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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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28,348회 작성일 22-07-24 16:49본문
리모델링, ‘열정’
왕하2:1~6
2022. 7/24. 11:00
성공과 열정
‘성공의 크기는 열망의 깊이에 좌우된다.’는 말이 있다. 성공은 깊은 열정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미국의 소매상협회에서 세일즈맨의 거래실적과 열정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물건을 판매할 때 세일즈맨 중 48%는 단 한번 권하고 포기했고, 두 번 권유가 25%, 세 번 권유 15%였다. 네 번 이상 권유한 사람이 12%였는데, 놀라운 것은 네 번 이상 권유하는 12%가 전체 판매량의 80%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왔다. 앤드류 카네기의 말이다. ‘평균적인 사람은 자신의 일에 자신이 가진 에너지와 능력의 25%를 투여한다. 세상은 능력의 50%를 일에 쏟아 부은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며, 100%를 투여하는 극히 드문 사람에게 머리를 숙인다.’ 열정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분야에서 열정을 갖고 전심전력을 다한다면 성공을 넘어 존경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규모에서 늘 세계 1위를 다투는 월마트는 시골 마을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시작하여 세계적인 유통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동네 작은 슈퍼마켓에서 세계적인 유통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창업주 샘 월튼의 열정이 있었다. 샘 월튼은 여러 면에서 비범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비범한 것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소유자였다. 그는 살인적인 스케줄로 미국전역의 상점을 돌아다녔다. 보통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의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는 물건을 파는 일을 좋아했고, 상점은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그는 죽기 바로 몇 주 전까지 자가용 비행기로 전국의 상점을 돌아보았다. 만약 그에게 물건 파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피로로 순식간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열정이 피로감을 활동 에너지로 전환시켜 주었던 것이다. 열정은 가슴 벅찬 의욕과 기쁨이다. 인류의 역사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 이끌어왔다. 우리 예수님 또한 기막힌 열정맨이셨다. 열정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설령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문제로부터 도피하는 방안만을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능력이나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열정이 부족해서 인생의 낙오자로 남게 된다.
열정이 차이를 만든다.
사람의 차이, 인생의 차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열정이다. 열정은 단순히 세속적인 성공의 요인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열정은 영적인 생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열정은 우리의 경건생활을 업그레이드 시킬 뿐만 아니라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따르는 중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제자의 길로 제시한 말씀이 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일반적으로 이 말씀을 자기부인과 희생에 초점을 두고 해석을 한다. 하지만 사실 이 말씀은 강력한 열정에 대한 요구다. 주님에 대한, 주님을 따름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자기부인이나 자기 십자가를 지는 희생을 감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정이 없으면 핑계거리부터 찾게 된다. 그래서 안 되는 이유, 못하는 이유, 따를 수 없는 이유, 순종할 수 없는 이유만 찾는다. 누가복음에 나온 주님을 따르는데 실패한 세 사람의 이야기가 좋은 예다(눅9:57~62). 하지만 열정은 방법을 찾고, 길을 찾게 만든다. 삭개오처럼 말이다(눅19:1~10).
엘리야는 구약시대에 대표적인 예언자다. 그리고 그에게는 따르는 많은 선지생도가 있었다. 그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그가 머문 곳마다 제자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본문은 엘리야의 승천기사 중 일부분으로 그의 승천 전 여정이 이를 증명한다. 엘리야는 승전 전에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강 건너편 언덕까지 여러 지역을 순회했는데, 그가 가는 곳마다 선지생도가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선지생도 중에 곁에서 엘리야의 최후를 직접 목격하고, 갑절의 영적 능력, 곧 영적 장자가 된 사람은 ‘엘리사’뿐이었다. 그 많은 제자들 중에 엘리사가 후계자가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열정’이다. 엘리야의 계속되는 만류에도 그는 맹세를 하면서 끝까지 엘리야의 뒤를 따랐다.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2,4,6). 그러자 요단강 건너편 언덕에 이르러 드디어 엘리야가 그에게 말했다. 자기가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그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지 말하라고 했다. 엘리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9). 소위 갑절의 영적 능력을 구한 것이다. 이는 영적 장자, 곧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게 해달라는 뜻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다. 열정적으로 사모하며 구하고 따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이와 같이 엘리사로 하여금 여러 선지생도 중에 한 사람이 아니라 유일한 후계자가 되게 한 것이 바로 열정이다. 열정이 이와 같은 차이를 만든 것이다. 사람의 차이, 사역의 차이, 능력의 차이를 만든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의 차이도 열정에 있다.
열정이 무엇이냐?
그렇다면 열정이란 것이 무엇인가? 심리학자들은 열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떤 활동에 대해 그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가? 그것을 중요하게 가치있게 여기는가? 그것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힘을 투자하는가?특정 활동에 대해 이와 같은 세 가지가 충족되고 있을 때, 그 활동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배를 사랑하여 예배드리는 것을 좋아하고, 예배를 중요하게 가치있게 여기고, 예배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힘을 다 쏟고 있다면 이런 사람을 가리켜 예배에 열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열정이란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관심과 가치를 두고 모든 것을 집중하는 선택과 결단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심리학자들의 열정에 대한 정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정은 우리의 태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관심과 가치, 선택과 집중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열정이 성공의 강력한 동력이 되는 것이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중요한 태도가 되는 것이다. 결국 무엇인가에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중요하고 가치있게 여긴다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힘을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는 열정이 그 사람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에 열정을 품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정체성이자 가치관이다. 모쪼록 주님과 주님의 복음,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주님의 몸인 교회, 거룩한 영적 가치들에 열정을 품고 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열정에도 방향이 중요하다.
어떤 분이 도적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도적은 자기가 하는 일, 곧 도적질을 위해서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만약 준비가 소홀하거나 계획이 잘못되면 소득이 없음은 물론이고 감옥에 가야하기 때문이다(준비성과 계획성). 또한 도적은 도적질을 위해 남의 집 담을 넘을 때마다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이다(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정신). 다시 말하면 준비성과 계획성,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정신을 도적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모든 사람, 모든 것을 배움의 기회로 선용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렇지만 누구도 도적의 이런 준비성이나 계획성, 위험을 감수하는 도전정신을 칭찬하기보다 오히려 위험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방향이 잘못되면 위협이 된다. 같은 바람이지만 순풍은 도움이 되지만 역풍은 위협이 된다. 그래서 흔히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한 것이다.
열정도 마찬가지다. 열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열정의 온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열정의 방향이다.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사느냐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고, 열심히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돈을 버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까 열정에도 방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방향이 없는 맹목적인 열정을 성경은 지식 없는 열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위험성을 말하고 있다. ‘지식 없는 소원(열정)은 선하지 못하고’(잠19:2). 지식 없는 맹목적인 열정은 자칫 광기(狂氣)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 주님을 만나기 전 바울의 열정이 좋은 예다(행9:1,2). 바울은 유대교에 대한 열정이 컸다. 그런데 그 열정이 기독교 박멸이라는 광기로 변질이 되었다. 그래서 사극에 나온 도망친 노비를 잡아들이는 노비 사냥꾼 추노(推奴)처럼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를 추격하여 잡아들였다. 심지어는 국경을 넘어 다메섹까지 추격했다. 그러다 부활하신 주님을 극적으로 만나 그의 열정의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향해 열정의 방향이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그의 삶은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열정의 삶이 되었다. 기독교를 파괴하고 훼방하는 핍박자에서 기독교를 세우고 옹호하고 전파하는 자가 되었다. 복음의 원수에서 복을 위해 목숨을 던진 순교자가 되었다. 열정의 방향만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 차이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주님을 향해, 주님의 나라를 향해, 영생을 향해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믿는 것이다. 특히 세상을 향한 열정의 방향을, 바울처럼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향해, 주님과의 건강한 관계를 향해, 그리고 거룩한 영적 가치들을 향해 열정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항상 우리의 관심과 가치를 두고,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힘을 다 쏟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열정적인 신앙인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 주님과 주님의 복음에, 주님과의 건강한 관계에, 그리고 거룩한 영적인 가치들에 우리의 관심과 사랑, 가치와 중요성을 두고, 우리의 모든 자산과 자질을 다 쏟아 붓는 열정적인 성도가 되자! 이와 같은 열정으로 우리의 삶을 리모델링하자! 제임스 데니는‘하나님 나라는 마음씨 좋은 호인들의 것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투쟁하는 자들의 것이다.’고 했다. 열적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따르는 사람이 천국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열정적으로 해야 역사가 일어난다. 삶의 열정을 잃어버리면 죽은 것이다. 생명은 열정을 동반한다. 열정이 살아가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관련링크
- https://youtu.be/aW6SkVhz53Y 15276회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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