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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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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17,470회 작성일 22-08-2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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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델링, ‘분노

4:25~32

2022. 8/28. 11:00

거북이 신자(Turtle Christian)와 키치(Kitsch)신앙

미국 농담에 거북이 신자라는 말이 있다. 새는 9일간 먹지 않고 살 수 있고, 개는 20일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거북이는 500일을 먹지 않아도 살 수가 있다(참고로 뱀은 800, 곤충은 1,200일을 음식 없이 생존이 가능하다고 함). 그래서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사는 신자를 거북이 신자라고 부른다. 건강한 성도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수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500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거북이처럼 영적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성도를 빗대서 하는 말이다.

 

키치신앙이라는 말도 있다. ‘키치조잡한 물건이라는 뜻으로 값비싼 진품을 모사한 복제나 모조품을 말한다. 플라스틱 같은 것으로 보석을 흉내 낸 조잡스러운 악세사리나 간단한 생활용품, 전통찻집 한구석에 놓인 미니어처 물레방아, 민속공예품, 동화 속 요정의 집과 같은 것 등등. 이런 것이 바로 키치’(Kitsch). 이런 키치의 본질은 일반 사람의 취미에 맞게 만들어진 것으로, 사람들은 이것에서 나름대로의 기()죽지 않는 만족감을 느끼려한다. 그래서 명품을 살 돈이 없으니까 짝퉁이라도 사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이러한 키치는 신앙생활에서도 발견되곤 한다. 우리는 거북이 신자가 아니라 매일매일 주님의 말씀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천수답 성도가 되어야 하고, 키치신앙이 아니라 진품신앙을 가져야겠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거북이 신자로 만들고, 우리 신앙을 키치로 만든 것일까? 어떻게 이런 신자, 이런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지난주일 말씀드린 대로 주님과의 연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주님과의 연결이 잘못 되어 있으니까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지 않고도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주님과 연결이 부실하여 제대로 공급을 받지 못하니까 키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과의 연결이 중요하고, 그 연결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과의 연결을 망치는 것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 소중한 주님과의 연결을 망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자동차에는 3만 여개의 부품이 있고, 모두가 각각의 역할을 수행한다. 모두 중요하지만 주행을 위한 부품으로 타이어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또한 타이어는 사고와 직접적으로 연관될 수 있는 중요한 부품이다. 특히 타이어는 적정한 공기압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공기가 부족하면 빨리 채워 넣어야 한다. 그런데 타이어에 들어있는 공기를 단 번에 빼내어 타이어의 기능을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펑크다. 펑크처럼 신앙생활에서 주님과의 연결을 단번에 망치는, 그래서 우리를 거북이 신자로 우리의 신앙을 키치로 만드는 것이 있다.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분노의 감정이다.

 

사람에게는 다양한 감정이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감정이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겁고)이다. 이들 가운데 조심해야 할 감정은 바로 노(). 물론 분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럼에도 분노는 인생을 쓰러뜨리는 감정 즉, 자신과 이웃을 무너뜨리는 감정이다. 성경에 기록된 형이 아우를 죽인 인류 최초의 범죄도 분노조절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정호승 시인의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 마디라는 수필집에 이런 고백이 나온다. ‘분노는 벌레처럼 저를 갉아먹습니다. 어떠한 분노든 제 인생을 쓰러뜨립니다. 분노에서는 제 인생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긍정성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습니다. 오늘의 제 삶이 그나마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까닭은 바로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는 이 말씀 덕분입니다.’ 분노는 인생을 갉아먹고, 인생을 쓰러뜨리고, 삶에 대한 긍정성을 갖지 못하게 만들고, 그런데 마음대로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노의 특징을 잘 보여준 것 같다. 동양성현도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忍一時之忿 免百日之憂)라고 했다. 한 순간의 분노를 참으면 백일 동안의 근심을 면한다는 뜻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한 순간의 분노가 백일의 근심거리를 만든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므로 분노는 주님과 연결을 망치는 것은 물론 자신과 이웃을 무너뜨리는 파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분노의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정호승 시인은 이와 같은 분노에 자신의 삶이 무너지지 않은 것은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는 말씀 덕분이라고 했다. 이 말씀이 본문 중에 나온다.

 

분노를 잘 다스려라!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의 삶에 대한 교훈(4)의 일부분이다. 특히 본문은 성도의 이웃관계에 대한 교훈이다. , 성도가 이웃에게 적극적으로 베풀어야 할 덕목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이웃이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다. 우선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는 것이고(25), 둘째는 분을 품지 말라는 것(26,27), 셋째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수고하라는 것(28), 넷째는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라는 것(29),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지 않게 하라는 것(30)이다. 이와 같은 삶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과 성품으로 새로 지음을 받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과 성품이 드러나도록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권면 중에 하나가 분노를 품지 않는 것이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26,27). 이는 간단하지만 분노에 대한 성경적인 생각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다. 분노에 대한 성경의 생각은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가 죄로 이어지고,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을 경고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분의 말인데, 분노에는 16가지 얼굴이 있다고 한다. 독설, 격노, 악의, 증오, 소란, 분열, 시기, 질투, 비판, 적개심, 공격, 편협, 험담, 냉소, 앙갚음, 응어리가 그것이다. 분노하게 되면 이와 같은 16가지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니 그 상태가 계속 된다면 그 사람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귀가 드나들 수 있는 틈이 순식간에 이렇게 많이 우리 안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란 관계가 벌어져서 생긴 사이’, 혹은 어떤 행동을 할 만한 기회를 뜻한다. 아무튼 건물이나 벽, 댐에 틈이 생기면 무너지고 파괴되고 해체되게 된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 주변에서 항상 틈을 찾고 있다. 우리 안에 발붙일 기회를 노리고 있다. 분노가 지속되면 마귀에게 발붙일 기회를 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죄를 짓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므로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분노를 잘 다스리려면

그렇다면 어떻게 분노를 다스릴 수 있을까? 자료를 찾아보니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추천한 것이 숫자세기였다. 분노가 치솟을 때 숫자를 열까지 세라는 것이다. 숫자를 세다보면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있다고 한다. 이는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한 말이다. 화가 날 때 순간적으로 욱하면서 분노 호르몬이 급상승하게 되는데, 분노 호르몬은 15초면 정점을 찍고 분해되기 시작하여 15분이 지나면 거의 사라진다고 한다. 그러니 화가 날 때 잠시 심호흡을 하고 숫자를 열까지 세다보면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숫자세기를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다. 상당히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성경에서 그 예를 찾을 수가 있다. 성경인물 중에 모세는 급한 성격과 격한 분노를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다(2:). 이집트 왕자시절, 이집트 사람이 자기 동족 히브리 사람을 치는 것을 보고 화를 참지 못하고 이집트를 쳐 죽였다. 결국 이 일이 탈로가 나서 이집트 왕자에서 살인도피자가 되었다. 이 일이 있고 40년 후,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기 민족의 해방 지도자가 되었고, 자기 민족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와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을 하였다. 40년 동안 그는 자기 동족에게 원망과 불평, 불신과 배신을 밥 먹듯 당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그 때마다 그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백성을 상대하여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하나님을 상대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백성이 불평하고 원망할 때, 비방할 때, 심지어 분노한 백성이 돌을 들고 치려고 할 때도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분노의 대상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분노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모세가 자신의 분노를 다스린 방법이다. 화가 날 때 주님께 시선을 두는 것, 그리고 주님께 마음을 토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분노를 다스리는 성경적 방법이다.

 

이런 점에서 모세는 분노조절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성경은 이런 그를 가리켜,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12:3)고 했다. 모세가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다는 평가다. 여기서 온유라는 말은 단순히 부드러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훈련에 의해서 깎이고 다듬어진 상태를 뜻한다. , 동물로 말하면 길들여진상태. 이를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 잘 길들여진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모세는 하나님께 잘 길들여진 사람, 그래서 누가 그에게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하고, 비난을 하고, 비방을 해도 그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만 살폈다. 하나님의 눈치를 살피고, 하나님의 반응을 살폈다. 그래서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린 것이다. 이 역시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 잘 길들여지는이다. 모든 것이 그렇다. 기도생활이 길 드려지고, 예배생활이 길 드려지고, 섬기는 생활이 길 드려지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것이 길 드려져야 한다. 우리의 감정도 길 드려져야 한다. 특히 분노라는 감정이 주님께 잘 길 드려져야 한다. 이런 사람은 결코 벌컥벌컥 화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않고, 해가 지도록 품지 않고, 사단의 침투를 막을 수가 있다.

 

앵그리 시대

어떤 철학자는 우리 시대를 이렇게 묘사하였다. ‘헝그리(배고픔) 시대에서 앵그리(분노) 시대가 되었다.’ 배고픔이나 그저 먹고 사는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굶주림이나 영혼의 문제는 몇 배로 늘어났다. 2016년보다 2020년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30%증가했고, 특히 젊은이들 중에서는 7~8배 증가하였다. 또한 증오범죄나 분노로 인한 범죄가 몇 배로 증가하였다. 그러니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은 시대적인 문제다. 그러므로 앞에서 소개한 화가 났을 때 숫자세기를 비롯하여, 문제나 상황, 대상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말씀으로 기도로 예배로 섬김으로 잘 길 드려질 수 있도록 분노의 감정을 리모델링하자! 바로 여기에 평안한 마음, 화목한 가정, 화평한 관계, 평화로운 공동체를 세우는 비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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