 그러다 보니 깨어 있지 못한 것이다. 관계의 위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신앙의 위기도 깨어 있지 못하고 졸거나 잘 때 찾아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셨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 그렇다. 아무리 마음이 원해도 육신이 약해서 누구든 긴장을 놓으면 잠에 떨어지고, 또 잠에 빠지면 사랑과 신앙에 위기가 온다. 즉, 시험에 들게 된다. 그렇지 않으려면 깨어 기도해야 한다. 이때의 실패를 거울삼아 베드로도 비슷한 권면을 하고 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말씀에 깨어 있고, 기도에 깨어 있고, 찬양에 깨어 있고, 예배에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방심하여 졸거나 잠들지 않고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핑계를 대며 머뭇거림
실패한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언젠가는’, ‘나중에’, ‘여건이 되면’ 등이다. 목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머뭇거리는 시간이 너무 길고, 계획이 있어도 실행을 늘 내일로 미룬 것이 이들의 실패 원인이다. 투자에서 유명한 말이 있다. ‘서두르면 당하지만 머뭇거리면 놓친다.’ 목표도 계획도 없이 서두른 것도 문제지만 목표와 계획을 세워놓고 머뭇거리며 실행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머뭇거리는 것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머뭇거림은 삶을 멈추게 하고,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본문의 아내가 그랬다. 기다리다 남편이 너무 늦게 오니까 깜박 졸 수도 잠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을 열어 달라는 남편의 소리를 듣고도 머뭇거렸다. 이것이 문제다. 남편의 소리를 듣고도 머뭇거린 것이 문제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녀가 머뭇거린 것일까? 그 이유가 이렇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3).
발까지 씻고,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시 옷을 입고 발을 더럽히는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겪기 싫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와 핑계로 머뭇거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그녀에게 남편은 ‘나의 사랑하는 자’(6)였다. 그저 번거로움과 수고로움을 겪기 싫어서 머뭇거린 것이다. 이렇게 그녀가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남편이 떠나갔다.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6). 본문에서 가장 슬픈 대목이다. 머뭇거리던 아내가 일어나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남편이 가버린 뒤였다. 늦은 것이다. 때(기회)를 놓친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사55:6). 우리 역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자주 번거로움, 수고로움, 희생, 양보, 손해 등을 계산하며 선뜻 일어나 문 열기를 머뭇거릴 때가 있다. 여러 이유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머뭇거리지 말고 당장 일어나 주님께 문을 열어 드리자. 신랑(주님)을 기다리는 신부(우리)는 당연히 옷을 입은 채 깨어 허리띠를 띠고 있어야 하지만(눅12:35-36), 설령 잠자리에 들었다면 벗은 몸으로라도 뛰어나가 신랑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야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된다.
가꾸어 가는 사랑
사회학자 에릭 프롬(Erich Fromm)의 대표적인 저자 「사랑의 기술」(Die Kunst des Liebens, 영어로 The Art of Loving)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이 처음에는 ‘사랑의 예술’이란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어 소개되었다. 독일어 ‘Kunst’(영어, Art)란 단어를 그대로 직역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온 책들은 ‘사랑의 기술’이란 제목으로 번역이 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뒤에 나온 것이 저자의 의도가 잘 반영된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기술이란 말은 사랑도 기술이라는 뜻이다. 즉, 사랑도 기술처럼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기술이 경지에 오르면 예술이 되고, 진정한 예술이 되려면 노력(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다. 사랑도 그렇다. 이 책에서 프롬은,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며,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역시 같은 말이다.
방심으로 깨어 있지 못하고, 현실적인 이유로 머뭇거리다가 위기를 초래한 아내는 많은 수고와 여러 수모를 겪으면서 위기를 극복하게 되었고, 전보다 더욱 견고하고 완전한 사랑에 이르게 되었다. 소위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이다. 위기를 성공적으로 잘 관리하고, 부부의 사랑을 잘 가꿔서 성공적인 결혼생활, 성공적인 부부, 완전한 사랑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중요하다. 감정코칭의 세계적인 권위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들은 특별히 다른 부부보다 똑똑하거나 부유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어떤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적대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서로에 대하여 불만을 표현하기보다는 서로의 요구를 감싸안아 주는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일반적인 관계든, 부부관계든, 그리고 영적인 관계든 나무를 가꾸고 화초를 가꾸듯 잘 가꿔야 한다. 볼품없는 돌도 잘 다듬고 가꾸면 보석이 되고, 형편없는 나무도 잘 보살피고 가꾸면 작품이 된다. 인생도 사랑도 신앙도 가정도 교회도 그렇다. 위기에 처했으나 잘 가꿔서 완전한 사랑을 이룬 본서의 부부처럼 우리의 가정도 부부도 교회도 신앙도 잘 가꿔서 완전함을 이루자! 오늘이 508주년 종교개혁 기념주일인데, 이것이 곧 개혁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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